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레너미’는 친구(Friend)와 적(Enemy)의 합성어로 이해관계에 따라 전략적 협력관계를 추구하거나 수익을 위해서라면 경쟁자와도 협력하는 관계를 뜻한다. 최근 글로벌 기업의 생리에 어울리는 말이다.
최근 삼성전자와 LG전자가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는 디스플레이 시장을 보면 모호한 프레너미의 개념이 잘 들어맞는다.
올해 초 삼성디스플레이와 LG디스플레이는 한국 선두업체들을 제치기 위해 중국 정부의 막대한 자금 지원을 등에 업은 중국 LCD 패널 업체들의 LCD 저가 공세로 영업이익에 큰 타격을 입었다.
우선 삼성 디스플레이의 올 2분기 영업이익은 500억원 내외로 축소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이는 지난 1분기의 10% 수준이다.
상당한 영업적자를 볼 뻔했음에도 불구하고 중국기업이 구원투수 역할을 해준 덕에 그나마 체면을 유지했다는 이야기도 나온다.
최근 화웨이·샤오미 등은 스마트폰 시장에서 급격히 성장하면서 자사 스마트폰 액정에 필요한 중소형 OLED 패널을 삼성디스플레이에게서 구매했다. 그 덕에 삼성 디스플레이가 적자 전환이라는 최악의 상황은 모면했다는 것이다.
프레너미로 규정할 만하다. 스마트폰 시장에서는 국내 제조사들을 벼랑 끝에 몰고 있는 업체들이지만, 중소형 OLED 부문에서는 되려 삼성전자 자회사인 삼성디스플레이의 큰 고객인 상황이다.
삼성전자와 애플도 오래된 프레너미다. 두 회사는 신형 스마트폰을 내놓을 때마다 갤럭시와 아이폰 신작을 두고 갑론을박을 펼치거나 치열한 마케팅 전쟁을 치른다. 7년 이상 특허 소송전을 진행하기도 했다. 그러나 애플은 아이폰의 많은 부품을 삼성으로부터 납품받고 삼성은 디스플레이 부문에서 꽤 큰 매출을 애플에 의존하고 있다.
중국의 LCD에 밀려 2000억원 이상의 적자를 기록할 예정인 LG전자의 자회사 LG디스플레이도 중국과의 관계는 중국판 프레너미인 오월동주(吳越同舟)다.
현재 LG디스플레이는 중국정부의 ‘묻지마’식 보조금으로 성장한 중국업체들의 LCD 저가공세에 휘청이고 있다. 자사 수익의 90%를 차지하는 LCD 부문에서 가격 경쟁력을 상실한 상황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LG디스플레이는 중국 광저우에 유기발광다이오드(OLED) 공장 건설을 승인받고 중국 정부와 긴밀한 협력에 나섰다.
OLED는 LG전자가 중국 디스플레이 업체보다 기술 우위를 점하고 있는 기술이다. 특히 대형 OLED는 세계적으로 LG전자가 유일하게 생산 가능하다.
LG디스플레이는 중국과의 협력으로 광저우시 개발 기구와 합작을 통한 투자재원 확보·중국 근로자를 통한 가격 경쟁력 개선·글로벌 최대 OLED 시장인 중국 공략의 포석 등을 마련했다.
특히 광저우 OLED 법인 설립 시 LG디스플레이와 광저우시 개발기구와 각각 70대 30 비율로 투자해 합작사를 이뤘다. LG디스플레이로서는 부담스러운 재원 확보를 중국 정부와 협력을 통해 적절히 배분한 것이다.
글로벌 시장에서 유일하게 OLED TV 증가 속도가 100%를 넘는 중국 지역에 공장을 건립, 중국 시장 공략에 박차를 가했다는 평가다.
중국 정부 역시 최근까지 ‘몽니’를 부렸지만 결국에는 공장 건설을 승인했다. 중국 내 LG디스플레이 공장을 통한 고용 창출 효과도 무시할 수는 없었을 것이다.
결국 중국과 LG디스플레이 둘 다 기분이 썩 좋지 않지만 서로 바라는 바가 있으니 한 배를 타고 프레너미를 유지한 상황이다. 이제 프레너미는 기업과 국가, 국가와 국가 간 발전을 위해 선택이 아닌 필수 조치가 됐다. 기술 유출 등 최악의 상황만 피한다면 서로 얽굴 붉히지 않고 이른바 ‘윈윈(win-win)’ 전략을 꾀할 수 있는 것이다. 기술 유출에 대한 보안 유지만 철저히 지켜진다면 디스플레이 업계도 한 단계 더 도약할 수 있지 않을까.
임중권 기자 im9181@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