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 28일 오전 11께 건강보험심사평가원 서울사무소에서 비공개 긴급간담회가 진행됐다. ‘긴급’이란 표현이 붙었지만, 사실 보건복지부 입장에서 급할 건 없었다. 이 비공개 회의는 훗날 보고서를 통해 “간담회 등 당사자 목소리 청취하였음”으로 작성되는 것 이상의 의미는 없었다.
사실 정책에 대한 각종 민원과 급기야 비판적인 언론보도가 이어지자 급조된 자리였다. 이날 보건복지부에선 ㅈ과장을 포함한 2명이,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선 ㅇ부장 등 3명이 참석했다. 난임 환자들은 보건복지부 공무원들에게 수일 전 정부가 발표한 “만 44세 이하 난임 부부의 난임 치료 시술(체외수정·인공수정 등 보조생식술) 건강보험 적용”의 ‘구멍’을 강하게 비판했다.
그러나 정책 시행을 코앞에 둔 상황에서 간담회의 ‘효력’은 기대하기 어려웠다. 보건복지부는 정책에 영향을 받을 당사자들의 목소리를 수용하거나 정책의 허점을 인지하는 것보다 당장 시행될 정책 홍보가 더 급선무였기 때문이다.
쿠키뉴스는 정책 시행 3일전에 진행된 비공개 간담회 회의록을 입수했다. 회의록에는 정책 실무를 담당하는 인사들의 인식이 그대로 드러났다. 의료계 일각에선 박근혜 정부의 사람으로 분류되는 ㅈ국장이 이번 정책을 성공시킬지 여부를 두고 ‘시험대’라는 뒷말이 오가기도 한다.
◇ 발표와 시행은 고작 15일 간격
정책에 대한 비판적인 목소리와 석연치 않은 시선이 나오는 이유 중 하나는 정책 발표 및 시행이 거의 동시에 이뤄졌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정책 시행 전까지 최소 수개월에서 최대 일 년 이상의 시간을 둔다. 정책 시행의 결과로 혹시 모를 피해와 사각지대가 발생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서다.
그러나 이번 난임 정책은 왜 이토록 일정을 급하게 짰을까? 9월 28일 복지부의 답변을 보면, 그 실마리를 추정할 수 있다.
난임 시술의 건강보험 적용 정책은 2014~2018년 시행사업 중 하나였다. 당초 시행시기를 앞당겨 작년 10월에 시행하려고 검토했으나 수가 결정, 시술 표준화, 행정 절차 등에 시간이 부족해 시행하지 못했다. 2017년 10월 시행은 7, 8월 정부 예산이 확정돼 시행까지 충분한 검토의 시간을 갖지 못한 행정상 어려움이 있었다.
당초 시행사업으로 예정돼 있었다면, 예산 확보는 사실상 끝난 상태를 말한다. 전년도에 한차례 시행을 미루었던 것을 미루어보면, “7, 8월 정부 예산이 확정돼 시행하게 됐다”는 말의 의미는 하나다. ‘10월에는 반드시 정해진 예산을 써야만 했다’, 즉 정책 발표를 해야 하는 상황이었단 이야기다. 실제로 정진엽 전 보건복지부 장관은 2016년 10월 6일 명동에서 난임 환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내년 10월부터 난임 시술의 건강보험 적용을 통해 난임 부부의 부담을 더욱 줄이도록 하겠다”고 밝힌 바 있었다.
올해 10월 시행이 정해져 있던 상황에서 정책 발표가 늦어져 혼란을 야기했다는 추론이 가능하다. 결국 “충분한 검토의 시간을 갖지 못했다”기 보단 정책 발표를 늦게 하는 바람에 이미 예정된 사업의 정책 설명과 이해를 구하는 시간을 포기하고 만 셈이다.
결정적인 이유는 확실치 않다. 여러 이유 중에는 드라마틱한 난임 환자 지원책을 내놓기 위한 ‘정책쇼’일수도, 5월 장미 대선의 영향일 수도 있다는 소문만 분분하다. 그러나 진위 여부와는 상관없이 보건복지정책은 일관되게 이뤄져야 한다는 점에서, 복지부는 정책 당사자들을 도외시 했다는 비판에서 자유로울 수 없게 됐다.
이와 관련해 김승희 의원(자유한국당)은 “난임부부지원사업의 건강보험 급여화 과정에서 난임 부부 당사자들뿐만 아니라 의료 현장에서도 혼란이 있었다”며 “이번 혼란의 가장 큰 책임은 정책결정과정을 충분히 국민과 이해당사자들에게 정보를 공개하고 의견을 수렴하지 못한 정부에 있다”고 밝혔다.
김양균 기자 angel@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