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침은 세계적 수준인데 감염사고는 왜?

지침은 세계적 수준인데 감염사고는 왜?

인력, 시설 등 의료기관이 감염 지침 수행할 재원 마련돼야

기사승인 2018-05-02 10:13:54

”의료기관 감염관리 가이드라인은 세계적 수준입니다. 그런데 그것을 뒷받침할 인력과 비용이 없습니다“ 

2015년 메르스 사태와 주사기 재사용으로 인한 집단 C형간염 감염사건, 그리고 지난해 발생한 이대목동병원 신생아 사망 사건까지, 잇따른 국내 의료기관 내 감염 사고가 사회적 충격을 주고 있다. 병원 내 사망의 주요 원인으로 지목되는 ‘의료관련감염’은 세계적으로 병원 입원 환자의 약 5~10%에서 발생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최근에는 인구 고령화, 면역저하 환자의 증가와 더불어 감염에 취약한 환자가 지속적으로 늘어나 의료관련감염 예방 및 관리의 중요성이 떠오르고 있다. 이 가운데 국내 의료기관 감염 사고를 예방하기 위해서 ‘진료 현장’을 고려한 지침과 전문인력·시설 등의 재원이 마련돼야 한다는 주장이 나왔다. 

30일 더불어민주당 권미혁 의원와 쿠키건강TV가 보건복지부의 후원을 받아 개최한 ‘국내 의료감염관리 개선방안 모색 정책토론회’에서 토론자로 참석한 김지인 병원중앙공급간호사회 기획이사는 의료감염 예방을 위해 ‘치료 도구 소독과 멸균’이 중요하다고 강조하며 그에 대한 재정 지원이 뒷받침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김지인 이사는 “소독과 멸균은 재처리 과정의 일부분이라고 생각한다. 미국 질병통제센터는 재처리 과정에 대해 환자 안전을 위한 과정이라고 정의한다”며 “재처리를 잘 하기 위해서는 세척과 포장 등 전 과정이 잘 이뤄져야 한다. 멸균 소독 이후에는 환자치료에 사용하기 전까지 멸균이나 소독과정이 파괴되지 않게 잘 보관하는 것도 중요한 절차이다. 그런 부분들이 잘 지켜지고, 잘 지켜진 다음 환자에게 사용하는 것이 재처리 과정의 목표”라고 말했다.

김 이사에 따르면 세계보건기구(WHO)에서는 10여개의 재처리 가이드라인을 마련, 권고하고 있다. 표준 마련과 그대로의 이행, 세척과 소독의 전 과정 검증, 직원 안전 관리, 제조사 지침에 따른 기구 소독·멸균, 품질 시스템 관리 등이 있다.

국내에서는 의료법과 의료기관 인증평가 조사 기준, 질병관리본부 또는 대한의료감염관리학회에서 제시하는 지침 등에 따라 의료기구 재처리가 이뤄지고 있다. 의료기구 재처리 과정을 관리하고 있는 중앙공급실이 진행한 ‘2017 전국 중앙공급실 운영 현황조사’ 결과를 보면 160개 의료기관 중 98.8%(158개)가 세척·포장·멸균에 대한 병원 내부 지침서나 규정집을 보유했다.

김 이사는 “그러나 ‘수술기구’의 재처리과정 현황 확인결과 세척과 포장, 멸균 등 전 과정을 (중앙공급실에서) 시행하는 의료기관은 33% 정도였다. 과정 중 일부를 수술실에서 하는 경우도 40.6%였다. 수술장에서 재처리 과정이 이뤄지는 이유는 의료기구를 빨리 회전시켜서 환자에 사용하려고 하기 때문”이라며 “중앙공급실 이외의 부서에서 의료기구 재처리 과정의 각 단계별 지침을 준수하기는 현실적으로 어려운 상황이다. 따라서 의료기구의 재처리 과정을 전문적으로 수행할 수 있는 중앙공급부서로 집중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또 갈수록 의료기술은 발전하고, 그에 따라 사용하는 의료기구가 복잡하고 다양해지고 있다. 그렇지만 의료기구 재처리에 대한 보상은 전무한 상태다. 감염관리 부분은 수익을 내는 사업이 아니지만 환자 안전을 위해 필수적인 요소”라면서 “국내 감염관리 지침 기준은 세계적 기준이다. 그러나 그걸 제대로 수행할 수 있는 여건 마련의 문제가 있는 것”이라고 꼬집었다.  

안기종 한국환자단체연합회 대표도 “메르스 사태, C형 간염 감염, 이대목동병원 신생아 집단 사고 등의 발생 후 협의체 회의에서 많은 대책을 세우고 재원을 투입했다. 감염사고를 내고 싶은 의료인도 없을 텐데 계속해서 사고가 발생하는 이유는 인력이나 수가 등의 부족으로 인해 의료감염 예방 가이드라인이 잘 지켜지지 않아서일 것이다”라고 동의했다.

그러면서 안 대표는 “메르스 사태 이후 정부가 보이지 않는 환자안전이나 감염 부분에 투자를 하기 시작했다. 큰 사건이 일어나면 문제점과 개선점들이 드러나는 것 같다”며 “의료감염과 관련한 사례들을 공개해 감염관리에 대한 인식을 확산시켜야 한다”고 강조했다. “감염 관련 학회에서는 환자 또는 보호자가 지킬 수 있는 감염 예방 매뉴얼을 제시해줬으면 좋겠다”고도 덧붙였다. 

