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언 48.7%’, ‘폭행 8.5%’, ‘성폭력 8.0%’, ‘가해자의 35%는 의사’….
통계로 드러난 대학병원의 민낯이다. 전국보건의료산업협동조합(위원장 유지현, 이하 보건의료노조)가 2017년 보건의료노동자를 대상으로 한 실태조사 결과는 충격적이다. 이 가운데 현재진행중인 ‘충남대병원의 성추행 사건’은 이번 조사 결과의 실제 사례로 여겨지며 후속 조치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지난 13일 <현재까지의 ‘충남대병원 성형외과 성추문 논란’> 제하의 기사 보도 이후, 쿠키뉴스는 충남대병원 측의 가해 교수 징계 등 구체적인 후속조치 여부를 주시해왔다. 당초 병원 측은 13일 병원 특별인사위원회를 열고, 법무지원팀의 조사 결과와 함께 가해자와 피해자, 참고인 등에 대한 조사를 진행, 18일에는 조사 결과 및 징계 수위 등을 발표하겠다고 밝혔었다.
일단 예정대로 위원회는 진행된 것으로 알려진다. 그러나 충남대학교로 최종 ‘공’이 넘어갔다는 사실 외에 이번 사태에 대한 병원 차원의 조사 결과 발표는 없었다. 이와 함께 병원 측의 태도는 미묘하게 변화한 모양새다. 열흘이 지난 26일 징계 및 조사 결과 등의 조치를 재확인했지만, 병원 관계자는 “충남대의 결과를 기다린다는 것 외에 할 말이 없다”면서 “피해자들이 병원과 진료과 등이 전부 공개된 터라 부담스러워한다”는 말을 남겼다. 입장을 발표하겠다는 성형외과 역시 충남대의 결과가 나오지 않아 현재로선 어떠한 ‘말’도 할 수 없다고 밝혔다.
현재 가해자로 지목된 모교수는 직무정지 상태로, 진료에서는 배제되어 있지만, 이는 임시조치에 불과하다. 아울러 병원 측의 재발 방지 ‘의지’로도 해석키 어렵다. 비교적 피해 조사와 재발 방지책에 의지를 보였던 병원은, 그러나 실제로는 ‘액션’을 할 의지가 있느냐는 비판도 나온다. 병원이 충남대에 ‘적극적인 징계’를 요구했는지도 확인되지 않는다.
박민숙 보건의료노조 부위원장은 이 같은 충남대병원의 태도에 대해 “지나치게 미온적”이라고 비판했다. 보건의료노조 여성담당위원장이기도 한 그는 “보건의료기관에서 여성 노동자들이 70%를 차지하는 만큼 병원과 노조는 사태해결 및 방지에 총력을 기울여야 한다”고 말했다.
비단 충남대병원의 사건에서도 알 수 있듯 병원내 성추행 사건은 폐쇄적이고, 상명하복의 수직적인 병원 조직 문화에 기인한다는 게 박 부위원장의 설명이다. “병원에서 사실상 의사는 ‘갑’이고 간호사는 ‘을’인 질서 속에서 일부 의사들은 여성 간호사에 대한 성폭력과 성추행을 은밀히 저지르고 있다.”
충남대병원 사건에서 주목해야 할 지점은 병원 측이 밝힌 피해자의 반응이다. 본지는 병원과 노조 측을 통해 피해자와의 인터뷰를 추진했지만, 성사되진 못했다. 성희롱 피해 여성들이 외부에 그들의 피해 여부가 알려지는 것을 꺼리는 경우가 많고, 병원에서 발생하는 성추행 사건 피해자들의 경우에도 쉬쉬하는 경향이 많다는 점은 익히 확인된 사실이다.
다만, 앞서 본지 보도에 “피해자들이 부담스러워한다”는 병원 관계자의 발언은, 보도를 지양하는 병원의 바람과 피해자의 우려가 맞아떨어졌다기보단, 병원이 접촉을 ‘차단’ 혹은 ‘피해자 핑계’를 대고 있다는 데 현재로선 무게가 더 쏠린다.
“일반적으로 병원은 대내외의 이미지를 중시한다. 내부에서 어떤 사건이 발생했을 때, 병원은 확실한 징계나 재발방지책 수립보단 은폐에 급급한다. 성희롱·성추행 병원으로 낙인찍히면 병원의 이미지가 추락하기 때문이다. 한편으로 병원 사용자들은 이른바 ‘양비론’ 등의 논리를 피며 피해자에게 책임을 떠넘기거나 은폐, 묵인, 방관 등 2, 3차 가해가 이뤄지기도 한다.”(박민숙 부위원장)
최근 발생한 전북대병원내 폭행사건을 보면, 해당 병원은 당사자들 간의 문제로 상황을 풀어내려는 인식이 강하다. 사과나 입장 발표는 전무했다. 충남대병원 역시 본지 보도 이후 기사에서 병원장 사진을 삭제해달라는 요구를 해왔으며, 병원 및 진료과 차원의 사과나 입장 발표는 전무했다. 병원내 사건 진행 패턴은 대개 유사하다. 솜방망이 처벌로 흐지부지 끝나고 이후 유사한 사건이 또다시 일어나는 격이다.
보건의료노조는 그러나 강한 징계 필요성을 강조했다. “경고나 감봉 등의 경징계는 방지책으로서 효과가 없다. 해임 등 고용단계가 단절되는 최대수위의 징계가 이뤄져야 재발 방지 효과를 볼 수 있다”는 게 박민숙 부위원장의 설명이다.
실제 모병원에서 발생한 모교수의 사건에선 병원 측이 이사회에 해임 요구서를 보내 끝내 해당 교수는 병원에서 쫓겨난 사례도 있었다. 이와 비교해볼때 “충남대의 결정을 기다릴 뿐”이라는 충남대병원은 차후 비판의 도마에 오를 가능성이 꽤 높아 보인다.
김양균 기자 angel@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