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북자 40%는 이유 없는 신체적 고통 호소…정신질환과 연관

탈북자 40%는 이유 없는 신체적 고통 호소…정신질환과 연관

생활습관의 변화, 경제적 어려움, 대인관계 결여 등 정신적 질환 발병에 영향

기사승인 2018-06-15 04:00:00

‘탈북자(북한이탈주민)’의 30~40%는 의학적으로 설명하기 어려운 신체적 증상이 나타나고 있어 국내 정착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러한 증상은 정신건강과도 연관이 있는데, 전문가들은 생활습관의 변화, 경제적 어려움, 대인관계 결여 등이 정신적 고통을 주는 원인으로 작용하고 있다고 보고 있다. 특히 정신적 고통에 대해 표현하지 않고 심한 정신병 외에는 정신질환으로 다루지 않는 북한 사회 특성도 결합돼 치료 또한 어려운 실정이다.

국립중앙의료원이 14일 개최한 공공보건의료연구소 제6차 심포지엄 ‘남북한이 하나의 건강 공동체로 나아가는 길’에서는 북한이탈주민의 건강관리를 위한 방안을 모색하는 자리가 마련됐다.

이날 발표를 맡은 이소희 국립중앙의료원 정신건강의학과장(공공의료사업 부단장)에 따르면 2006년부터 2016년까지 국립중앙의료원에서 진료를 받은 북한이탈주민은 약 4000여명이다. 진료 현황을 보면 여성 환자가 남성에 비해 많았으며, 연령별도는 30~40대가 가장 많았다. 진료과로는 정형외과, 신경과, 정신건강의학과, 산부인과, 소화기내과 순으로 진료를 많이 받았다. 주증상으로는 두통, 우울, 등통증, 위염 순으로 많았다.

이소희 과장은 “북한이탈주민 대부분은 경제활동에서 소외돼 취약계층으로 생활하고 있다. 탈북 과정 중 발생한 외상 및 복합 상병 질환은 적시에 치료가 필요하지만 남한 의료체제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고 진료비 부담으로 적절한 진료를 받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 과장은 “또 그들은 인권침해 및 트라우마 경험율이 높아 외상 후 스트레스장애(PTSD) 등 정신건강 문제가 심각하다”며 “이는 삶의 질을 저하시키며, 후유증으로 대인관계, 직장생활, 일상생활에 부정적 영향을 끼치기 때문에 이에 대한 대책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김석주 성균관대 삼성서울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이러한 신체적 증상이 정신적인 문제에서부터 왔다고 주장했다. 30~40%는 의학적으로 설명하기 어려운 신체 증상을 보이고 있고, 비특이적 신체 증상이 흔하다는 것이다.

 


김석주 교수는 “북한이탈주민의 42.4%는 신체화를 호소한다. 신체화란 마음이 힘든 것이 몸으로 나타나는 증상을 말한다”며 “그들은 불안, 우울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가슴이 답답하다, 소화가 되지 않는다, 머리가 지끈거린다, 온몸이 아프고 힘이 없다고 말한다”고 설명했다.

그는 “그러나 검사상 이상이 없고, 신체 질환을 못 찾는다. 검사 소견이 호전돼도 증상이 지속된다”며 “진단도 못 하고 증상도 낫지 않기 때문에 반복적 검사, 진료를 요구한다. 남한 의료에 대해 불신도 증가한다”고 말했다.

실제로 북한이탈주민들은 사회적, 경제적인 이유 등으로 다양한 정신적 고충을 호소하고 있다. 지난 2016년 한국노년학회에서 발표한 보고서에는 “탈북민 노인들이 너무 외로워서 동네에 있는 노인정에 갔다. 하지만 노인들이 주거니 받거니 하는 말이나, 그들의 놀이와 문화를 알 수 없어서 스스로 왕따가 되는 신세가 됐다. 그 후로는 노인정에 가지 않았다”는 내용이 언급돼 있다.

북한이탈주민의 경우 북한에서의 식생활과 습관을 바꾸는 시간이 필요하고, 사회문화를 받아 들이는 데 적지 않은 시간이 소요된다. 여기에서 오는 심신의 어려움, 언어의 장벽 등이 대인관계를 형성하는데도 영향을 끼친다. 윤승비 미래한반도여성협회는 “현장에서 본 북한이탈주민 정신건강상태를 보면, 사회와의 단절 등으로 인한 외로움, 우울, 울렁증, 회상, 강박증, 불안, 적대감 등의 증상을 보인다”며 “이로 인해 피해의식, 과대망상 양상을 보이며 막말을 하거나 선입견을 갖는다”고 토로했다.

이에 윤 이사는 “그들의 건강한 정착을 위해서는 초기정착지원부터 중장기적인 프로그램이 필요하다. 또 민간상담센터 운영을 위한 예산과 인력 지원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게다가 심각한 정신질환만 병으로 인식하는 북한 사회, 불안한 감정을 표출하지 않는 사회적 억압의 심리적 내재화 등도 북한이탈주민의 신체화 유발에 영향을 끼치는 것으로 나타났다.

김석주 교수는 “북한에서 불안, 우울 등의 신경증은 병으로 다루지 않는다. 정신병만 치료 대상”이라면서 “정신과 치료는 49호 정신병원 수용이 전부여서 사실상 심리치료는 전무하다. 또 북한에서는 정신과 관련 용어가 공격 수단으로 사용되고 있다. 솔직한 표현에 대한 두려움으로 인해 쉽게 치료할 수 있는 정신장애여도 치료를 거부한다”고 꼬집었다.

이어 “특히 병원에 방문하지 않고 스스로 진단하고 치료하는 경우가 만연하다. 자기가 느끼는 주관적 증상이 있어야 약물을 복용하고, 안전성보다는 빠르고 강한 효과를 나타내는 약물을 선호한다”며 “주관적 불편이 없는 경우 질병으로 간주하지 않고, 미래 합병증 예방에 대한 심각성 인식도 부족하다”고 덧붙였다.

그는 “북한이탈주민의 치료는 정신건강의학과와 타 진료과의 통합적 접근이 핵심이다. 북한이탈주민 자문조정정신의학과 정신신테의학이 필요하다”며 “의료계 단독으로 할 것이 아니라 경제, 사회, 심리, 윤리, 정치, 교육 모두 연계하는 방안을 수립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유수인 기자 suin92710@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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