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한테 굶고 소변 참으면서 일하라고 할 거 아니잖아요”

“딸한테 굶고 소변 참으면서 일하라고 할 거 아니잖아요”

[현장보고] 을지병원 파업…그들이 찬 로비에 머무는 이유

기사승인 2017-10-26 15:45:56


보름 전 문나영(가명)씨는 서랍장에서 오래전에 마련해둔 선글라스를 꺼내들었다. 언젠가 여행지에서 몇 번 쓰고는 통 사용할 기회가 없던 검은 안경. 나영씨의 표정은 복잡했다. 오늘은 안경을 쓸 작정이다. 마스크도 챙겼다. 도통 진정되지 않는 불안함만 빼면 얼추 준비를 마친 것 같았다. 

평소 멀게만 느껴졌던 병원 출근길(나영씨는 병원에서 일한다)을 무슨 정신으로 왔는지 모른다. 병원에 들어서자 로비에는 이미 검정안경과 모자, 마스크를 착용한 직원들이 삼삼오오 모여 있었다. 이마에 띠를 맨 사람도 여럿. 동료가 건넨 조끼를 받아든 나영씨는 그제야 아까부터 주먹을 쥐고 있었다는 걸 깨달았다. 손바닥에는 땀일지 긴장일지 모르는 액체가 흥건했다. 

‘약해지면 안돼.’ 나영씨는 이를 악물었다. 미칠 듯이 요동치는 가슴을 진정시키려는 듯, 혹은 억누르려는 듯. 스물넷, 그 날은 나영씨가 난생 처음으로 파업에 동참한 순간이었다.  

초가을 날씨가 완연했던 10월 25일. 서울 노원구에 위치한 을지병원 로비에는 병원 직원들이 모여 있었다. 그동안 몇 번의 기자회견과 협상이 진행됐지만 병원, 더 정확하게는 학교법인 을지학원(이사장 홍성희)은 요지부동이었다. 결국 10일부터 파업이 시작됐다. 그렇지만 응급실, 수술실, 중환자실, 분만실, 신생아실, 외래진료는 정상적으로 이뤄지고 있었다. 


병원 홍보팀 소속이라던 사내가 말했다. “월급을 올려달란 거죠. 과도한 상승률을 요구했어요. 그래서 입장차가 좁혀지지 않고 있어요.” 그의 말을 막은 건 기자회견장에서 들려온 일말의 외침 때문이었다. “식사와 화장실 갈 시간이 없어 위장병과 방광염에 걸린 직원들….” 다시 홍보팀 직원의 말. “병원 운영은 큰 피해를 입고 있어요.” 

사실 인접한 도봉ㆍ강북ㆍ노원의 인구는 120만 명을 상회하고, 성북을 포함한 동북 4구의 인구와 가구 수에 비해 의료기관은 턱없이 모자란 상황이다. 을지병원은 상계백병원과 더불어 120만 명을 감당해내고 있다. 지역 주민들이 좀처럼 병원을 바꾸지 않기 때문에 을지병원의 환자는 늘 넘쳐난다. 이전부터 의사, 간호사, 간호조무사, 응급구조사 등 의료진뿐만 아니라, 사무행정직부터 단순 노무 직원까지 을지병원에 속한 직원들은 격무에 노출될 가능성이 높은 환경이었다. 

그러나 격무와 비정상적인 직원 이탈의 근본적인 원인은 병원 구조적인 문제에 기인한다는 지적이 지속적으로 제기돼 왔다. 최근 의정부 을지병원 신축이 진행되고 있지만, 직원들의 시선이 곱지만은 이유가 여기에 있다. 턱없이 낮은 임금, 적은 인력, 비정규직을 통해 ‘뽑아낸’ 돈으로 새 병원을 세운다는 분노 때문이다. 

“백병원에서 직원 채용 공고가 나오면 직원들이 빠져나가요. 참다 참다 그만두는 겁니다. 일이 힘들어서? 월급 많이 주는 곳으로 가는 이기주의? 그렇지 않아요. 병원의 ‘도구’가 되기 싫어서 정든 동료들과 직장을 어쩔 수 없이 떠나는 겁니다.”

김란영(가명)씨의 표정은 담담했다. 익숙한 직원 유니폼 대신 이러한 고단함을 선택한 이유에 대해 그는 “(을지병원에서) 즐겁게 일하고 싶어서”라고 했다. 병원 파업이라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졌건만 환자들과 지역 주민들은 의외의 반응을 보인다고 했다. “이해한다”는 반응이 적지 않은 상황에 기자는 일견 납득되지 않았다. 

“우리가 얼마나 열악한 처우인지 주민들은 이미 알고 계세요. 물론 항의하는 환자와 보호자들도 계시죠. 죄송하다고, 왜 이렇게 할 수 밖에 없는지를 간곡하게 말씀드리면 그러세요. ‘꼭 바꾸라’고요. 이런 말을 들으면 저도 모르게 눈물이 나요.”


