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양에 방문했던 봄이 안방을 찾아왔다. 지난 1일 평양 동평양대극장에서 열린 남북 평화 협력기원 남측 예술단 평양공연 ‘봄이온다’는 5일 오후 8시 지상파 3사를 통해 녹화 방송됐다. 공연 녹화는 북한의 조선중앙TV가 장비를 제공했고 MBC가 촬영 및 편집을 맡아 협력 작업으로 이뤄졌다.
이번 공연에서는 가왕 조용필부터 그룹 레드벨벳까지 다양한 가수들이 무대에 올라 평양 관객들에게 대중가요를 선보였다. 총 10팀(명)의 가수들은 평양공연에서 어떤 노래를 불렀을까. 그 노래들은 어떤 의미를 지녔을까.
△ 조용필 ‘그 겨울의 찻집’ ‘친구여’
2005년 평양에서 단독 콘서트를 개최했던 ‘가왕’ 조용필은 2018년 봄, 13년 만에 평양을 다시 찾았다. ‘봄이 온다’ 공연의 마지막 순서로 무대에 오른 조용필과 밴드 위대한 탄생은 ‘그 겨울의 찻집’과 더불어 ‘꿈’ ‘단발머리’ ‘여행을 떠나요’ 등을 선보였다. 북측에서 가창을 요청한 것으로 전해진 ‘그 겨울의 찻집’은 김정일의 애창곡으로 알려졌다.
1일 공연 피날레를 장식한 ‘친구여’는 조용필의 대표곡으로 지금은 보기 힘든 오랜 친구를 그리워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조용필이 13년 전 평양에서 열창했던 노래이기도 하다. 13년 만에 다시 만나 협연한 남북 예술인을 비롯해 공연을 지켜보는 국민들에게도 뜻 깊은 선곡이 아니었을까.
△ 이선희 ‘J에게’ ‘아름다운 강산’
이선희 또한 평양에서 한 차례 무대에 선 바 있다. 2003년 류경정주영체육관 개관 기념 공연에서 여러 출연진과 함께 ‘J에게’ ‘아름다운 강산’을 불렀던 이선희는 지난 1일 공연에서 이 노래들을 단독으로 가창했다. 아울러 지난 3일에는 북측 가수 김옥주와 함께 무대에 올라 ‘J에게’를 함께 열창해 뜨거운 박수를 받았다. 'J에게‘는 지난 2월 서울과 강릉에서 공연을 펼친 북한 삼지연관현악단이 편곡해 선보인 노래이기도 하다.
‘아름다운 강산’은 희망차고 당당하게 우리가 사는 조국을 그린 노래로 ‘영원한 이 곳에 우리의 새 꿈을 만들어 보고파’라는 가사가 인상적이다.
△ 최진희 ‘사랑의 미로’ ‘뒤늦은 후회’
최진희는 이번 공연까지 포함해 총 네 차례 북한에서 공연을 펼쳤을 정도로 북에서 인기가 있는 가수다. 특히 이번 공연에서 부른 현이와 덕이의 ‘뒤늦은 후회’는 포털사이트 실시간 검색어 1위에 오르며 화제를 모았다. 김정은 위원장이 특별히 요청한 노래라는 것이 전해진 덕분이다.
지난 4일 오전 인천공항을 통해 평양에서 귀환한 최진희는 이후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공연 후 김정은 위원장이 악수를 청하며 ‘그 노래를 불러줘서 고맙다’라고 말했다”고 밝혔다. 함께 부른 ‘사랑의 미로’도 김정일의 애창곡으로 알려졌다. 최진희는 ‘뒤늦은 후회’를 정식으로 리메이크해 발표할 예정이다.
△ 강산에 ‘…라구요’ ‘명태’
“죽기 전에 꼭 한 번만이라도 가봤으면 좋겠구나… 라구요” 강산에는 지난 3일 평양공연에서 끝내 눈물을 보였다. 고향을 떠나온 부모님의 사연을 담은 데뷔곡 ‘…라구요’를 부르며 아버지, 어머니의 얼굴을 떠올린 것. ‘…라구요’는 실향민의 절절한 마음을 담은 노래로 강산에가 함경도 출신인 부모님을 위해 만든 곡이다. 강산에는 지난 1일 공연에서 함경도 사투리가 쓰인 ‘명태’를 불러 관객의 박수를 얻기도 했다.
