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엄마입니다"…'어린이집 보육교사'들의 모성권은 어디에

"나도 엄마입니다"…'어린이집 보육교사'들의 모성권은 어디에

아이 건강검진, 예방접종 땐 대체교사 지원 가능하지만

기사승인 2018-04-12 00:08:07

# ‘남의 아이 잘 키워놓고 내 아이 소홀히 하지 마십시오’라는 말을 들었다. 6시 퇴근 후 보육일지 작성, 교구 준비 등을 끝내면 밤이다. 근무시간이 많다 보니 정작 내 아이를 돌볼 시간이 없는 것이다. 연차가 있지만 대체교사가 구해지지 않으면 당일, 하루 전, 며칠 전엔 사용하기 어렵다.

# 출산 후 주변 어린이집 선생님들처럼 나도 직장을 잠깐 그만뒀었다. 육아휴직이 보장되는 곳도 많지 않았고, 밤까지 지속되는 업무와 육아를 병행하기 어려우리라 판단했기 때문이다. 한 선생님은 아이가 갑자기 아프다는 전화를 받고도 아이에게 갈 수 없어 발만 동동 굴렀다. 갑자기 아이에게 무슨 일이 생겨서 내가 아이에게 달려가면 우리 반 애들을 돌볼 사람이 없다.

# 출근 당일 아침, 몸이 너무 아파 열이 나고 식은땀이 흘렀다. 하지만 마스크를 쓰고 어린이집에 나갔다. 담임이 없으면 애를 볼 사람이 없기 때문이다. 대체교사 신청은 아주 급한 일이면 2~3일 전, 보통은 1~2달 전에 하는데 아픈 날을 예약할 수 있는 것은 아니지 않는가.

여성의 사회 활동이 증가하면서 어린이집에 아이를 맡기는 워킹맘들도 늘고 있다. 워킹맘의 모성권 보호와 일·가정 양립 대책의 일환으로 정부는 육아휴직, 근무시간 단축, 자유로운 연차 사용 등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근무 시간동안 아이들을 맡길 수 있도록 어린이집 시간연장제도도 시행하고 있다.

일·가정 양립 대책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는 워킹맘도 있다. 대표적으로 아이를 돌보는 것이 직업인 ‘어린이집 보육교사’가 있다. 보통 아침 9시부터 6시까지, 당직 시에는 좀 더 이른 시간부터 늦은 시간까지 근무를 하고, 매일 작성해야 하는 보육일지와 교구 준비로 매일 늦은 시간까지 일을 한다. 서울의 한 어린이집에서 근무하는 보육교사 A씨는 “은행권 등 일찍 출근해야 하는 부모들이 있기 때문에 보육교사도 일찍 출근해야 한다. 보통 동료 선생님들과 돌아가며 당직을 선다”며 “3시, 4시쯤 시간연장 선생님이 오셔도 아이들 하원 및 교실 청소를 하면 6시가 넘는다. 퇴근해서 저녁을 먹는 시간이 내 아이와 노는 유일한 시간이다”라고 토로했다. A씨는 “저녁 식사가 끝나면 보육일지, 교구 준비 등을 해야 한다. 주말에도 일하는 경우가 많아 아이와 보내는 시간이 부족하다”고 말했다.

연차가 지급되긴 하지만 한 번 사용하려면 대체교사 신청을 위해 대기해야 한다. 여타 직장도 연차 사용에 어려움이 있을 수 있지만 보육교사의 연차 사용은 보다 까다롭다. 보육교사가 교실을 비우면 어린이집에 있는 아이들을 돌볼 사람이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생겨난 것이 ‘대체교사 지원 사업’이지만, 기자가 만나 본 보육교사 중 갑자기 교사가, 또는 교사의 자녀가 아플 때 이를 사용한 사람은 없었다. ‘대체교사 지원 사업’은 어린이집 보육교사가 연가, 교육 등으로 출근이 곤란한 경우 보건복지부(이하 복지부)가 운영하는 육아종합지원센터에 채용된 보육교사를 어린이집에 파견하여 아이들을 안전하게 돌볼 수 있도록 지원하는 사업이다. 지원대상은 현 어린이집 및 시간제보육 제공 기관(어린이집, 육아종합지원센터 등)에서 평일 8시간을 원칙으로 1년 이상 근무한 담임교사에 제한된다. 보육교사를 겸직하고 있는 원장 또는 대표자, 보조교사 등은 미지원된다.

