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죽음에 대한 책임

[기자수첩] 죽음에 대한 책임

기사승인 2017-09-23 04:01:00

환자들이 직접 자신의 죽음에 사인하는 시대가 왔다. 다음 달 중순부터 연명의료결정법 시범사업이 시행된다. 죽음에 대한 환자의 결정을 우선하는 새로운 법안이 우리 의료현장에서 자연스럽게 자리 잡을 수 있을지 관심이 모인다.  

연명의료결정법은 무의미한 연명치료를 중단하고 환자의 결정을 우선하는 절차를 제도화한 것이다. 이 법이 시행되면 임종과정에 있는 환자들은 연명의료계획서 또는 사전연명의료의향서를 작성, 자신의 연명의료 지속 여부를 결정해야 한다. 환자의 의사를 담은 녹취나 영상자료도 인정된다. 만일 환자가 자신의 의사를 밝힐 수 없는 상태라면 가족 전체의 동의와 의사 2명의 확인을 통해 연명의료 중단을 결정할 수 있다.  

현재도 환자의 의사가 명확하다면 연명의료를 중단할 수 있다. 그러나 법적인 분쟁이나 윤리적인 문제 때문에 의료현장에서 존엄사를 결정하기가 쉽지 않은 상태였다. 내년 2월부터는 해당 절차가 법제화되면서 이러한 부담도 덜어질 것으로 보인다.    

다만 시범사업이 해결해야할 과제는 적지 않다. 법안 시행을 앞두고 병원계에서는 우려섞인 목소리를 내고 있다. 지난 18일 연명의료결정법 시범사업 설명회에서는 연명의료 지속여부를 확인하기 위해 의식이 흐린 환자에게 녹음기나 카메라까지 들이대야 하느냐, 의식이 없는 환자들에 대한 매뉴얼은 없느냐 등 병원 관계자들의 다양한 요구와 지적이 나왔다. 시범사업 기간 동안  다각도의 분석과 대책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연명의료를 대하는 환자와 가족들의 인식변화도 필요하다. 간혹 가족들이 환자의 충격을 우려해 정확한 병명을 알리지 않는 경우가 종종 있다. 병의 진행정도나 예상 수명 등은 말기환자에게는 피하고 싶은 정보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앞으로는 환자의 결정이 우선시되는만큼  환자가 자신의 상태를 정확하게 알아야만 한다. 죽음에 책임을 지운 새 제도가 우리 문화에서 어떤 모습으로 정착할지 기대 반, 우려 반이다.  

전미옥 기자 romeok@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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