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항 강진으로 대학수학능력시험이 일주일 연기됐습니다. 지진 복구는 현재도 진행 중이지만, 유래 없는 수능 연기에 내외신은 ‘놀랍다’는 반응을 보였습니다. 정치권은 여야 할 것 없이 ‘잘한 결정’이라고 했죠. 물론 인터넷 공간에는 일부 포항 지역의 수험생들을 비난하는 글들도 있어 눈살을 찌푸리게 만드는 ‘해프닝’도 있었습니다.
한국 사회의 여러 문제의 원인 중 하나로 과도한 입시 경쟁을 꼽습니다. 창의력을 짓밟고 학생들을 서열화한다고 말이죠. 초등학교부터 수능을 준비하는 비상식적인 입시 경쟁의 광풍이 휘몰아치는 이 험난한 세상에서 어린 학생들은 내신에 수능에, 수시모집을 준비하며 신음하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수능을 위해 달려온 수험생들의 노력은 실로 아름답다고, 수고했다고 말해주고 싶습니다. 이 겨울이 끝나면 스무 살이 될 고3 수험생들은 최순실 국정농단과 박근혜 전 대통령의 탄핵 등 혼란한 정세를 가까스로 버텨냈습니다.
스무 살. 가장 찬란하고 짧은 시기를 ‘곧’ 맞이할 수험생들에게 이렇게 말해주고 싶습니다. 시험을 잘 보라는 말 대신, 수고했다고, 정말 고생했다고요. 아래 글은 스무 살의 대학생 친구가 재수를 한 고등학교 동창 친구에게 전하는 글입니다. 소녀들의 ‘우정’이 예쁘고 찡하게 아로새겨져 있답니다. 전국의 수험생들과 함께 이 글을 나눕니다.
너에게.
1년 동안 나는 대학을, 너는 한 번 더 공부를 했다.
나는 서울로 올라갈 짐을 싸며 싱숭생숭해 했고, 너는 다시 공부하기 위해 남은 문제집을 분리하며 싱숭생숭해 했을 것이다. 이 문제집은 버려야 할지, 남겨야 할지 무슨 인강을 들어야 할지.
나는 어떻게 화장을 해야 할지, 이 옷을 대학가서도 입어야 할지 고민할 시간에.
나는 술자리에 익숙해지기 위해 노력했고, 너는 책상에 익숙해지기 위해 다시 한 번 노력했을 것이다.
벚꽃이 떨어지던 날 나는 언젠가 함께할 누군가를 떠올리며 설레어했고, 너는 작년을 떠올리며 교복입고 친구들과 함께 떠들며 웃던 날을 떠올렸을 것이다.
5~6월 쯤, 대학생활에 점차 적응하면서 나는 내 미래를 고민하기 시작했고, 너는 재수 생활에 대한 회의감과 유지해오던 페이스의 흔들림으로 방황했을 것이다. 간간히 들리는 친구들의 소식과 카카오톡 프로필, 페북 소식으로 더 흔들렸을 것이다.
그럼에도 너는 다시 책상에 앉았을 것이다. 그리고 매일 풀던 문제집을 펴고 다시 채점을 하고, 풀고, 외우고 했을 것이다.
그럼에도 너는 다시 꿈꾸었을 것이다. 너만의 대학생활과 포부로 누구보다 지금을 잘 이겨낼 거라는 스스로의 응원과 함께.
나의 1년, 나의 스무 살도 참 소중하지만 그럼에도 나는 너의 1년을 더 존경하고 감사해하고 소중히 여기고 싶다.
수고했다. 그 누구보다.
조금 늦더라도, 더디더라도 네 인생이고 그래서 너는 그 누구와는 다른 유일무이한 존재라는 걸.
친구지만 존경하고, 또 존경한다. 이제는 지고 오던 마음의 짐을 잠시 내려놓고 조금 뒤부터는 나와 함께 20대의 길을 걷자.
수고했고 또 수고했다.
김양균 기자 angel@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