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소기업 노동자인 이선영(28·가명)씨는 최근 이직을 준비하고 있다. 회사에서 1년 경력을 채운 후 적어도 중견기업으로 ‘점프’를 하고 싶다는 이 씨는 이직의 이유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급여와 복리후생 조건도 그렇지만, 중소기업은 미래가 없는 것 같아요. 일은 많고 대우는 열악해요. 야근 수당도 딱히 없고요. 조직 문화를 비교해보면 중소기업이 더 낫다고 말하기 어려워요.”
그나마 이 씨의 경우는 사정이 좋은 편에 속한다. 청년 구직자들은 신입사원 지원이나 공무원 시험 외에는 취업을 위한 선택지가 많지 않기 때문이다. 정부가 장려해 온 창업을 선택키도 녹록치 않다. 사업 실패의 위험과 초기 자금 마련 등의 어려움 때문이다. 스타트업에 입사하는 것은 ‘최악의 선택’으로 불린다. 스타트업 취업 후 반년 만에 퇴사, 현재 구직 중이라는 김인성씨(29·가명)는 그간의 경험을 떠올리는 것이 썩 유쾌하지 않다.
“게임 스타트업에서 일했는데, 개발 중인 게임이 출시되기까지 돈이 필요하잖아요. 그래서 회사는 외주 용역을 많이 가져왔어요. 회사의 개발 업무보다 하고 싶었던 일보다 용역 업무 처리에 더 허덕였던 것 같아요.”
위의 사례에서 보듯 청년들은 각 분야에서 전문성을 쌓을 수 있고 더 나은 복리후생, 그리고 개인 시간이 확보되는 일자리를 원하고 있음은 사실 새삼스럽지 않다. 이런 가운데 15일 정부가 내놓은 ‘청년일자리 대책’은 과연 청년들이 원하는 양질의 일자리를 조성할 수 있을지 관심이 쏠리고 있다.
◇ 중소·중견기업 취업을 위한 ‘선물’ 혹은 ‘유인책’
“청년들이 더 이상 중소·중견기업 취업을 회피하거나 망설이지 않도록 정부가 할 수 있는 모든 대책을 강구해나가겠습니다.”
문재인 대통령의 말이다. 문 대통령이 15일 청와대 영빈관에서 열린 청년일자리 대책 보고대회 겸 제5차 일자리위원회 회의 결과 브리핑에서 밝힌 청년일자리 대책의 핵심은 크게 네 가지로 압축된다. ▶중소·중견기업 취업자와 대기업 취업자 간 실질 소득 격차 해소 ▶중소·중견기업 신규 고용 지원 증대 ▶지자체 및 민간과 청년 창업 활성화 ▶중소·중견기업 취업 거쳐 대학진학으로 이어지는 선취업 후학습 확대 등.
이에 대한 세부 계획은 김동연 경제부총리 겸 재정기획부 장관, 김영주 고용노동부 장관, 홍종학 중소벤처기업부 장관이 차례로 발표했다. 골자는 ▶중소·중견기업 취업자 600만원 저축시 3000만원 목돈으로 ▶중소기업 취업 청년 5년간 소득세 전액 면제 ▶중소기업 취업 청년 전월세 보증금 3500만원 4년간 1.2% 저리대출 ▶청년 창업기업 5년간 법인소득세 100% 감면 ▶기술혁신 창업자 최대 1억 원 오픈바우처 지원 ▶창업 벤처 기업 R&D비용 3년간 최대 20억 원 후속 창업지원 등이다.
정리하면, 중소·중견기업 취업자의 실질소득을 늘리고 창업 장려를 통해 청년의 새로운 일자리를 만들겠다는 말이다. 이를 위해 정부는 ‘추경 편성의 신속한 추진’ 계획을 세워두고 있다. 초과 세수도 고려된다. 정부는 4월초 국무회의를 거쳐 추경 예산안을 국회에 제출하고, 4월중 국회 통과를 목표로 할 것을 강조했다.
