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원은 노동자를 갈아 삼켜 지탱된다

병원은 노동자를 갈아 삼켜 지탱된다

대한민국 의료 현장 리포트①

기사승인 2018-07-03 00:08:00

이게 병원입니까, 지옥이지.”

한 대학병원 노동자의 자조 섞인 탄식이다. 지난 27일 서울역광장. 전국보건의료산업노동조합(위원장 나순자, 이하 보건의료노조) 지역본부 소속 조합원 수천 명이 거리에 나섰다. 보건의료 노동자들은 환자안전과 노동존중병원 만들기를 요구하며 집회와 거리행진에 나섰다. 청와대 국민청원도 시작됐다. 2일 기준 청원에는 9400여명의 국민들이 동참했다. 이들의 외침은 하나였다. “지금의 병원을 제발 바꿔달라.”

사실 이들의 요구는 새삼스럽지 않다. 38명이 사망한 메르스 사태에서나 46명이 죽은 밀양 세종병원 화재에서도 병원의 고질적인 취약점은 계속 대두됐다. 이대 목동병원에서 발생한 신생아 집단 사망사고와 집단 결핵감염사고, 수술사고, 잘못된 투약사고, 혈액 수혈사고 등 의료사고들은 병원의 구조적 문제점이 총체적으로 드러난 인재라는 게 공통된 목소리다. 여기에 사직과 과로사, 신규간호사 자살사건, 폭언·폭행사건, 병원내 갑질사건과 인권유린 등은 우리나라 병원의 민낯을 들춘다.

해도 해도 일이 끝이 없다

보건의료노조는 고려대학교 노동문제연구소에 의뢰해 20183월부터 4월까지 병원 노동자 57303명을 상대로 병원 노동실태 설문조사를 진행했다. 29620명이 응답한 조사 결과는 충격적이다.

응답자의 81.8%(23894)는 인력 부족 상황을 토로했다. 특히 간호사의 86.6%는 절대적인 인력 부족을 호소했다. 간호사의 부서내 인력 부족에 대한 인식도(86.6%)는 전체 평균(81.8%)보다 높았다. 인력 부족은 업무의 질을 현저하게 떨어뜨리고 있었다. 업무 강도 심화가 가장 큰 문제로 꼽혔으며(83.4%), 건강 악화(76.1%), 사고위험 노출(69.8%), 직원간 갈등(48.6%) 등의 순으로 나타났다. 그리고 이는 간호직군에서 더욱 두드러지게 관찰됐다.

인력부족이 야기하는 문제는 비단 직원에만 국한되지 않았다. 병원 노동자들은 인력부족이 환자 안전 및 의료서비스 질 하락으로 이어진다며 우려하고 있었다.

환자에게 적절한 의료서비스를 제공하지 못했다68.6, ‘환자 및 보호자들을 친절하게 대하지 못했다’ 67.9, ‘환자에게 제공할 의료서비스 질이 저하됐다’ 68.1, ‘의료사고가 발생할 위험이 높다’ 69.0점으로 조사됐다.

아프다는 환자를 바쁘다는 이유로 소홀히 하지 않았나 하는 죄책감에 시달린다. 새벽별을 보고 출근해서 달을 보고 퇴근할 때까지 숨 쉴 틈도 없이 뛰어다닌다. 4개 병실을 2명이 봐야하는데, 병원은 경영 사정이 어렵다며 간호사 1명을 줄였다. 환자 파악도 못한 신규 간호사가 환자에게 주사를 놓을 때마다 가슴이 철렁 내려앉을 때가 한 두 번이 아니다.” (지방 국립대병원 간호사 A)

일손이 부족하다보니 시간외 근무는 일상적으로 이뤄졌다. 그러나 연장근무 보상은 매우 미흡했다. 설문에 응답한 보건의료노동자들의 절반 이상은 '근무 시간 내 마칠 수 없을 정도의 업무량을 소화하고 있다'고 밝혔다(50.5%). 잡무 강도도 상당했다. 업무외 조회, 교육, 회의, 행사, 평가, 논문 등을 감당하느라 본인의 기본 업무 수행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노동자들은 응답자의 69.6%에 달했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최근 3개월 동안 응답자의 76.5%는 시간 외 근무 경험이 있었으며, 마찬가지로 간호직군의 비중이 높았다. 이렇듯 시간외 근무는 빈번하지만, 정당한 대우를 받지 못하는 경우는 매우 일상적으로 벌어지고 있었다. 이른바 '공짜노동'을 경험한 이들은 응답자의 48.0%이었고, 일부 보상을 받는다는 답변은 31.5%, 80%에 달하는 병원 노동자들은 시간외 근무에 대해 제대로 된 보상을 받고 있지 못한 것으로 나타났다.

일은 많은데, 제대로 된 보상을 받지 못하다 보니, 이직률도 높다. 실제 설문조사에서 응답자의 71.7%'이직을 생각해본 적이 있다'고 대답한 것으로 나타났다. 간호사의 83.6%는 최근 3개월 내 이직을 고려한 적이 있는 것으로 평균보다 높은 이직 '충동'을 경험하고 있었다.

이직을 생각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열악한 근무조건 때문이었다(79.6%).

사람답게 살고 싶다

내 꿈은 병원을 관두는 것이다. 사람답게 살고 싶다. 그렇지만 나 혼자 퇴직하면 남은 후배들은 여전히 지금처럼 가혹한 노동에 시달리게 될 것이다.” (국립대병원 재직 간호사 B)

보건의료노조는 병원노동자의 근무조건 개선과 인력확충을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과제로 규정하고 있다. 특히 병원노동자의 근로조건과 업무만족도가 환자안전과 의료서비스의 질에 중대한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현재와 같은 인력부족, 장시간노동, 열악한 근무조건, 낮은 업무만족도, 높은 이직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는 것이다.

보훈병원 재직 노동자 C씨도 가장 심각한 것은 인력문제다. 병원장은 인력 충원 권한이 보훈공단 이사장에게 있다고 하고, 보훈공단은 기획재정부의 결정 사안이라고 한다. 이러는 사이에 노동자들은 계속 어려운 상황에서 일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서울을지병원에서 일하는 D씨도 파업 이후에도 저임금 문제는 아직 해결되지 않고 있다. 재단은 병원 문제는 병원장과 해결하라고 말한다. 병원과 직원간 임금에 대한 인식 차는 여전하다고 귀띔했다.

이대의료원의 E씨는 심각한 인력문제를 해결해달라고 병원에 거듭 요구하지만, 해결되지 않고 있다. 의료 수익 등을 고려하면 역부족이라는 것이다. 아울러 신생아 사망사고 이후 환자들과 보호자들의 불신이 높아 직원들은 인력 부족과 감정노동을 함께 겪고 있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나순자 위원장은 최근 여러 병원에서 빈번하게 발생한 사건·사고는 비정상적인 노동 여건에서 비롯됐다이러한 악순환의 고리를 이제는 끊어야 한다고 강하게 비판했다

김양균 기자 angel@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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