이에 정부는 이르면 6월 현장 실행성을 높이는 종합대책안을 발표하겠다고 약속했다.

 

이형민 질병관리본부 의료감염관리과장은 “감염사고는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의료기관 감염은 아예 없앨 수 없다. 선진국의 경우 입원환자의 7%가 감염사고를 겪고, 후진국은 10명 중 2명이 겪는다”며 “우리나라의 경우 2015년 메르스 유행 이후 감염관리 중요성이 사회적으로 인식되기 시작했다”고 말문을 열었다.

이형민 과장은 “정부는 의료기관을 통한 의료감염 차단으로 환자 안전을 증진시키기 위해 대책안을 발표하고 3년이란 시간이 경과했다. 그러나 감염관리 문제는 지속해서 제기되고 있다”고 전했다.

이어 “그간 여러 대책을 세워왔지만 얼마나 감염관리가 되고 있는 지에 대해 조사된 내용은 없다. 지난해 말 이대목동병원의 불행한 사고 발생 이후 ‘의료 관련 감염종합대책’을 계획하고 있다”면서 “종합대책의 내용이 다소 식상하고 새로운 것이 없다고 느낄 수 있지만 지난 10년간 발표한 감염관리 대책과 이번 종합대책을 유기적으로 연계해 현장 실행성을 높이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이르면 6월 종합대책을 발표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엄중식 가천대 길병원 감염내과 교수는 적절한 비용이 투입돼야 의료감염을 막을 수 있다고 재차 강조했다. 엄중식 교수는 “나는 의료감염을 자동차 사고에 비유를 한다. 의료관련 감염을 없애려면 입원을 없애야 한다. 자동차 사고를 안 나게 하려면 자동차를 없애면 된다”며 “그러나 그럴 수 없다. 결국 자동차가 많이 늘어날수록 사고 빈도가 높아지는 것처럼 입원환자가 늘수록 감염환자가 느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엄 교수는 “자동차 사고를 줄이는 방법은 안전 운전을 할 수 있도록 운전자를 교육하는 것이다. 즉 (안전 진료를 할 수 있도록) 의료인을 교육하는 것이다. 또 자동차가 좋아야 사각지대를 발견할 수 있다. 안전거리를 유지하는 센서를 부착할 수도 있다”라며 “의료에서 필요한 장비나 시설을 좀 더 빠르게 선진화시킬 필요가 있다는 말이다”라고 설명했다.

이어 “또 도로를 개선해야 한다. 현재 의료기관 시스템은 아무리 안전 운전을 해도 사고 날 수밖에 없는 구조처럼 의료기관 감염이 발생할 수밖에 없는 구조다”라며 “네덜란드, 독일처럼 감염이 낮은 나라의 의료구조를 보면 다인실이 아니다. 병실에 환자가 많아야 2명이다. 우리처럼 한 병실에 환자를 4명, 5명, 6명 밀어 넣으면 사고가 안 날 수가 없다”고 지적했다.

엄 교수는 “슈퍼 박테리아, 다제내성균은 군대에 비교한다. 적이 쳐들어올 때 경계를 잘 해야 하고, 경계를 잘하기 위해서는 감시체계를 구축해야 한다. 쳐들어오는 균이랑 싸우려면 경험이 풍부한 지휘관과 부사관 있어야 한다”며 “즉 잘 훈련된 의료진이 있어야 하고 감염관리 전문인력이 있어야 한다는 말이다. 지금은 지휘를 할 부사관이 없어 싸울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라고 예를 들었다.

이어 “많은 적들이 방탄복과 자동화기기를 들고 오는데 우리는 훈련도 되지 않은 상태에서 칼을 들고 지키고 있다. 일회용 소모품 등 감염 예방을 위한 장비들을 주고 싸우라고 해야지 그렇지 않으면 막을 수 없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그는 “요로감염을 줄이는데 필요한 재정은 50억 정도다. 그러면 감염 위험이 30%로 줄어든다. 그런데 감염치료에 230억이 들어간다. 투자보다 비용편익이 훨씬 늘어나는 것이다. 수술을 잘 해도 감염으로 사망한다면 의료 비용이 다 허공으로 날아가는 것이다. 그런 부분을 고려해 비용 투입을 아까워하면 안 된다”고 주장했다.

좌장을 맡은 김우주 고대구로병원 감염내과 교수는 “우리나라 의료 수준은 30년 만에 선진국 수준으로 올라갔다. 그러나 환자 안전에 관한 투자는 없었다”면서 “의료 질관리가 이뤄지지 않으면 밑 빠진 독에 물 붓기다. 사실 관련 지침은 선진국 수준에 맟춰서 마련되어 있어 정말 잘 되어 있다. 그런데 미국처럼 수가나 투자가 제대로 마련된 환경에서 만든 지침대로 시행하다간 손을 씻다가 환자가 사망한다. 우리나라 현장에 맞는 지침을 만들어야 한다고 본다”고 강조했다.

김우주 교수는 “과거에 이대목동병원 사건과 같은 일들이 드러나지 않았던 것처럼 앞으로도 그런 일들이 일어날 수 있다. 장기적으로 병원 내 감염을 예방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유수인 기자 suin92710@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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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in92710@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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