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故) 백남기 농민의 1주기를 맞아 각지에서 추모행사가 열릴 예정이다. 23일 서울 종로와 광화문 일대에서는 5000명 규모의 추모대회가 예정돼 있다. 22일에는 국회에서 ‘백남기 농민 사건으로 본 대한민국, 그리고 농업’ 토론회가 열려 김영록 농림축산식품부 장관이 참석했다. 이낙연 국무총리는 정부청사에서 유족들을 만나 위로의 뜻을 전했다. 백씨를 죽음에 이르게 한 ‘주범’ 경찰은 서울에서 열리는 대규모 추모대회에 “물대포는 등장하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정부와 시민들이 백씨의 죽음을 추모하는 가운데, 유독 침묵을 지키는 곳이 있다. 바로 서울대병원이다. 고 백 농민 사건의 주요한 네 갈래, ▶물대포 ▶전자의무기록 무단 열람 및 외부유출 ▶병사 논란 및 주치의의 유족 비난 ▶부검 논란 중 서울대병원은 경찰과 함께 딱 절반의 ‘지분’을 차지한다.
기자는 21일 백씨의 장녀 백도라지씨와의 짧은 전화 통화에서 서울대병원에서 또다시 백씨와 유사한 의무기록 무단열람 사건이 벌어졌음을 알렸다. 비록 백씨의 기록을 무단으로 훔쳐본 161명에는 한참 못 미치지만, 병원의 조치나 진행 상황은 유사하다. 그리고 이러한 일은 백씨 사건 이전에도 있었다.
지난 2010년 故앙드레김의 사인이 외부로 유출되면서 논란이 일자, 서울대병원은 내부 직원들을 단속하며, ‘의무기록 열람에 각별히 유의할 것’이란 지침 등을 마련했다. 그러나 故앙드레김이나 故백남기 농민 사건의 경우, 이들이 사회적으로 이름이 알려진 인물이었기 때문에 더욱 공분을 사 후속 조치가 신속했던 측면이 있다.
최근 쿠키뉴스가 연속보도 중인 사례도 의무기록 침해 당사자가 병원 의사이자 환자였다는 점에선 보통의 환자들과는 미묘한 차이점이 있다. 정작 문제는 서울대병원에서 진료를 받았거나, 현재 받고 있는 보통의 환자들의 ‘진료기록’ 관리가 어떻게 이뤄지고 있느냐에 대한 우려다.
백씨 사건 당시, 서울대병원이 감사원에 밝힌 후속 조치는 다음과 같다. “종합의료정보시스템과 의료영상저장전송시스템에 정당한 사유 없는 자의 접속을 제한․차단하고 경고문에 전자의무기록 무단 열람이 형사 처벌 대상이라는 내용을 명시하는 등 시스템을 조속한 시일 내에 개선하겠다.”
그러나 시기적으로 보면 이번 사건은 백씨 사건과 시기적으로 겹치거나 바로 직후에 벌어졌다. 이는 서울대병원의 환자 정보 관리가 백씨 사건을 거쳤어도 여전히 허술했음을 반증한다. 故백 농민 사건 당시 서울대병원은 환자기록을 무단 열람한 내부 직원들에게 ‘경고’ 조치를 취했다. 이는 징계이긴 하지만, 공문을 발송하는 것 이외에 사실상의 불이익이 없어 병원이 직원들의 비위를 눈감아 줬다는 비판이 지속적으로 제기됐었다. 이러한 세간의 비판은 특히 신찬수 전 서울대병원 부원장의 처분 결과에서 증폭됐다. 신 전 부원장은 백 농민의 기록을 18회 열람했지만, 징계 대상에 포함되지 않았다. 의무기록을 볼 ‘권한’이 있다는 이유에서였다.
22일 본지 보도에서 무단열람을 한 것으로 확인된 병원 인사들에 대한 수사식 취재를 예고하자, 모교수는 취재기자에게 다음과 같은 내용의 전자우편을 보냈다. 내용은 이렇다(비문 및 신분이 드러날 수 있는 부분은 일부 수정했다). “기록 열람자를 탐문하겠다는 것 같은데, 죄송한 이야기지만 우리 직원들은 제가 면담했고, 병원 측으로부터도 공식 조치를 받을 것이니 상처받지 않도록 해 주기를 부탁드립니다.”
쿠키뉴스는 가해자의 ‘상처’보단 위법성 여부에 집중한다는 방침이다.
김양균 기자 angel@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