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 말의 고관이자 뛰어난 학자였던 안향(安珦·1243~1306)이 우리나라 유학자의 원조라는 사실은 일반인들에게 다소 생소하다. 1289년 당시 세자였던 충선왕을 수행해 원나라 수도 연경을 방문한 그가 주자(朱子)의 저서를 필사하고 공자(孔子)의 초상을 모사해 귀국한 다음 고려 주자학을 확립하고 조선 성리학의 기초를 놓았던 것이다.
1542년 풍기군수 주세붕이 세우고 8년 뒤 퇴계 이황이 명종으로부터 직접 친필 편액을 받아 내건 ‘소수서원(紹修書院)’이 안향의 사묘(祠廟)이기도 하다.
하지만 지금에 와서 안향의 학문적 깊이와 공적은 저평가되고 있는 게 사실이다. 이색과 정몽주, 정도전, 이숭인을 거쳐 이황, 이율곡 등으로 이어지는 한국 유학의 계보를 시작되게 했음에도 안향의 명성은 상대적으로 낮은 것이다. 오히려 해외에서 안향의 학문을 깊이 연구해 ‘동방의 주자’ ‘동방의 성학(聖學)’이라 부를 정도다.
이에 국내 유학자와 역사학자, 순흥 안씨 문중 등이 안향의 학문과 사상을 연구하고 조명하기 위해 힘을 모았다. 이들은 오는 27일 오전 11시 경기도 안양시 만안구 안양대학교 수봉관에서 안양대 부설 ‘안향 동방사상연구소’를 공식 개소한다.
안경환 약학박사(얼굴사진)가 이사장을, 손흥철 안양대 교수가 소장을 각각 맡아 출범하는 연구소는 앞으로 안향과 관련한 다양한 연구활동과 사업을 펼쳐나갈 예정이다. 특히 안향을 통한 인성교육 함양 방법을 모색하면서 학술대회와 출판사업 등에 주력할 계획을 갖고 있다.
아울러 연구소는 안향의 현실 국방의식과 실천정신에서 오늘날 위기에 처한 한국의 해법을 찾는데 궁극적인 목표를 잡았다. 안향은 중국의 만리장성을 직접 보고서 진시황의 의식과 실천력을 높이 평가한 ‘만리성(萬里城)’이라는 글을 남기는 등 현실에 적용할 수 있는 귀중한 업적을 남겼던 것이다.
안경환 이사장은 “안향의 유학사상은 고려 말 국가적인 시련과 혼란을 수습하는데 도움을 주고, 그것이 신진사대부의 사상적 기반이 돼 바로 조선 개국 이념으로 등장했을 뿐 아니라 그의 학문은 서양의 다수 학자들이 동양 사상을 연구하도록 이끌도록 했다”면서 “연구소는 앞으로 동서양 학문의 재융합 운동을 펼쳐가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안 이사장은 또 “안향 동방사상연구소가 문을 열기까지 큰 도움을 주신 안양대학교 법인 김광태 이사장과 유석성 총장께 깊이 감사 드린다”면서 “많은 분들의 기대에 어긋나지 않게 연구소를 운영하겠다”고 말했다.
정수익 기자 sagu@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