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그냥 지금이 딱 좋아요. 애 아빠와 결혼하지 않겠다고 하니까 저에게 ‘이기적’이라고들 해요. 내 삶도 있는거고, 아빠가 있다고 해서 행복한 건 아니잖아요.”
“취약 위기에 들어가는 가족이 한부모, 다문화, 저소득 가족.. 아니 왜? 한부모 가족이 왜 취약해? 양부모 가족 중에 취약한 가족이 너무 많은데, 형태만 정상이어도 취약 위기 가족에 들어가지 않거든요.”
혼인이 출산의 전제조건이 되는 우리나라에서 ‘비혼의 출산과 양육’은 비정상 가족이라는 인식이 있어왔다. 그래서인지 대부분 선진국에서 비혼 출산은 이미 사회규범이라고 할 정도로 전체 출산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높은데 반해 우리나라는 연평균 2% 정도로 매우 낮다. 실제로 프랑스는 비혼 출산이 56.7%, 스웨덴 55.2%, 미국 40.2%를 차지한다.
그러나 이러한 편견은 출산과 양육을 포기하게 만들 수 있고, 저출산은 물론 낙태나 유기 등의 사회적 문제로 확산될 수 있다. 게다가 주된 가족 유형이 과거 4인가구에서 2인, 1인가구로 변화하는 등 다양해지고 있기 때문에 이에 맞춘 새로운 출산·양육 정책이 필요하다.
이에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 더불어민주당 정책위원회, 여성가족부는 9일 국회에서 ‘차별없는 비혼 출산, 그 해법을 찾아서’ 포럼을 개최하고, 혼인 여부와 관계 없이 자신이 선택한 삶 속에서 아이를 출산하고 키울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기 위한 방안들을 논의했다.
먼저 주제발표를 맡은 송효진 한국여성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비혼 출산과 양육에 대한 차별적인 제도를 개선하기 위해 ▲위기 임신·출산 지원 강화 ▲신뢰출산제 검토 ▲출생통보제 도입 ▲부성우선원칙 폐지 ▲인지 시 종전 성(姓)사용 원칙 ▲혼인중 혼인외 출생자 구별 문제 개선 등의 과제를 제안했다.
‘위기 임신·출산 지원 강화’는 법률혼 중심의 이른바 ‘정상가족’ 중심의 가족문화 속에서 비혼으로 임신·출산을 하게되는 여성이 여전히 가족에서 배제되거나, 사회적 편견과 차별적 인식, 경제적 어려움 속에서 위기의 상황에 처하게 되는 경우를 해결하기 위한 방안이다.
송효진 연구위원은 “이때 낙태와 유기, 불법입양에 대한 유혹을 경험하기 때문에 전화상담부터 방문상담, 긴급쉼터 및 의료·법률 서비스 지원까지 원스톱으로 제공하는 종합지원센터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아울러 그는 “현재 예외적인 경우에만 엄마의 성을 따르는 현재의 부성우선주의는 엄마의 성을 따른 자녀가 정상가족이 아닌 예외적인 가족에 속하는 자녀라는 차별적 낙인의 시선에 자유로울 수 없다”며 “자녀의 성과 본을 결정하는 기회를 혼인신고시에 한정할 것이 아니라 출생신고시로 열어주어 실질적인 선택권을 부여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순남 성공회대 젠더센터 연구교수는 다양한 가족의 형태를 지지하고 평등한 가족정책을 수립하기 위해 ‘건강가정기본법’을 전면 수정해야 한다고 꼬집었다. 관련 정책에 쓰이는 용어도 ‘건강가정 상담지원’을 ‘가족상담지원’으로, ‘예비부부교실’은 ‘평등한 커플(동반자)교실’로, ‘아동기 부모교실’은 ‘아동기 양육자 교실’로 바꿔야 한다고 주장했다. 건강가정기본법에서 정의하는 가족은 ‘혼인·혈연·입양으로 이루어진 것’을 말한다.
그는 “아이를 양육하는 사람이 반드시 엄마, 아빠일 필요도 없고, 혼인관계일 필요가 없다. 양육자가 반드시 이성애 기혼 부부일 필요가 없다는 것”이라며 “이성애 부모라도 결혼관계에 있지 않은 동거관계를 유지할 수도 있다. 미래 사회의 가족형태 변화에 대응하기 위해 동거가구에 대한 법도 제정될 필요가 있다”고 제언했다.
이러한 제도 마련은 향후 비혼 출산·양육에 대한 부정적 인식도 걷어낼 수 있을 거라는 의견도 나왔다.
변수정 한국보건사회연구원 부연구위원은 “지금은 가족의 다양성을 받아들이려는 노력과 남아있는 전통적 인식에서 오는 차별적인 요소들이 상충하고 있는 시기일 것이다”라며 “‘다양한 가족보다는 전통가족 중심의 사회가 되어야 한다’는 견해에 어느 정도 동의를 하는지 일반 국민을 대상으로 알아본 결과, 다양한 가족보다는 전통가족이 중심이 돼야 한다는 견해에 동의하는 비율이 51.8%, 동의하지 않는 비율은 48.2%로 양쪽의 견해가 팽팽하다”고 설명했다.
그는 “그러나 본인이 다양한 형태의 가족들에 대해 가진 편견의 수준이 어떠한지 물어보면 그 결과가 달라진다”며 “다양한 형태의 가족들에 대해 우리 사회가 편견을 가지고 있다는 견해는 90% 이상인데 반해 본인은 편견이 없다는 견해가 55%에 이른다”고 말했다.
즉 우리 사회에는 다양한 형태의 가족에 대해 편견이 많이 있지만, 국민 개개인은 자신은 그런 편견이 없다고 스스로를 평가하는 경우가 더 많다는 것이다. 이 상황에서 법제도의 변화로 다양한 가족 형태에 대한 부정적 인식을 걷어내는 방법에 희망이 있다는 것이 변 위원의 설명이다.
그는“도덕적 차원의 문제에 대해 다른 사람은 몰라도 나 스스로는 도덕적으로 올바른 답을 택하는 분위기에서 법제도의 ‘강제성’ 또는 ‘상징성’이 인식에 작용할 수 있다”며 “노동시장, 교육환경 등에서 일어나는 차별에 대해 금지한다는 것을 명문화하거나 동거 관계 인정과 관련된 제도 마련 등을 통해 사회적 편견을 줄이는 방안을 생각할 수 있다”고 제언했다.
유수인 기자 suin92710@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