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일 정오.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이하 법사위) 전체회의 자리. 박능후 보건복지부 장관과 류영진 식품의약품안전처장이 굳은 표정을 짓고 있었다. 뒤에는 복지부와 식약처 공무원들이 잔뜩 긴장된 표정으로 앉아 있었다. 앞서 류 처장이 법사위에서 한차례 혼쭐이 난 터라 식약처쪽은 제법 단단히 준비를 한 듯 한 모양새였다. 입가에 미소를 띤 류 처장과 비교해 박 장관은 피곤한 듯 한 얼굴이었다.
이어 ㄱ법사위 전문위원이 보건복지위원회의 법률 검토 결과를 발표했다. “의사결정 제92항 국민연금법 일부개정법률안, 개정안 부칙 제5조에 있어 소멸시효가 완성되어 이미 권리가 소멸한 반환일시금을 지급받을 권리에 대하여 그 권리가 소멸하지 아니한 것으로 규정하고 있습니다. 이는 소멸시효 존재의 이유와 부합하지 아니하는 측면이 있으므로, 이와 같은 특례 규정을 두는 것에 대하여 면밀한 검토가 필요하다고 보았습니다. 의사결정 제91항, 93항, 94항, 99항 법률안에 대하여 각 정리한 작부수정을 하였습니다. 나머지 의사결정 95항, 96항, 97항, 98항, 100항 법률안은 검토결과, 별다른 문제점이 없다고 보았습니다. 이상입니다.”
“수고했습니다.” 권성동 위원장(자유한국당)의 목소리가 낮게 깔렸다. 이후 곧장 대체토론으로 이어졌다. 일명 ‘법사위 저승사자’로 불리는 김진태 의원(자유한국당)이 첫 타자로 나섰다.
“의사결정 제92항 국민연금법 개정 법률안은 지금 정부지원 검토 보고를 인용해서 소멸시효에 관한 특례규정에 둔 것에 대해 소위에 회부해서 면밀한 검토가 필요할 것 같습니다.” 그러자 복지부쪽에선 실망한 기색이 역력했다.
“잠깐만요.” 권성동 위원장이 말을 막았다. 위원장은 복지부 장관을 향해 말했다. “장관님, 전문위원이 지적한 사항과 관련해 수정하는 것에 동의하십니까?” 박 장관은 기다렸다는 듯이 대답했다. “네, 동의합니다.”
권 위원장은 “동의한 만큼 2소위에 회부하지 말고 바로 여기서 처리하도록 그렇게 하겠습니다”라고 말한 뒤 법사위 전문위원의 의견을 물었다. 전문위원도 “부칙 제5조를 삭제하는 것으로 수정하면 문제없다”고 동의했다. 위기는 넘겼다.
“의결하도록 하겠습니다. 의사결정 제91항, 92항, 93항, 94항, 99항의 법률안은 전문위원이 수정한 부분은 수정한대로, 기타 부분은 원안대로 의결하되, 92항 법률안은 논의된 안을 반영하겠습니다. 이의 없으시죠?” “네.”
일사천리인 듯 보였지만, 문제는 따로 있었다. 의원들이 상당수 자리를 비워 의결 정족수를 채우지 못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권 위원장의 말이 이어졌다. “의사협정 제95항, 96항, 97항, 98항은 지금 의결 정족수가 모자라서 논의된 내용을 가지고 오후 속개 시 의결토록 하겠습니다. 여당 간사님, 법률안 통과 책임은 여당에게 있다는 걸 알고 출석을 독려해주시고 야당 의원님들도 여야를 떠나서 국회의원의 임무를 잘 수행할 수 있도록 간사님들께서 좀 독려를 해주세요.” 권 위원장의 말에는 웃음기가 배여 있었다.
“복지부 장관, 할 만하죠?” 짬을 내 윤상직 의원이 질문을 던졌다. 윤 의원은 이어 류영진 식약처장에게로 화제를 돌렸다. “식약처장은 요즘 언론에 안 뜨니까 우리나라가 다 조용한 것 같아요.” 류 처장이 만면에 미소를 머금고 고개를 까닥했다. 윤 의원의 말이 이어졌다. 다시 복지부 장관을 향해서였다. “국공립 어린이집은 최저임금 기준에 맞춰서 올려줄 것 아닙니까? 가정 어린이집은 어떡하실 겁니까?”
박능후 복지부 장관이 특유의 허스키한 목소리로 답했다. “어린이집뿐만 아니라, 보건복지와 관련된 돌봄서비스를 제공하는 분들과 관련해서는 어린이집의 보육교사를 포함해 임금을 확보되도록 그렇게….” “또 하나가 사회서비스공간을 어린이집에서 우려하고 있어요. 보육교사를 어린이집 원장이 직접 통제할 수 있어야지, 사회서비스공간에서 고용된 사람을 파견하는 형식이면, 어린이집 운영 어떻게 하느냐 이거에요. 책임을 어떻게 질 거냐고 심각하게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나중에 굉장한 혼란을 초래할 겁니다.”
‘굉장한 혼란’ 박능후 장관이 곧바로 대답했다. “이러한 문제를 인지하고 원장의 책임 하에 될 수 있도록 그렇게 지금 판단하고 있습니다.”
“류영진 처장님” 별안간 권성동 위원장이 식약처장을 부르자, 류 처장은 움찔했다. “잘 보이게 이쪽으로 (가운데로) 좀 와보세요.” 식약처 공무원이 달려들어 의자를 빼고, 순간 작은 소동이 벌어졌다. 류 처장은 여전히 굳어진 채였다.
“제가 지난번 (류 처장이) 법사위에 출석했을 때, 부산 사투리를 좀 고치는 게 어떻겠냐고 이야기했더니 부산 지역 언론들이 ‘부산을 무시하는 것 아니냐’고 절 비판했습니다. 저는 그러니까 부산을 절대로 비판 안합니다. 부산을 존중하고, 부산시민들을 사랑하는데 처장님이 ‘-했습니다’ 이렇게 끝말을 정확히 해야 발언의 진정성이 전달이 잘 되기 때문에….”
류영진 처장의 입에서 실쭉 미소가 튀어나왔다. 류 처장이 대답했다. “예, 노력하겠슙니다.” 회의는 그렇게 끝났다.
오후 2시. 회의가 속개됐다. 의결 정족수는 ‘다행히’ 채워졌다. 회의실로 걸어 들어오는 박지원 의원에게 권성동 위원장이 농을 던졌다. “박 의원님 와주셔서 감사합니다.” “금방 다시 나갈 겁니다.” 회의실엔 왁자한 웃음이 터져 나왔다. “집단 여당이 법안 통과되는데 협조를 해야지, 사람들이 말이야, 뭐야 이거. 하하.”
복지위 안건은 원안대로 의결됐다.
김양균 기자 angel@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