그러나 우려도 나온다. 경직된 노동시장과 같은 본질적인 해결책 대신 단기대책의 남발은 사실상 실효성을 거두지 못한 대책의 반복일 뿐이라는 것이다. 한국의 노동시장 구조개선과 관련해 국내 경제전문가들은 유사한 문제의식을 보인다. 일례로 김태기 단국대 경제학과 교수의 ‘노동시장구조개선 어떻게 할 것인가?’(한국개발연구원) 보고서를 보자. 김 교수는 보고서에서 한국의 노동시장이 고용불안과 소득격차확대 등의 문제와 그 해결의 어려움을 다음과 같이 지적한다.
‘노동시장의 이중구조가 다른 나라보다 심각하고, 비정규직의 비중이 높고, 교육에 막대한 투자를 해 놓고 인적자원은 저활용되고 있고, 고령화는 빠르게 진행되어 생산가능인구의 감소에 직면하고 있다. 더 심각한 문제는 노동시장 내부의 모순으로 병이 깊어 가는데도 불구하고 심각성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병을 치료하는데 필요한 체력도 고갈되고 있어 고용노동의 문제가 지금보다 더 악화될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 해결책은 이미 나와 있다
청년기의 높은 실업률은 장년기·노년기의 빈곤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장기적으로는 국가 경제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농후하다. 이런 이유로 청년 실업률 해결과, 일자리 정책은 국가 노동정책에 중요한 관심사로 대두되어 왔다.(한국노동연구원 손혜경, ‘스웨덴 정부의 청년실업 대책’)
한국뿐만 아니라 전 세계도 유사한 문제를 겪다보니 해결방안도 대동소이하다. 실제로 지난 2014년 ILO(국제노동기구)와 OECD는 주요 20개국을 대상으로 각국이 2013년 이후 실시한 주요 청년 실업 대책에 대해 설문조사를 진행했다. 각국이 추진한 주요 정책은 ▶수요 진작 ▶일자리 창출 ▶노동시장 진입 개선 ▶비용효과적인 적극적 노동시장정책 ▶직업교육훈련 강화 ▶양질의 견습·인턴십 프로그램 확대 등이었다.(보건사회연구원 ‘주요 국제기구의 청년 실업 대책’)
2013년 5월에도 OECD는 급속한 고령화 환경에서의 성공적인 청년 고용 정책 마련을 위해 ‘청년실행계획’을 채택한 바 있다. 청년실행계획의 목표는 청년 실업, 하향 취업 문제, 직업능력 향상, 청년 고용 장애 제거 등이었다.
한국의 사정은 더 심각하다. 한국노동시장의 구조적인 병폐가 초저출산, 제조업 매출 급감 및 국제 통상정책 등과 맞물려 청년 일자리 문제를 잉태했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문제는 정부가 매번 내놓은 방안이 장기적인 관점에서 구축되었느냐다.
이번 정부 대책과의 연관이 깊은 해결책은 이렇다. 대기업의 협력중소기업에 대한 공정한 보상과 유망 중소기업의 우수 인재 유인과 이탈 억제 유인, 중소기업 고용의 질 제고를 유인, 중소기업 경영의 투명성을 제고 등이 선제되어야 중소·중견 기업으로의 취업 유도가 근본적으로 가능해진다.(한국개발연구원 김태기, ‘노동시장구조개선 어떻게 할 것인가?’). 이러한 해결책은 이미 정보 부처와 각 경제전문가들이 수년간 제기해왔지만, 정책이 이를 반영했느냐는 별개의 문제다.
이명박, 박근혜 정권을 거치는 동안 정부는 20여회의 관련 대책을 발표하며 상당한 세수를 쏟아 부었지만, 뚜렷한 성과는 없었다. 이번 청년 일자리 대책은 일각의 우려를 불식, 청년 일자리 문제 해결의 획기적 전환점을 마련할 수 있을까? 청년들의 눈과 귀가 여기에 쏠려있다.
김양균 기자 angel@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