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이 입장하자, 더불어민주당은 박수를, 자유한국당은 항의 현수막을 들었다. 10일 오전 10시 문재인 대통령의 임기 두 번째 국회 시정연설이 시작되려 하고 있었다.
1일 오전 8시50분 국회 본관 4층. 본회의장 입장을 기다리는 줄이 늘어섰다. 이날 오전 10시 문재인 대통령의 국회 시정연설이 예고돼 있었다. 기자의 수는 정해져 있어 며칠 전 취재 신청 경쟁도 순식간에 끝났었다. 아침을 거른 한 기자는 간식거릴 들고 입장하려다 제지를 당했다. 보안을 위해 가방 검사도 약식으로 이뤄졌다. 서류를 정리하고 마이크를 점검하는 등 국회 본회의장에선 여러 사람이 분주하게 오가고 있었다. 옷차림은 대동소이. 남자는 감색, 여성은 검은색정장 차림이다.
대통령의 연설이 끝나자마자, 각 당은 저마다의 입장을 내놓을 것이다. 여당은 찬성, 야당은 반대의 목소릴 낼 것이다. 쏟아질 뉴스란 크게 세 가지다. 대통령 발언, 여야 입장, 각계 반응. 사실 청와대발 뉴스는 이미 수 시간 전에 타전됐다. 이날 대통령의 메시지는 예산안 및 법안 처리를 당부하리란 것은 이미 공공연한 비밀이다. 일자리, 소득주도성장, 혁신성장, 공정경제 등 정부 개혁 과제가 무리 없이 ‘굴러가도록’ 야당에 메시지를 던지고자 국회에 오는 것이다.
“잠시 후 오전 10시 본회의가 개의되겠습니다. 의원 여러분께서는 본회의에 참석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제354회 11차 본회의의 시작을 알리는 방송이다. 오전 9시29분 카메라 기자들은 덩달아 바빠졌다. 중진 의원끼리 머릴 맞대고 악수를 한다든지, 속삭이는 ‘그림’을 놓치지 않으려는 것이다. 약속한 듯 플래시가 터질 때, 의도적인 노출을 꾀하는 의원도 더러 있다. 9시 40분 그러나 본회의장은 비어있지만, 카메라 렌즈는 여전히 입구를 향해 있었다.
앞서 중국과의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합의가 이날 연설의 설득력을 더한다는 평가가 나온다. 대통령의 메시지는 거침이 없을 것이다. 안보 불안을 불식되고 있다. 새 정부의 ‘드라이브’에 힘을 실어달라….
9시47분, 아직도 의원들은 입장하지 않고 있었다. 난간에 올려둔 겉옷을 치워달라는 요구가 왔다. 요청을 받은 모기자는 머쓱하게 웃고 만다. 9시50분, 장내가 술렁였다. 하나, 둘 의원들이 입장하자, 여기저기서 카메라 플래시가 어지러이 터졌다.
9시54분, 더불어민주당, 자유한국당, 국민의당, 바른정당, 정의당 소속 의원들이 줄줄이 본회의장에 입장하며 장내는 일순 소란스러워졌다. 탕 탕 탕 정세균 국회의장이 회의 시작을 알렸다. “2018년도 예산안에 대한 정부의 시정연설을 대통령으로부터 직접 듣겠습니다. 앞으로도 국회와의 긴밀한 소통과 협치를 위해… 의원여러분들도 예의와 품격을 갖추시기 바랍니다…. 정부의 시정연설을 상정합니다. 잠시 후 대통령께서 입장하셔서 연설을 하겠습니다.”
대통령이 입장하자, 의원들은 기립박수를 쳤다. 여러 의원들과 악수를 나누던 대통령이 연석에 당도하고는 잠시 좌중을 바라봤다. 이윽고 연설이 시작됐다. “정부가 편성안 예산안을 직접 설명 드리고자…. 한국 경제는 국가 부도사태를 맞았던 그때와는 완전히 달라졌습니다. 그 후유증은 국민들의 삶을 바꿔놓았습니다. 실직의 공포와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문 대통령은 IMF가 우리 사회 전반에 끼친 영향을 짚었다. ‘국가의 존재 이유가 무엇인가’라는 문구가 본회의장 전면의 대형 스크린에 떴다. 연설은 계속됐다.
“저는 다른 욕심이 없습니다. 제가 이 직무를 절반이라도 해낼 수 있다면… 이 책무만큼은 공동의 책무로 여겨주실 것을 간절히 바랍니다.” 박수가 터져 나왔다. 연설은 이어졌다.
“아프면 돈 걱정 없이 치료받을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저와 정부는 지난 6개월간 국민들의 뜻을 받들어 대한민국을 나라답게 국가혁신의 기반을 마련해놨습니다….” 이날 문 대통령은 강한 어조로 연설을 이어나갔다. 연설의 톤과 단어 설정은 격정적이었으며 국민 공감에 집중한 모양새도 엿보였다. “사람 중심 경제는 우리 자신과 우리 후대를 위한 변화입니다. 지금이 변화의 적기라고 믿습니다.” 다시 박수.
“사람 중심 경제는 경제성장의 과실이 모두에게 돌아가는 경제입니다. 모든 사람, 모든 기업이 공정한 기회와 규칙 속에서 경쟁하는 경제입니다…. 국민 누구라도 낡은 질서와 관행에 좌절하지 않도록! 이것이 제가 말하는 적폐 청산입니다…. 국회가 입법으로 뒷받침 해주시길 기대합니다.”
문재인 대통령은 경제·사회·검찰·안보 등 정부 개혁 및 기조를 부드럽지만 강한 어조로 밝혔다. 이날 연설에서 밝힌 부분은 앞선 국정과제의 구체화된 버전이었다. 각 정부 사업에 따라 소요되는 예산이 열거됐다. “에취.” 10시25분 의원 중 누군가가 큰 소리로 기침소릴 냈다. 의원석에선 메모를 하거나 휴대전화를 들여다보는 이들이 나오기 시작했다.
10시31분 자유한국당 의원석에서 현수막이 올랐다. ‘공영방송 장악 음모 멈춰라’라고 쓰여 있었다. 문 대통령의 표정이 굳어지고 목소리도 일순 작아졌다. 야당 쪽을 바라보며 대통령이 말했다. “새 정부가 의욕적으로 추진하는 과제를 대승적 차원에서 국회의 이해를 특별히 부탁드립니다.”
연설이 끝나자 자유한국당 의원들을 제외한 나머지 당 의원들은 기립박수를 쳤다. 문 대통령이 현수막을 든 자유한국당 의원들에게 다가가 손을 내밀자, 여당 쪽에선 우워워 하는 함성 소리가 들렸다. 박수는 대통령이 퇴장하고 난 후에도 한동안 이어졌다.
김양균 기자 angel@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