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은 온종일 비가 내렸다. 하늘을 관통한 빗방울은 대기 속에 녹아든 먼지와 오염물질을 씻어낼 것이다. 이 비가 지긋지긋한 결핵균도 깨끗하게 닦아낼까? 병실에 누워있는 김성수(가명)씨는 날씨의 변화를 알지 못했다. 결핵 감염을 막기 위해 병실에는 창문이 없었다. 하루에 세 번 복용해야 하는 독한 결핵약에 울렁거리던 속이 겨우 진정되고 있었다. 설핏 잠이 들었을까. 병실에 불이 켜졌다. “저기….” 서울에서 왔다는 불청객은 그와 대화하길 바라고 있었다. 성수씨는 고개를 끄덕였다.
전남 목포에 위치한 국립목포병원은 국립마산병원과 더불어 국내 결핵 치료의 핵심 의료기관이다. 기자는 지난 5일 국립목포병원의 곳곳을 둘러볼 수 있었다. 병원 6층에는 내성결핵 환자가, 5층은 중환자들이 입원해 있었다. 병원은 지어진지 수십 년이 됐지만 퍽 깨끗하게 관리되고 있었다. 4층에는 여성 환자 20명과 남성 환자 15명이 입원 치료를 받고 있었다. 이중에는 외국인도 포함돼 있었다.
이곳에는 결핵균의 병원성은 음성인 환자들이 많다. 80~90세의 여성 환자들은 10여명이 치료를 받고 있었다. 이곳에서 만난 ㅎ간호사가 말했다. “결핵 환자들의 패턴을 보면 젊을 때는 입원을 안 하려고 해요. 일을 해서 돈을 벌어야 하니까요. 약 복용이 불규칙하다보니 상태가 호전되어서 퇴원했다 내성결핵으로 재입원하는 경우가 많아요. 진료 순응도도 낮고요.”
30년 넘게 병실을 지킨 베테랑 간호사라 이젠 ‘몸’이 편해질 법도 하지만, 병동 인력이 부족한 탓에 그는 늘 바삐 뛰어다닌다. 4병동의 간호사는 7명이 전부. 환자들에게 약을 복용시키고 나면 온몸은 땀으로 흠뻑 젖는다. 타병원의 동년배들은 과장으로 승진하는 동안 그는 여전히 간호사일 뿐이었다. 진급이 언제쯤 될지는 아무도 모른다.
결핵은 감염성이 커 결핵 치료 병동은 특별해야 한다. 병상간 간격은 최소한 2미터를 유지해야하고 음압도 조절해야 한다. 다만, 동선 분리는 어찌할 도리가 없다. 감염시설 관리가 전무할 당시 지어진 건물에서 ‘기적이 일어나지 않는 한’ 환자-의료진의 동선 분리는 불가능하다. 이는 의료진의 감염 위험성을 크게 높이는 악재로 작용하고 있었다.
3층으로 발길을 돌렸다. 여기서 만난 ㅇ공중보건의는 올해 초 국립목포병원에 왔다. 서울의 유수 대학병원에서 내과 전문의로 일했던 그는, 국립목포병원의 치료시스템을 “뛰어나다”고 평가했다. 박봉에, 격무에, 신혼임에도 주말부부 생활을 해야 하는데다 결핵 감염 위험까지 걱정이 이만저만 클 법도 하건만 그는 고개를 저었다. “그래도 저는 괜찮아요. 간호사들이 더 고생이죠.”
이곳에선 52개의 병상이 운영되고 있었다. 진료 후 입원이 결정되면 처음 들르는 곳인 만큼 결핵균이 유독 독하다. 간호사들은 ‘역시’ 7명. 수간호사 1명이 간호 스테이션을 지키고 나머지 6명이 3교대로 근무한다. 입원 환자들 중에는 말썽을 일으키는 환자들도 적지 않아, 간호사들은 골치를 썩고 있었다.
“강한 결핵 양성 환자들이 무단이탈을 하거나 흡연, 음주를 하다 적발되면 쓰리아웃제가 적용돼요.” 세 번 거듭 의료진의 권고를 무시하면 강제퇴원이 이뤄진다. 원칙은 이렇지만, 전염성이 강한 환자들이라 의료진도 모르는 척 넘어가는 경우도 왕왕 있다. 갈 곳 없는 딱한 상황의 환자들 사정도 무시 못 할 이유다. 한숨을 쉬며 ‘봐주는’ 셈이다.
◇ 외로움의 질병
결핵 환자는 외롭다. 결핵균의 특성상 사람에게서 사람으로 감염되는 탓이다. 이 때문에 사람들이 멀리하는 탓이다. 국립목포병원에서 만난 김성수(가명)는 휴대전화를 손에 꼭 쥐고 있었다. 감염성이 강한 상태라 그는 1인실에서 치료를 받고 있었다. 어렵사리 그와 짧은 대화를 나눌 수 있었다.
그는 침대에, 기자는 보호자 베드에 걸터앉았다. 우리의 거리는 1미터 남짓. 기자는 마스크를 쓰고 있었고, 성수씨는 누워서 이불을 가슴까지 덮고 있었다. ‘2미터는 돼야 한다던데….’ 이런 얄팍한 생각을 하면서도 짐짓 아무렇지 않은 듯 기자는 그에게 연신 질문을 던졌다.
입원 초기만 해도 지인들의 쾌유 응원이 많았다고 했다. 잠시 뿐이었다. 그가 속했던 조직에 보건소의 결핵 역학조사가 들어가자 ‘응원’은 ‘원망’으로 바뀌었다. 휴대전화의 메신저에 더 이상 새로운 메시지는 오지 않는다. 결핵균은 성수씨의 건강을 빼앗은 것도 모자라 지인들마저 앗아갔다. 자리를 파할 무렵 그는 분식이 먹고 싶다고 말했다.
“분식이요?” “네. 떡볶이 같은 거 있잖아요.”
돌아갈 곳이 있는 성수씨의 경우는 그나마 낫다. 오갈 곳 없는, 사실상 행려자에 가까운 환자들에게 병원은 그들이 기거할 유일한 안식처였다. 김천태 병원장은 국립병원의 역할에 대해 이 같이 말했다.
“내성결핵이나 만성배균자는 치료 방법이 없습니다. 사망할 때까지 병원 생활을 해야 합니다. 호스피스 간호를 해야 하죠. 국립목포병원의 병상수를 고려하면 더 많은 환자를 돌볼 수 있지만 현재로선 불가능합니다. 병원 의료진은 지금도 한계 상황이라….”
말 안 듣고 치료는 요원한 환자들이 가득한 병원. 오갈 데 없이 결핵에 걸린 환자들이 마지막에 머무는 병원. 28명의 간호사, 3명의 의사가 4개병동 150여 병상을 돌보는 병원. 개도국의 이름 모를 보건소가 아니다. 보건복지부 직할 국립목포병원은 오늘도 의료진의 ‘너무 많은’ 땀과 눈물로 굴러가고 있다.
김양균 기자 angel@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