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부터 게임중독(Gaming Disorder, 게임장애)이 질병으로 공식 인정된다.
세계보건기구(WHO)는 오는 2018년 개정되는 ‘국제표준질병분류(International Classification of Diseases, 이하 ICD) 11판에 ‘게임장애’를 추가하기로 결정했다. 도박에 이어 행위중독이 질병으로 인정된 두 번째 사례다. 이에 따라 국내에서도 게임중독이 질병으로 정착될지 귀추가 주목된다.
게임장애는 일상생활이 파괴될 정도로 게임에 몰입하는 상태를 이르는 의학적 용어다. 흔히 ‘게임중독’이라고 부르지만, 일각에서 ‘중독’이라는 단어가 과도하다는 논란이 있어 게임과몰입, 게임과의존 등으로 대체되기도 했다. 모두 일상생활을 해칠 정도로 게임을 과도하게 이용한다는 의미다.
게임중독의 질병 등재에 대해 의료계는 ‘예정된 수순’이라는 견해가 지배적이다. 국내외 학계에서 꾸준히 언급됐기 때문에 등재 가능성이 컸다는 것이다.
ICD와 함께 국제적 권위를 인정받는 미국정신의학협회의 ‘정신질환 진단 및 통계 편람(DSM-5, 2013년판)에서는 '인터넷 게임 장애(Internet Gaming Disorder)'을 향후 질병으로 승격시킬 수 있는 후보군으로 분류하고, 예비 진단 기준을 제시한 바 있다.
WHO 또한 ‘게임장애’를 ICD에 추가하기 위한 검토를 지속해왔다. 지난 5월에는 홈페이지에 게임장애 진단기준 초안을 공개했으며, 올해 1월부터는 한국을 포함한 전 세계 10여개 국가에서 게임장애 진단기준에 대한 현장적용연구를 시행할 계획이다.
게임장애의 ICD등재는 한국표준질병사인분류(KCD)에도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이해국 가톨릭대 의정부성모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KCD는 ICD를 기준으로 개정되기 때문에 영향을 받는다. 때문에 국내에서 게임장애가 인정되고 관련 질병코드가 제정되는 것은 당연한 수순이라고 본다”며 “국내 의료계에서도 1월부터 시행되는 진단기준 현장적용연구를 바탕으로 진단기준에 대한 논의가 이뤄질 예정”이라고 말했다. 이 교수는 해당 연구의 한국 책임자직을 맡고 있다.
다만 국내에서 게임중독이 ‘질병’으로 정착되는 과정이 순탄하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일각에서는 게임중독을 질병으로 인정할 경우, 부정적 선입견을 강화해 게임문화 발전을 저해할 수 있다며 우려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게임은 취미일 뿐“이라며 중독자 취급을 거부하는 개개인도 적지 않다.
이러한 여론에 대해 이 교수는 “단순히 게임을 많이 한다고 해서 게임중독이라고 하지 않는다”며 “진단기준이 매우 엄격하기 때문에 대부분의 건강한 게이머들이 게임장애로 진단될 가능성은 별로 없다. 심각한 기능장애가 나타나야 한다는 전제가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어 “ICD-11 초안은 게임충동의 조절 불능, 다른 흥미나 일상생활에서 게임이 우선순위를 가질 경우, 문제가 나타남에도 12개월 이상 지속적인 게임이용 등 핵심 3가지 증상과 함께 심각한 기능장애가 나타나야만 게임장애로 진단하도록 제시돼있다”고 덧붙였다.
더불어 국내 게임중독 위험 청소년은 증가하고 있는 추세다. 한국콘텐츠진흥원이 지난해 국내 초·중·고교생 12만48명을 대상으로 '게임 과몰입 종합 실태 조사'를 벌인 결과 전체 응답자 중 언제든지 게임 중독에 빠질 수 있는 ‘과몰입 위험군’은 2119명(1.8%)로 2012년 1.2%에서 해마다 증가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사실상 게임 중독 상태인‘게임 과몰입군’은 828명(0.7%)였다.
이 교수는 “게임으로 인한 병적 부작용을 겪는 이들이 분명히 있음에도 아무도 책임지지 않는 것은 올바르지 않다. 이들에게 치료적 접근성을 높여야 하고, 올바르고 건전한 게임문화도 조성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국내 정신의학계에서도 게임장애를 질병으로 인정하는 분위기다. 강웅구 서울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한국중독정신의학회장)은 “중독학회는 인터넷 게임 중독을 인정하고 있으며, 학회 내에서 관련 연구가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다”고 밝혔다.
다만 강 교수는 “현재의 문화 환경에서는 접근성이 큰 인터넷 게임, 폰게임이 중독성을 잘 발휘시키는 대상이다. 중독을 결정하는 요인이 생물학이 아닌 문화적 요소라는 것”이라며 “문화적 요소를 고려하지 않고, 기계적으로 병으로 지정하고 거기 맞춰 진단·치료한다는 접근은 적절하지 않다고 본다”며 다른 견해를 내비쳤다.
전미옥 기자 romeok@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