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09년~2010년 선천성심장질환 아이를 출산한 4명의 제주의료원 간호사들은 9년째 근로복지공단에 산업재해보상을 요구하는 행정소송을 이어가고 있다. 역학조사 결과 유해약품을 다룬 것이 심장기형아 출산의 원인으로 밝혀졌지만, 이들에게 법은 유독 가혹했다.
2014년 1심 행정법원은 역학조사 결과를 인정해 산재로 판결했다. 그러나 2016년 2심 고등법원은 ‘출생아에게 발생한 문제는 산재로 볼 수 없다’는 취지로 원고 패소 판결했다. 현재 대법원 3심 결과만을 남겨두고 있다.
◇일하는 여성이 위협받는 사회
헌법 제32조제4항은 ‘여자의 근로는 특별한 보호를 받으며, 고용, 임금 및 근로조건에 있어서 부당한 차별을 받지 아니한다’고 규정한다.그러나 우리 사회에서 여성의 노동은 보호는커녕 ‘안전’이라는 기본권조차 지켜지지 않고 있었다.
국민건강보험공단에 따르면 임신한 근로자의 연간 유산율은 2006년 18.7%(5만809건)에서 2015년 24.5%(7만1104건)로 꾸준히 늘었다. 임신한 노동자 4명 중 1명은 유산을 경험한 셈이다. 그럼에도 최근 5년 동안 임신관련 업무재해신청은 제주의료원 간호사들의 8건뿐이다. 업무상 재해 기준에 대한 성별격차도 높다. 2015년 기준 업무상 질병을 인정받은 산재 노동자 7919명 중 여성은 15.1%(1197명) 불과하다, ‘사고’ 중심의 재해인정 시스템 때문이다.
임신과 출산에 영향을 주는 산업재해 요인은 실태조사조차 부족한 실정이다. 임종한 인하대 직업환경의학과 교수는 “우리나라에서는 아직까지 사업장의 생식독성물질 등 유해인자 노출과 위험성이 체계적으로 조사된 것이 없기 때문에 인과관계를 밝히기가 매우 어렵다. 미국 애틀란타 등은 한 도시의 전체 출생아를 모니터링하고 그것을 기반으로 역학조사를 진행한다. 우리도 이런 접근이 필요하다”는 의견을 제시했다.
또 이현주 우송대 간호학 교수도 “산업안전보건법상 임신노동자의 모성보호를 위한 직장 내 안전 및 보건정책이 없다. 임신 유해환경을 본능적으로 직감하는 여성노동자들은 결혼과 임신을 기피하고 안전한 직장으로 전직하거나 퇴직하고 있다. 일과 가정이 양립할 수 있는 사회시스템 구축이 필요하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허자연씨를 비롯한 간호사들의 오랜 법정 소송을 계기로 정부는 뒤늦게 해결에 나섰다. 고용노동부는 올해 10월까지 임신 중 태아의 건강손상에 대한 산재보상 방안을 검토하고, 산재보험법에 별도 입법을 추진한다는 계획이다. 주평식 고용노동부 산재보상정책과장은 “법원이 출생아는 근로자가 아니기 때문에 보상이 어렵다고 봤기 때문에 보상을 위해서는 별도 입법이 필요하다. 모성보호와 별개로 태아를 독립된 인격체로 인정하고, 출생 후 별도의 급여청구권을 주는 방향으로 검토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실체없는 모성보호 기본권으로 보장해야
최근 문재인 정부가 발의한 개헌안에서는 ‘여자의 근로는 특별한 보호를 받는다’는 규정을 삭제하고, 대신 33조 5항에 ‘모든 국민은 고용, 임금 및 그 밖의 노동조건에서 임신, 출산, 육아 등으로 부당하게 차별을 받지 않으며 국가는 이를 위해 여성의 노동을 보호하는 정책을 시행해야 한다’는 조항으로 포괄했다.
이에 대해 차별금지 조건을 임신, 출산, 육아로 구체화 한 것은 긍정적이나, 얼마나 실효성이 있을지 의문이라는 회의론도 나온다. 현행 헌법상에 모성보호, 여성노동에 대한 가치가 명시돼있지만, 실제 여성노동자들의 권리는 보호받기는커녕 오히려 위협받고 있는 실정이기 때문이다. 사업장의 문제로 장애아를 출산한 것이 역학조사로 입증됐음에도 피해는 고스란히 개인과 가정에게 돌아갔고, 그 과정에서 치료비 감당, 경력단절 등 2차 피해에도 노출된다. 이는 2018년 현재도 계속 진행 중인 문제다.
제주의료원 산재피해 간호사들을 도운 강영애 공공운수노조 의료연대본부 제주의료원분회장은 “현행 헌법에도 모성보호나 여성노동에 대한 조항이 있지만, 실제 삶에 적용이 안 되고 적용할 수 없는 현실의 벽을 지난 9년간 절실히 느꼈다. 또 다시 유명무실한 헌법으로 남지 않으려면 구체적이고 실질적인 정책적 노력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인터뷰를 마치며 허자연씨는 “세상이 조금씩 나아지고 있는 것 같다. 아이들이 살아갈 다음 세대에는 약자들이 희생되지 않고 보호받는 사회가 됐으면 좋겠다”는 소망을 전했다.
전미옥 기자 romeok@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