◇ 소박한 바람

서울 을지병원 로비에는 ‘섬’이 있다. 누군가는 ‘점거’로 받아들이고, 또 다른 이는 ‘비탄의 장소’라 말하는 분리된 공간. 로비는 열흘 남짓한 시간동안 ‘섬’처럼 격리됐다. 문나영(가명)씨는 핫팩을 손에 쥐고 두터운 양말을 신었다. 출퇴근길에 혹은 환자를 돌보느라 바삐 오갔던 병원 로비가 이토록 추울 줄은 그도 미처 몰랐다. 비닐 따위를 깔고 바닥에 앉아 있노라면 한기가 전해졌다. 몇 걸음 걸어가면, 병원을 나갈 수 있다. 태양이 비치는 그곳 대신 냉골 바닥을 선택한 건 순전히 나영씨의 선택이었다. 

이십대. 환자를 돌보고 싶었던 나영씨가 병원 로비에 설 수 밖에 없던 이유는 그 자신을 위해서이기도 하다. 난생처음 세상을 향해 소리를 내었던 건 일하는 ‘기계’가 아니라고, ‘나는 사람이다’라고 외치고 싶었기 때문이다. 파업에 동참했다는 주홍글씨가 새겨져 훗날 승진에서 밀리는 등 혹시 모를 불이익이 두려워 얼굴을 가리려고 썼던 선글라스와 마스크를 벗어버린 것도 이러한 심정에서였다. 

이날 병원 로비에 모여 있던 수많은 ‘나영씨’는, 그러나 세상과 ‘싸움’을 벌이기에는 너무 어려 보였다. 동시에 이는 봉쇄된 ‘섬’에 설 수 밖에 없었던 이들의 절박함이 어느 정도였는지를 반증하는 것이기도 했다. 

“파업은 처음이었죠. 두려웠어요. 무서웠고요. 지금이요? 괜찮아요. 엄마, 아빠도 내심 걱정을 하겠지만 그러세요. 잘 하라고, 이기라고요.”

의지를 다져도 ‘무노동 무임금’의 원칙 앞에선 매순간 작아지기도 한다. 서울과 대전의 수백 명의 나영씨는 저마다의 생계 문제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하필이면 오는 31일은 급여일이었다. 이 상황이 하루빨리 끝나 일터로 돌아가길 바라지만 상황은 더디게 진행되고 있다. “저도 사람인데 왜 먹고 사는 게 걱정되지 않겠어요. 그렇지만 여기서 도망치면, 멈춰버리면 다음은 없을 것 아녜요? 제 후배들은 어떡해요.”

직원 중 상당수는 자취생이다. 월세와 생활비를 제하면 부모님께 단 얼마라도 용돈을 보내긴 커녕, 언감생심 저축도 기대하기 어렵다. 그만큼 월급은 ‘짜다’. 그렇다고 여가 생활을 제대로 누리는 것도 아니다. 3교대를 마치면 자취방에서 쓰러져 자다 다시 병원에 오는 생활이야 대한민국의 왜곡된 의료 환경에서 새삼스러운 일은 아니겠지만, 을지병원의 경우는 그 정도가 심하다는 게 현장에 모인 직원들의 주장이다. 


20년 동안 일한 직원 월급은 타 민간 병원 직원 신입과 똑같다는 ‘기묘한’ 사실은 직원들의 잦은 이탈로 이어지고 있었다. 을지병원 소속 간호사의 근속년수는 3년에 불과했다. 이날 기자와 만난 여러 직원들은 “스스로를 지키고 싶었다”고 입을 모았다. 한 직원은 지난 3년 새 동기 중 10명이 퇴사했고, 남아있는 이들도 퇴사를 고려중이라고 귀띔했다. 

“처음 입사했을 때는 ‘열심히 배우자’는 마음뿐이었어요. 그렇지만 시간이 가도 나아지기는커녕 상황은 더 악화되기만 했어요. 밥을 병동으로 올려다줘도 먹을 시간이 없어요. 화장실도 못가요. 미래를 보고 참자고 해도 선배들을 보면 더 좌절하게 됩니다. 악착같이 버티고 버텨 남아있는 사람들을 보면, 왜 내가 병원에 들어오려 했는지, 환자를 돌보고 싶었는지조차 잊어버리곤 해요. 그걸 참을 수가 없었어요.”(한 직원의 이야기)

이승진 병원장에게 전하고 싶은 말이 있냐는 말에 직원들은 고개를 저었다. 한 직원은 “사실 그가 할 수 있는 건 없어요. ‘힘’은 이사장에게 있으니까요. 이사장에게 묻고 싶어요. 딸에게, 아들에게 밥을 굶고 생리현상을 참으면서 일하라고 하겠느냐고요.” 

이들은 다시 병원으로 돌아갔을 때, 몇 푼이라도 저축을 하고 밥을 굶지 않아도 되는, 생리현상을 참느라 방광염에 걸리지 않는 환경이 되길 기대한다. 이러한 소박한 바람을 간직한 서울과 대전의 수많은 ‘나영씨’는 오늘도 병원 로비에서의 기약 없는 버팀을 이어가고 있다. 

김양균 기자 angel@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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