△ YB ‘남자는 배 여자는 항구’ ‘1178’
밴드 YB는 록 버전으로 편곡한 ‘남자는 배 여자는 항구’로 평양 관객에게 친숙함과 새로움을 동시에 선사했다. 심수봉의 ‘남자는 배 여자는 항구’는 북한에서도 널리 알려진 노래로, YB가 이 노래를 부르자 관객은 박수를 치기 시작했다. 노래 후 보컬 윤도현이 “삼지연관현악단과 전 세계에서 공연을 해보고 싶다”고 말하자 관객들은 웃음을 보였다.
더불어 YB는 평화 통일의 염원을 담은 노래 ‘1178’을 가창했다. ‘1178’은 한반도 최남단에서 최북단의 거리인 1178㎞를 뜻하며 영화 ‘한반도’ 배경음악으로 사용되기도 했다.
△ 백지영 ‘총 맞은 것처럼’
애절한 발라드를 좋아하는 정서는 통하는 걸까. ‘총 맞은 것처럼’은 평양 대학생들의 남측 애창곡 1위로 알려질 만큼, 북한에서 큰 인기를 끈 것으로 전해졌다. 백지영은 이번 공연을 통해 평양 시민들에게 직접 이 노래를 들려줄 수 있는 기회를 가졌다.
지난 1일 공연을 관람한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이 백지영의 무대를 보고 “백지영이 남측에서 어느 정도 위치의 가수인지” 등을 물으며 관심을 표했다고 전해졌다.
△ 정인 ‘오르막길’
“가끔 바람이 불 때만 저 먼 풍경을 바라봐/올라온 만큼 아름다운 우리 길/기억해 혹시 우리 손 놓쳐도 절대 당황하고 헤매지 마요” 정인의 ‘오르막길’은 지난 1월 문재인 대통령의 새해 기자회견장에서 흘러나온 노래이기도 하다. 함께 가는 길이 힘들어도 한걸음씩 앞으로 나가자는 내용의 가사가 깊은 여운을 남긴다. 정인은 정부로부터 요청을 받고 이번 공연에서 ‘오르막길’을 불렀다.
△ 알리 ‘펑펑’ ‘얼굴’
KBS2 ‘불후의 명곡’ 등에 출연해 가창력을 인정받은 가수 알리는 애절한 느낌의 ‘펑펑’을 선보였다. 더불어 지난 3일 공연에서는 정인, 북측 가수 김옥주, 송영과 함께 ‘얼굴’을 불렀다. 남측의 창법과 북측의 창법은 달랐지만, 조화로운 하모니를 이뤘다는 평이다.
△ 서현 ‘푸른 버드나무’
지난 2월 북측 예술단의 서울 공연에 깜짝 등장해 함께 노래를 불렀던 소녀시대 서현은 두 달만에 평양 땅을 밟아 노래를 선물했다. 서현은 지난 1일 공연과 3일 공연에서 북한 노래 ‘푸른 버드나무’를 불러 평양 관객의 큰 호응을 얻었다. ‘푸른 버드나무’는 북한 가수 김광숙의 대표곡으로 서정적인 느낌의 노래다. 우리 예술단의 음악감독 윤상은 “서현이 노래를 부를 때 북측 관객들 손이 다 올라가는 것을 보고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났다”고 소감을 전하기도 했다.
△ 레드벨벳 ‘빨간맛’ ‘배드보이’
레드벨벳이 평양에서 ‘빨간맛’을 부를까. 평양 공연 참가자 명단에 유일한 아이돌로 레드벨벳이 이름을 올렸을 때부터 다수의 사람들은 호기심 어린 시선을 보냈다. 레드벨벳의 “빠, 빠, 빨간맛”은 결국 지난 1일과 3일 평양에 울려 퍼졌다. 여러 추측과는 달리 ‘빨간맛’과 ‘배드보이’의 선곡 이유는 간단했다. ‘빨간맛’과 ‘배드보이’가 각각 레드벨벳의 대표곡이고 최신 곡이기 때문이다. 평양 관객이 낯선 음악과 제목을 어떻게 받아들였을지는 모르지만, 무대 후 숨을 고르는 레드벨벳 멤버들에게 박수를 보내는 모습만큼은 따뜻했다.
인세현 기자 inout@kukinews.com / 사진=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