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4일 오후 8시34분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글 한편이 올라왔다. 서울대병원(병원장 서창석) 간호사의 초임이 36만원이라는 충격적인 내용이었다. 해당 글은 엄청난 반향을 일으키며, 온․오프라인 상에서 ‘난리’가 났다. 각 언론사는 앞 다퉈 이 사안을 보도했으며 국정감사에서도 주요하게 다뤄졌다.
글을 쓴 사람은 서울대병원의 7년차 간호사이자, 전국공공운수노조 의료연대본부 서울지역지부 서울대병원분회(서울대병원 노조) 문화부장으로 활동 중인 최원영씨(31). 서울대병원 노조에서 수개월에 걸쳐 조사해온 내용을 모공중파 방송에서 보도를 거부키로 한 날, 최 간호사는 페이스북에 글을 썼던 것이다. 사태가 일파만파 커지자, 꿈쩍하지 않던 서울대병원도 그제야 움직였다. 17일 슬그머니 간호사들이 받지 못한 ‘초임’을 입금했던 것이다. 최 간호사를 27일 오후 서울모처에서 만나 그간의 자초지종을 들어봤다.
- 언론에는 최 간호사 개인의 내부 폭로인 것 마냥 비쳐지더라.
그렇다. 본의 아니게 내가 간호사라 전면에 많이 나오긴 했지만, 이번 일은 노조 차원에서 노력한 사안이었다. 물론 실제 경험한터라 더 분하기도 했다. 그 점에서 대중들도 공감을 한 것 같다. 간호사 초임 문제는 큰 사안이라 노조는 상당한 시간과 노력을 쏟아 부었다. 언론은 내부폭로인 것처럼 보도해 안타깝다. 제보가 계속 오고 있다. 만약 언론에서 병원 노조의 역할이 강조됐다면, 각 병원 노조에 연락을 하지 않았을까. 각 지역의 노조가 활성화되는 계기로 확대될 수도 있었다. ‘한 명의 특이한 사람’이 폭로한 것처럼 부각되니까 일시적인 현상으로 그칠까봐 아쉽다.
- 대형병원 간호사들 사이에서 상당한 이슈가 됐다.
한양대병원과 전남대병원은 후속 조치를 약속했다고 들었다. 그러나 다른 병원은 침묵을 지키고 있다.
- 설득하는 과정이 어려웠다고 들었다.
채권소멸시효 때문에 급했다. 채권소멸을 멈추고자 내용증명을 보냈지만, 서울대병원은 강경했다. ‘절대로 소급은 불가하다. 소송하려면 하라’고 나왔다. 8월 16일 조합원 5명이 내용증명을 써서 보냈다. 역시 병원은 미동도 안했다. 간호부 순회를 돌때마다 간호사들에게 알렸다. 1분이라도 더 이야기하려고 달라붙고 소식지 나눠주고 설명했다. 간호사들이 ‘죄송하다’며 우릴 피하더라. 혹시 모를 불이익을 두려워한 것이다. 간호사들은 일단 본인이 월급을 받지 못했다는 사실도 모르고 있었다. 여기엔 월급체계를 알려주지 않는 탓도 있다. 나만해도 초임으로 30만원을 받는다고 당시 누가 말해줘서 알았다.
- 의료기관에서 간호사를 ‘낮춰’보는 인식이 있다는 것을 상징적으로 드러낸 사건이었다.
똑같이 채용돼 동일 임금 테이블의 적용을 받아야 하는데, 유독 간호직종만 첫 달 임금의 근거가 없다. 그렇다고 간호직종이 일을 편하게 하느냐, 그것도 아니다. 병원내 모든 직종 통틀어서 누가 제일 울고 힘들어할까. 간호사일 것이다. 3교대와 군대문화 특유의 분위기, 퇴근도 쉽지 않은 고된 노동강도하에서 근무 첫 달은 상당한 중압감을 주기 마련이다. 간호사 채용과정을 보면 병원은 갑(甲)이다. 무더기로 300명 뽑은 후, 매번 TO가 필요하면 순서대로 발령하는 식이다. ‘부름’이 있을 때까지 마냥 기다려야 하는 식이다.
- 노사 실무교섭위원회에서의 논의도 벽에 가로막혔었나.
그렇다. 타협의 여지가 없었다. 노조는 서울대병원 임금 규정에서 신규 초임을 요청했다. 그러나 서울대병원은 지급 범위를 최소화하려고 했다. 실무교섭위원회에 나온 병원 ㄱ총무부장과 ㅅ노사협력과장의 태도는 고압적이었다.
- 페이스북 글이 사태 해결의 물꼬를 트는데 결정적이었다.
기사가 엄청나게 쏟아졌다. 당초 모 공중파 방송국 기자는 보도를 안 하겠다고 밝혔다. ‘병원은 지급할 예정이라고 하니 기사를 못 쓰겠다’고 하더라. 답답하고 방법이 없어서 결국 페이스북에 간호사 초임 문제를 썼다. 그리고 3일 후 JTBC 뉴스룸에 출연해 초임 문제를 정면으로 폭로했다.
- 뉴스룸 출연 후 병원의 태도변화가 있었나.
병원은 아무런 반응도 없었다. JTBC 기자에게 병원 측이 강경하게 따졌다고 하더라. 언론 보도로 사태가 커지니까, 17일 슬그머니 입금했다. 내용증명을 쓴 간호사 310명이 4차에 걸쳐 내용증명을 보냈지만, 서울대병원은 어떠한 준비도 하지 않고 있었음을 반증하는 부분이다.
- 2018년에 신입 간호사들의 초임은 변화가 있을 것으로 예상하나.
간호대 졸업생들에게 다시 36만원을 주진 않을 거다. 최저임금은 당연히 주지 않을까. 노사 단체 협약에 교섭을 거쳐 합의 사항에 이 부분이 명시돼야 한다.
◇ ‘엑스트라 머니를 되찾아라’
이번 사태는 서울대병원을 비롯해 10개 국립대병원 전체의 문제로 확대되려는 모양새다. 이와 관련해 의료계에서는 비단 간호사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주장이 나온다. 최근 국감에서 불거진 전공의 폭력 사태와 더불어 전공의들의 처우 역시 되돌아봐야 한다는 요구다.
이런 상황에서 선두에 선 서울대병원의 사과나 재발방지 등 입장발표는 전무했다. 진료와 밀접한 사안이라는 점에서 진료 전반을 관장하는 김연수 서울대병원 진료부원장은, 그러나 침묵을 지키고 있다. 비단 서울대병원뿐만 아니라, ‘전향적’인 후속조치를 발표한 국립대병원은 좀처럼 찾아보기 어렵다. 인터뷰 말미 최원영 서울대병원 노조 문화부장이 인터뷰 말미 한 말은 이러한 상황을 정면으로 조준한다.
“‘의료계의 관행’이란 이름으로 자행되는 착취를 끊기 어렵다. 답답하다.”
김양균 기자 angel@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