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계선상 정신장애 아이들, 갈 곳이 없다

경계선상 정신장애 아이들, 갈 곳이 없다

절반은 10대 중·후반 발병…조기개입 중요한데 '학업'은 어떡하나

기사승인 2018-01-31 00:03:00

“평균 80점은 나오던 똘똘한 학생이라 가능성이 많다고 생각했는데…성인이 돼 만난 아이는 ‘알바’를 하고 싶다고 말했습니다.”

‘가능성’이 무궁무진한 아동·청소년기에는 정신장애가 발병했더라도 조기개입으로 충분한 회복을 기대할 수 있다. 그러나 우리 사회는 이들에게 적절한 기회를 제공하고 있을까.

지난 29일 국가인권위원회가 주최한 ‘정신의료기관의 아동‧청소년 인권증진 정책토론회’에서 김경아 용산공고 WEE클래스 교사는 중학교 재직 당시 자신이 맡았던 아이를 소개했다. 약한 수준의 지적장애를 앓던 학생이었다. 

김 교사는 “문제 학생 한 명이 있으면 학교 전체가 불안해한다. 당시 아이의 학업을 놓게 할 수 없어 등교시킨 다음 조퇴증을 발급해서 의료기관이나 사회복지시설로 보냈다. 그마저도 병원이 문을 닫거나 하면 원활한 연계가 안 돼 상태가 거듭 나빠졌다”며 학교의 어려움을 토로했다.

그는 “특히 현장에서 가장 어려운 친구들이 경계선상에 있는 지적장애 친구들이다. 특수학생의 범주에 들어가지 않고 정신과적 진단도 내려지지 않았지만 조현병 증상을 보이는 아이들은 치료에 연계하는 것조차 부모님들의 거부로 쉽지 않고, 대안학교를 보낼 수준도 아니다. 갈 곳이 없다”고 지적했다.

이러한 아이들은 성인이 된 이후 취업에서도 어려움을 겪는다. 김 교사는 “성인이 된 이후 아이를 만나니 ‘알바’하고 싶다고 명확하게 이야기하지만 쉽지 않다. 일반 발달장애인들의 경우 사회복지시설에서 연계하는 취업기관이 꽤 많다. 하지만 경도 지적장애 아이들은 이러한 혜택을 받기 어렵고, 일반 취업에서도 외면을 당한다”고 안타까워했다.

정신장애는 주로 청소년기에 처음 나타난다. 정신과 전문의들에 따르면 정신질환의 약 50%는 10대 중·후반에 시작되고, 75% 정도의 정신질환이 20대 중반까지 발병한다.

정신의학 분야 임상 연구자들은 “질환초기에 특별한 관심을 가지고 적절하게 대처한다면 발병 시기를 늦추거나, 장애상태로 살아가는 기간을 단축시켜 회복 촉진을 통해 예후를 개선할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즉, 빠른 치료적 개입이 요구된다는 것이다. 다만, 청소년들의 특성상 이 과정에서 학업을 지속할 수 있도록 반드시 고려해야 한다고 전문가들은 강조한다.

김미혜 청소년사회복귀시설 비상 대표는 “우리사회에서 학업의 중단은 단순히 교육의 중단뿐 아니라 관계의 중단을 의미하며, 나이에 맞는 성장의 중단을 뜻한다”며 “정신질환으로 인해 학업을 중단하는 경우 정신질환에 대한 편견뿐 아니라 학력에 대한 사회적 편견도 감수해야 한다. 또 추후 경제활동 참여에도 제한이 있을 수 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김 대표는 “우리 시설에 있는 아이들이 가장 불안해하는 점이다. 학교도 아니고 학원도 아닌 시설을 다니는 것에 대해 늘 다른 친구들과 비교하며 양가감정을 갖는다”며 “이 때문에 충분한 서비스가 이뤄지기 전에 조기 퇴소하는 경우가 많다. 이들이 진정한 회복으로 이어지려면 사회복귀 훈련을 하는 동안 학업의 유지가 보장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와 관련 김 교사는 “서울시교육청이 운영하는 온라인교육 시스템 ‘꿀맛닷컴’상에서 정신장애 학생들은 이용이 배재돼있다. 관련 규정에 정신장애인을 포함해준다면 학업을 유지할 수 있다”며 대책을 제시했다.

또한 황옥경 서울신학대학교 보육학과 교수는 “아동기를 지나 성인기를 준비하는 결정적인 시기인 청소년기에 교육과 사회적 적응 기회를 배재시키는 것은 어떤 경우에도 정당성을 인정받기 어렵다”며 “치료와 교육을 연계하는 거버넌스 구축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어 황 교수는 “우리사회는 각계 서비스는 많지만 서로 연계되지 않아 공백이 생기고 있다. 이러한 역할을 공공의료가 담당해야 한다. 병원과 사회복지시설, 학교와 가족을 연계하는 포괄적 서비스를 담당하는 공공의료 인력들이 우수한 처우를 받고 지역의료를 촘촘하게 담당하는 사례가 되길 기대한다”고 힘줘 말했다.  

전미옥 기자 romeok@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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