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도 역시 잡음이 흘러나온다. 인기투표로 전락한 골든글러브 시상식 얘기다.
13일 KBO 한 해 마지막 행사인 골든글러브 시상식이 열렸다. 기자단과 미디어 관계자로 구성된 투표인단이 각 포지션을 대표하는 선수들을 선택해 시상대에 올렸다. 투수 부문 양현종을 비롯한 10명의 수상자가 황금장갑을 품에 안았다.
하지만 몇 개 포지션 수상 결과를 놓고 갑론을박이 벌어졌다. 우승 프리미엄, 투표인단과 선수간의 친밀도, 국내 선수 유무에 따라 기준이 엇갈렸다는 비판이 잇따랐다.
제일 논란이 됐던 건 1루수 부문이다. 1루수 황금장갑은 롯데 자이언츠 이대호의 차지로 돌아갔다. 이대호는 총 357표 가운데 154표를 얻었다. 2위는 한화 로사리오로 118표였다.
기록을 들여다보면 의아하다. 이대호는 올 시즌 타율 3할2푼 34홈런 OPS(출루율+장타율) 9할2푼4리를 기록했다. 분명 빼어난 활약을 펼친 건 맞다. 하지만 로사리오는 타율 3할3푼9리 37홈런 OPS 1.075로 전 부문에서 이대호에 앞선다.
로사리오에 대한 ‘외국인 차별’이 작용했단 평가가 나온다. 투표인단의 보수적인 태도로 외국인 선수들은 여태 몇몇을 제외하곤 골든글러브, MVP와 인연이 없었다. 더군다나 로사리오는 시즌 종료 후 일본리그로 이적이 확정됐다. 이대호 역시 “상을 받을 줄은 몰랐다. 아마 한국 선수인 저에게 표를 많이 주신 것 같다”고 소감을 밝혔을 정도다.
의아한 건 외국인 차별이 KIA 외야수 로저 버나디나엔 적용되지 않았단 것이다. 버나디나는 박건우를 제치고 황금장갑의 주인공이 됐다. 의외의 결과라는 평가다. 시상식을 앞두곤 외야수 부문 골든글러브는 KIA의 최형우, 롯데의 손아섭, 두산의 박건우가 될 것이라는 전망이 지배적이었다.
박건우는 올 시즌 타율 3할6푼6리로 리그 2위를 기록하며 외야수 부문 타율 1위에 올랐다. 20홈런 20도루도 기록했다. 특히 드넓은 잠실구장을 홈으로 쓰면서 OPS 1.006을 기록했다. WAR는 7.03에 이른다. 반면 버나디나는 홈런과 타점 부문에서 박건우에 앞섰을 뿐이다. 큰 득표 차는 버나디나의 인기도, 우승팀 프리미엄이 더해진 결과라는 평가다.
유격수 부문은 우승팀 프리미엄 논란이 가장 많이 불거진 포지션이다.
앞서 2루수 부문 시상에서 KIA 안치홍이 NC 박민우를 밀어냈다. 각각 140표와 134표로 아주 근소한 차이에서 희비가 엇갈렸다. 안치홍은 홈런과 타점, 출전 경기 수에서 박민우에 우위를 범했지만 타율과 OPS, WAR(대체선수대비승리기여도)에서 모두 밀린다. 하지만 투표인단의 기준이 타점과 홈런이었다면 충분히 납득이 가능하다. 박민우가 받지 못한 건 아쉽지만 안치홍도 충분히 골든글러브를 획득할만한 활약을 펼쳤다는 주장도 많았다.
그런데 유격수 부문에선 이런 기준이 달라졌다. KIA 김선빈이 넥센 김하성을 제치고 황금장갑을 품에 안았다. 접전이 될 것이란 예상과 달리 김선빈이 253표를 얻어 86표를 받은 김하성을 무려 167표 차이로 따돌렸다.
김선빈이 타율 3할7푼으로 타격왕에 올랐지만 김하성은 23홈런 114타점으로 맹활약했다. WAR는 김선빈과 동일하다. 안치홍과 박민우 사이에선 홈런과 타점이 기준이 된 듯 보이지만 김선빈과 김하성은 타율이 기준이 됐다. 여기에 납득하기 힘든 압도적 표차는 우승 프리미엄 논란에 힘을 싣고 있다.
그러나 지명타자 부문에선 가장 높은 OPS와 홈런, 타점을 기록한 KIA 나지완이 2위 이승엽(79표)에 밀려 3위(78)표로 밀려나는 어이없는 장면이 연출되기도 했다. 1위 박용택이 아닌, 은퇴한 이승엽에 득표수가 뒤졌다는 점은 투표인단이 개인 기록보단 인기도 등을 고려해 투표에 임했단 의문을 품게 만든다.
골든글러브는 일반적인 올스타투표와 엄연히 다르다. 객관적 지표인 스탯에 기반해 최고의 선수를 뽑는 시상식이다. 국내 선수, 인기 선수, 우승팀에만 한정된 편협한 투표는 리그 전체의 사기와 동기부여를 저하시킬 수 있다.
인기투표라는 오명을 떨치기 위해서 전문성을 갖춘 투표인단을 추려내는 것이 급선무다. 책임감 없이 동정표 등을 던지는 행태를 방지하기 위해 기명 투표를 제도화하는 것도 고려해야 한다. KBO의 고심과 제도 개선이 필요한 시점이다.
문대찬 기자 mdc0504@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