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리의 상아탑에서 학생들을 상대로 수년째 합법적 ‘삥뜯기’가 자행돼 논란이 일고 있다. 대학과 교수들은 학생 사이의 ‘행사’일뿐 상관없는 일이라고 발뺌하는 이 기막힌 사건은 수평폭력의 전형을 보인다. 고신대학교(총장 전광식) 간호대학 이야기다.
고신대 간호대에서 ‘억지 춘양’으로 졸업반지 제작비용을 각출해 학생들의 반발을 사고 있다. 대학 차원의 개선 의지 노력은 도통 발견되지 않는 가운데 학생들의 부담만 가중되고 있는 상황. 설상가상 이의를 제기하거나 지불을 거부할 경우, ‘제보자 색출’ 및 왕따를 당할 수 있어 사실상 울며 겨자 먹기로 돈을 낼 수밖에 없는 분위기라는 게 학교 안팎의 목소리다.
그동안 졸업반지와 관련한 구설은 타 대학에서도 끊이지 않고 불거져왔다. 현재 상당수의 대학들이 표면적으로는 이 ‘전통’을 폐지하고 있지만, 고신대 간호대학은 이러한 추세를 되레 역행하는 모양새다. 지난해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고신대의 졸업반지값 각출과 관련, 한차례 문제가 제기된 적이 있었지만 ‘전통’은 여전히 고수되고 있었다.
학생회 간부의 발언에선 이러한 학교의 분위기를 엿볼 수 있다. 한 간부는 “혹시 졸업반지에 대해 의견을 내고 싶거나 할 말이 있으시면 ‘다른 방법’을 선택하시는 것보다는 저에게 먼저 연락을 줬으면 좋겠다”고 말하길 주저하지 않는다. 이 말의 저변에는 두 가지 태도가 배여 있다. “문제제기를 할 테면 해라”와 “‘전통’은 바뀌지 않는다”는 ‘통보’이다. 듣는 사람의 입장에 따라 강압적으로도 느껴질 수 있는 뉘앙스다. 사실 보건의료계열 학과의 경우, 선후배간의 서열 및 도제식 분위기가 남아있어 ‘찍히면 안 된다’는 의식이 만연한 것도 이러한 ‘자신감’의 한 축을 이룬다.
그렇다면 실제 학생들이 부담해야 하는 졸업반지 제작비용 부담은 얼마나 될까?
본지가 파악한 바로는 지난해 1인 기준 10여만원을, 올해에는 8만3000원이 책정됐다. 졸업할 때까지 적게는 16만원에서 최대 20여만원이 반지 값으로 소요되는 셈이다. 졸업반지에 대해 부정적인 시각은 팽배하지만, 이를 멈추지 못하는 이유는 “나도 냈으니 너도 내야한다”는 상황적 악순환 때문이다.
학생회 간부도 같은 맥락에서 졸업반지 각출의 명분을 댄다. “선배들은 이미 돈을 다 냈다. 300명 가까이 되는 선배들이 이미 낸 돈에 대한 권리를 빼앗을 수 없다. 5000여만원의 돈이 있으면 (각출을) 끊을 수가 있다. 학교에서 지원해줄 돈은 한 푼도 없는 상황이다.”
학생회도 할 말은 있다. 이처럼 금전 각출에 적잖은 부담과 반발이 있음을 인지하고 있지만, 악순환을 끊을 뾰족한 방법이 없다. 학생회의 한 학생은 기자와의 통화에서 "이번 기회에 대학에서 의지를 갖고 해결을 해주길 바란다"고 밝혔다. 그러나 대학은 “관여하지 않는다”는 방침으로 일관하고 있다. “학생들만의 ‘이벤트’일뿐 학교는 관련이 없다”는 것이다. 이렇듯 대학이 나 몰라라 하는 사이 학생 누구도 반기지 않는 ‘삥뜯기’의 사슬은 계속되고 있다.
◇“눈감고 듣지 말고 말하지 말라”
“좋은 전통이지만… 더 이상 말씀 안 드리겠다.”(고신대 ㄱ교수)
대학본부는 “간호대의 입장을 수렴한 후 이야기하자”고 했지만, 정작 간호대는 “할 말이 없다”며 입을 닫았다. 제보자는 본지 보도로 신상이 공개되는 것을 극도로 두려워했다. 내부고발자에 대한 혹시 모를 보복 때문이다. 온라인상에서 이 문제와 관련해 문제를 제기한 사람은 이후 신원이 드러나 교수들과 선배들에게 눈총을 받았다는 흉흉한 소문마저 돌고 있다.
앞서 거론한 것처럼 보건의료계열 학과에서 특히 졸업 이후에도 교수 및 선배들과 업무상 대면할 일이 많은 환경적 요인이나 이를 방관·묵인·방조하는 교수와 대학은 수평폭력을 조장한다. 학생들의 관계가 가해자와 피해자 혹은 전체와 배신자로 바뀌는 동안 대학의 조치는 전무했다.
“전공책 값은 5만원에 복사비·식비·교통비 등 저희는 돈이 부족한 대학생입니다. 한 달 생활비 30만원 중 8만원을 낸다면 22만원으로 한 달을 살아야합니다. 아끼고 아낀다면 살 수 있는 금액이지만, 저보다 적은 금액을 용돈으로 받거나 생활비 대출로 충당해 쓰는 친구들에겐 더 소중하고 큰 돈입니다. 부모님이 피땀 흘려 번 8만3000원은 정말 큰 돈입니다.”
제보자의 울분 섞인 한탄이다. 전광식 총장의 대학 소개 인사말에서 “고신대학교를 통하여 여러분이 더욱 의미 있는 삶을 찾으며, 아름다운 미래를 펼쳐갈 수 있기를 소망한다”고 썼다. 전 총장이 말하는 의미 있는 삶이 뜻하는 건 무엇일까? 상명하복의 ‘까라면 까라’는 강압적 시스템의 굴종일까? 정당한 문제제기의 용기일까? 대학이 답할 차례다.
*본지 보도 이후 고신대학교 측이 입장을 전해왔다. 대학 관계자는 “이번 계기를 통해 더 자세히 알아보고 이 같은 일이 재발하지 않도록 지도하고 노력하겠다. 악의 고리는 끊어내야 한다. 학생들이 부담을 갖게 되면 안된다. 잘못된 관행은 없어져야 한다”고 말했다. 이러한 대학 측의 입장이 실제 대책 마련으로 이어질지 쿠키뉴스는 해당 사태를 주시할 예정이다.
김양균 기자 angel@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