“히포크라테스 선서를 망각한 의사.” 서울대병원 고위관계자의 말이다. 쿠키뉴스가 18일 보도한 <[단독] 서울대병원, 환자 의무기록 무단열람에 치료까지 방해> 제하의 기사와 관련해 서울대병원은 내부적으로 크게 동요하는 모양새다. 의사에게 압력을 행사해 치료 중인 환자의 진료와 처방을 막은 행태와 관련해 “상식 밖의 일”이란 한탄부터 “사실이 맞느냐”는 의문마저 제기된다. 서울대병원 고위관계자는 기자와의 전화통화에서 보도된 내용이 사실에 부합한다고 인정했다. 관계자는, 그러나 “개인들간의 갈등으로 정작 피해를 보는 건 조직(서울대병원)”이라고 강변했다.
이 주장처럼 이번 사안은 과연 개인 간의 분쟁일 뿐일까? 본지 취재 결과는 달랐다.
이번 의료법 위반 사건의 외면은 단순해 보인다. 서울대병원 환자의 정신과 진료 기록이 포함된 전자의무기록을 주치의가 아닌 이들이 열람했고, 이중 한 명이 이후 진료를 맡은 바 있었던 의사에게 해당 환자의 진료행위를 방해했다는 것. 의료법 제23조 제3항 및 제87조 제1항의 규정에 따라 정당한 사유 없이 전자의무기록에 저장된 개인정보를 탐지하거나 누출할 경우에는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5000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해진다. 이밖에도 서울대병원은 자체적으로 전자의무기록 열람 사유를 정해두고 있다.
그러나 사건의 이면을 들여다보면 병원 핵심 조직이 깊숙이 관여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5월 7일로 돌아가 보자. 서울대병원 정보화실을 통해 본인의 전자의무기록을 주치의가 아닌 이들이 접속했음을 알게 된 ㅅ씨는 추가 정보를 요청한다. 접속 PC나 IP등 무단열람의 증거를 찾기 위한 조치였다고 ㅅ씨는 훗날 기자에게 설명했다.
ㅅ씨가 “원래 그게 의료법 위반 사항 아닌가. 남의 차트를 들어와서 보는 어떤 그런 부분들이”라고 정보화실 핵심 관계자에게 묻자 그는 다음과 같이 답한다. “엄밀히 말하면 다 위반사항이다. 그래서 그렇게 다 체크를 하는 건(본인 의무기록 접속 정보 확인하는 건) 맞고. 방법론적으로는 법적인 것을 통해서 우리에게 공문을 보내주면 우리가 처리하기 편하다.”
내용증명을 보낸 후 돌아온 답변은 그러나 예상과는 달랐다(사진). 병원 정보화실은 ㅅ환자의 진료기록 열람 사실여부 및 방법 열람 일시 횟수 등 관련 자료 제출을 거부했다. 거부 사유는 이렇다. ▶‘개인정보보호법 및 의료법에 따르면 정보주체의 개인정보 혹은 환자 등의 의무 기록의 열람 등은 해당 주체들이 원하면 주어야 한다. ▶위임인이 요청하는 내용들은 개인정보보호법상 개인정보나 의료법상 의무기록의 범위를 벗어난 것으로 판단된다. ▶위임인이 요청하는 내용들은 개인정보 및 의무기록의 범위를 벗어난 것으로 사료된다. ▶위임의 주장대로 해당 행위가 의료법 위반 등 불법 행위에 해당된다고 할지라도 병원이 임의로 정보 주체인 위임인에게 해당 정보를 제출하는 것은 또 다른 문제들을 야기할 위험이 높다고 판단된다.
서울대병원 측은 “해당 진료과와 정보화실이 법률 자문을 충분히 검토한 후 이 같은 결정을 내렸다”고 해명했다. 정보공개법 접촉 여부나 정보공개기관으로써의 책무보다 ‘상위에 있는’ 법리적 판단의 근거를 요청했지만 아직 답변은 오지 않았다. 정보 거부 결정은 “그렇게 다 체크를 하는 건(본인 의무기록 접속 정보 확인하는 건) 맞다”는 정보화실 책임자의 ‘말’과도 상반된다.
이후 서울대병원 정보화실의 태도는 돌변한다. 다음은 9월 2일 ㅅ씨와 정보화실 관계자와의 대화다. “절차로(내용증명으로) 보냈잖아요. 이건 전활 드린 거고요. (의무기록 접속 정보를) 빨리 주세요.” “뭘 빨리 주라마라 네가 난리야, 인마. 건방진 자식이 그냥.”
의무기록을 무단열람하고 진료와 처방을 막은 의사를 일컬어 “범죄자”라며 강한 어조로 비판하던 병원 측의 입장에도 미세한 변화가 감지된다. 병원 관계자는 ㅅ씨가 서울대병원 직원이었음을 ‘종합적으로’ 고려해달라고 말했다. 그러나 ㅅ씨가 서울대병원 환자였음을 병원은 고려하고 있을까? 병원 직원을 향한 인권 침해가 이 정도라면, 알려지지 않은 일반 환자의 의무기록 무단열람 실태는 어떠했겠냐는 의혹 제기도 가능하다.
최초 본지 보도 후 서울대병원 측은 “왜 이런 일이 일어났는지, 다신 이런 일이 없어야 한다”며 후속 보도에 처방과 진료를 막은 의사의 이름을 공개할 것을 요구했다. 쿠키뉴스는 이 같은 요청에 부응, 1차로 전자의무기록에 접속한 서울대병원 의사들의 명단을 공개한다. 하기 내용은 ㅅ씨의 의무기록에 접속한 의사들의 이름, 명단, 무단열람 횟수이다. 자료 출처는 서울대병원 정보화실이며, 풀네임은 ‘개인정보침해’를 감안, 가림 조치했다.
*쿠키뉴스는 서울대병원에서 개인정보 침해를 입은 환자들의 제보를 기다립니다. 김양균 기자 angel@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