춘천의 한 어린이집에서 근무하는 B씨는 “최근에는 대체 교사를 신청하면 바로 투입이 된다. 바로 된다고 해도 최소 2~7일은 소요되고, 소요 시간을 떠나 그렇게 급하게 쓸 수 있는 분위기가 아니다”라며 “급한 일정이 있으면 1달 전에 예약한다. 문제는 급한 일이 그렇게 미리 일어나지 않는다는 점이다”라고 지적했다.

서울에서 근무하는 보육교사 C씨는 “아무리 아파도 일단 출근한다. 아침 일찍 병원에 다녀올 수 있으면 다녀오고 그렇지 않으면 교육을 진행하는데 있어서 어린이집 원장과 조율한다. 반차 사용은 어렵다”고 호소했다.  

이에 복지부는 보육교사가 독감 등 감염성 질환에 걸리거나, 자녀 돌봄으로 출근이 어려운 경우에 어린이집에 대체교사를 파견하도록 대체교사 수와 예산을 지속적으로 늘리고 있다고 밝혔다.

 


복지부는 지난 3월 질병, 가족상(喪)까지 대체교사를 지원할 수 있도록 사유를 넓히고, 모성 보호를 위해 임신 중인 교사의 병원 진료 및 예방접종을 받을 경우에도 대체교사를 지원받을 수 있도록 하는 방안을 발표했다. 작년까지는 법으로 정해진 보수 교육, 건강 검진, 남자 교사가 예비군 훈련이 있을 때 담임 교사를 대신하여 아이들을 돌보는 대체교사를 파견해 왔었다. 보육교사의 연가, 보수교육 참석과 같은 계획된 일정은 1~2개월 전에 보육통합정보시스템(어린이집 지원시스템)을 통해 신청해야 하지만 질병, 가족상 같은 긴급 상황의 경우 관할 육아종합지원센터에 유선 또는 팩스(Fax)로 수시 신청할 수 있다.

복지부 관계자는 “보육교사뿐만 아니라 모든 직종에서도 갑자기 대체자를 구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러나 보육교사 근무 환경이 열악하기 때문에 (엄마인 보육교사를) 지원할 수 있는 대책을 마련한 것”이라면서 “1년 근무자로 제한한 것은 1년 이상이 돼야 연차가 확보되기 때문이다. 다만 올해 대체교사 2036명을 채용해 어린이집에 지원하고, 2022년까지 총 4800명의 대체교사를 확대 배치해 보육교사의 근로여건 개선 및 보육서비스 질을 계속 높여 가겠다”고 강조했다.

관계자는 “일반적인 노동자 상황이랑 비슷한데 연차를 사용하는 것에 자유로운 사람은 없을 것이다. 고용주, 즉 원장들의 인식 개선도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한국어린이집총연합회는 “현재 정부가 지원하는 대체교사 지원 사업은 현실적으로 인력과 예산이 부족한 부분이 많다. 아이들 입장에서도 대체교사와 적응하는 부분에서 어려움이 있을 수 있다”며 “또 원장님 입장에서는 대체교사가 어떤 선생님인지도 모른다. 육아종합지원센터가 관리하기 때문에 믿어야 한다는 것은 어려움이 따른다”고 꼬집었다.

연합회는 “휴게시간도 보장되지 않고, 근무 시간도 정해진 바 없으며 연차 사용도 보장되지 않고 있다. 산적해 있는 다른 문제들을 해결하지 않는다면 대체교사 지원은 보육교사 근로 환경 개선의 근본적인 해결책이 될 수 없을 것”이라고 전했다.

유수인 기자 suin92710@kukinews.com

유수인 기자
suin92710@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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