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일 오전 국회 잔디밭. 이어폰을 끼고 국회 정론관을 향해 걷던 기자를 향해 한 중년여성이 뛰어들었습니다. 그는 피켓을 들이밀며 고함을 쳤습니다. “젊은 사람들이 정신차려야해. 우리 박근혜 대통령님이 이렇게 억울하게 당하는 걸 제대로 알란 말이야!”
기자나 국회 경비 모두 미처 손쓸 틈도 없이 벌어진 일이었습니다. 귀가 떨어져 나갈듯한 사자후에 어안이 벙벙해진 것도 잠시 오후가 되자, 이들의 ‘퍼포먼스’를 전하는 뉴스가 포털 사이트를 뒤덮기 시작했습니다. 이날 조원진 대한애국당 대표는 박근혜 전 대통령의 구속 연장에 반대하며 단식투쟁을 선언했고, 조 대표를 포함한 박 전 대통령의 지지자들은 국회 본관 앞의 잔디에 태극기를 ‘심는’ 퍼포먼스를 벌였던 겁니다.
때마침 국회에 있단 이유로, 총대를 멨습니다. 금방 비가 쏟아질 듯 먹구름이 밀려오고 바람도 거세지는데, 잔디밭에 박힌 태극기는 펄럭이고 있었습니다. 쪼그리고 앉아 태극기를 ‘심는’ 이들 주변을 서성이고 있자니, 한 여성분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조심스레 다가가 말을 걸었습니다. 말투는 부드러웠습니다.
“어머니, 어디 단체에서 오셨어요?”
“조원진.”
“네?”
“저는 조원진 의원 캠프에요.”
“아… 그러셨구나. 어머님 만나서 정말 반가워요. 오늘 행사의 취지가 뭔지 여쭤봐도 될까요?”
“박근혜 대통령님이 무죈데.”
“네.”
“석방을 시키질 않고!”
“네.”
“또 재판을 연기한다고 그러잖아요. 6개월.”
“아….”
“6개월 연기하면, 그 연약한 몸으로 지탱하기 힘드니까 우리는 이런 시위를 할 수 밖에 없어요.”
“체력이 약해서요?”
“응. 무죄석방. 연세도 있으시고. 또 죄도 없으시고. 죄도 없는 게 밝혀졌고. 지금까지. 그러니까 석방을 해달라고 우리는 이거 하는 거죠. 석방시켜달라고.”
“그러니까 같이 오신 분들은 대한애국당….”
“태극기.”
“네?”
“아이, 애국동지들이죠.”
“박근혜 전 대통령에게 전하고 싶은 말이 있으세요?”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여성분은 깊은 한숨을 쉬셨습니다. 언뜻 눈물도 그렁그렁한 것 같았습니다. 이때부터 저도 진지하게 인터뷰를 시작했습니다. 감정이나 신념에 대한 존중이 필요할 것 같았습니다.
“아… 정말 할 말 없지만….”
“어머니 하실 말씀 많으실 것 같은데요.”
“너무 할 말 없습니다. (박근혜) 대통령님. 건강하게 우리가 모시러 갈 때까지 기다려 주십시오.”
“근데 어머님처럼 박 전 대통령을 지지하는 분들도 계시지만, 비판적인 시선도 많거든요. 그분들께도 한 말씀해주세요.”
“양심이 있으면 제대로 똑똑하게 모든 걸 처신해 달라고 말하고 싶어요.”
대화는 한참이나 더 계속됐지만, 여기까지만 전합니다. 문재인 정부는 지지자들뿐만 아니라, 꼬인 실타래마냥 얽힌 이분들과의 관계를 어떻게 풀어가야 할까요? 답답해졌습니다. 설사 ‘동원’되었던, 자발적이든 간에 극단의 끝에 마주선 이들 역시 국민들이니 말입니다. 갈길이 멀어 보입니다. 돌아서려할 때, 강풍에 바닥에 꽂혀있던 태극기 하나가 힘없이 쓰러지고 말았습니다.
김양균 기자 angel@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