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만 스쳐도 기절할 정도로 고통스럽다.”
만성통증을 앓고 있는 이언명(가명·46)씨의 절규다. 이씨는 지난 2014년 3월 교통사고 이후 원인을 알 수 없는 전신의 통증으로 생사의 기로에 서 있다. 동생 집에 얹혀사는 이씨는 매일 몰려오는 통증과 사투를 벌인다. 이씨의 몸에서 체온이 가장 높은 곳이 10도밖에 되지 않는다. 설상가상 보험사와의 수년에 걸친 송사는 그를 더욱 지치게 하고 있었다.
현재 이씨는 온전한 치아가 없다. 그의 치아는 대부분 깨지거나 부러져 있다. 고통이 밀려올 때면 이를 악물었기 때문이다. 이씨의 안타까운 사연을 듣고 있자니, 통증환자의 괴로운 일상에 답답함이 밀려들었다. 그는 인터뷰 말미 “통증환자는 국가의 보건의료 정책에서 철저히 배제되어 있다”고 말했다. 인터뷰는 19일 진행됐다.
◇ 어마어마한 통증
- 어떻게 발병한 거죠?
“교통사고로 척추와 목뼈를 다친 이후부터 시작됐어요. 최초 사고를 당했을 때, 동네병원에 갔는데 좀 쉬었다가 퇴원하라고 했어요. 그런데 통증이 멈추질 않았고 계속 정신을 잃고 잠도 잘 수 없었어요. MRI와 CT 촬영을 하고서 병원은 ‘이상이 없다’고 했습니다.”
- 동네병원에서 해결이 안 되니까 대학병원으로 옮긴 거군요.
“진통제를 하루에 10대 이상 맞았지만 소용이 없었어요. 입원한지 3주가 지나자 병원은 더 이상 입원이 안 된다고 했습니다. 보험사도 ‘더 이상 해줄게 없다’고 하더군요. 보상이고 뭐고 아프지만 않으면 된다고 실랑이를 벌였습니다. 결국 MRI와 CT 촬영한 것을 대학병원에 보여주고 이상이 없다는 소견이 나오면 수긍하겠다고 약속을 하고 보험사 직원과 함께 모대학병원 신경외과를 찾아갔습니다. 교수는 보자마자 ‘당장 수술하지 않으면 마비된다’고 하더군요.”
- 수술 후에도 통증은 전혀 개선이 안됐나요?
“수술은 잘 끝났지만, 몸이 굳는 증상과 전신의 통증은 계속 됐습니다. 어느 정도였냐면 바람만 스쳐도 기절할 정도였어요. 통증 강도가 수치로 분류되는데 전 9~10번 정도의 통증이 수시로 밀려왔습니다. 그 정도 통증이 오면 기절해버려서 기억도 없어요. 이를 악물고 참다 이가 다 깨져버릴 정도였어요.”
- 계속 대학병원에 입원해 있을 수는 없었을 텐데요.
“병원은 퇴원을 종용했지만, 혈압이 계속 오르고 수시로 기절하면서 증상이 계속되니까 결국 요양병원으로 전원을 시켰습니다. 6개월 이상 요양병원에 있었어요. 그곳에서도 통증은 계속 됐습니다. 보험사와 합의를 보기 바로 전에 누가 그러더라고요. 혹시 CRPS(복합부위 통증 증후군, Complex Regional Pain Syndrome) 아니냐고요. 그래서 수술을 한 병원에서 검사를 해보니 정말 그렇게 진단이 나왔어요.”
- 병원을 전전했다고 들었습니다.
“병원에선 통증이 오면 응급실에 와서 진통제를 맞으라고 했습니다. 이 말을 전 곧이곧대로 믿고 있었어요. 그러다 한번은 서울 마포 인근에서 쓰러졌어요. 구급차에 실려서 갔는데 응급실에 갔는데 진통제를 놔줄 수 없다고 했어요. 보다 못한 119 구급대원들이 환자 차트를 보고 판단하라고 했지만, 요지부동이었습니다. 응급실 책임자는 마약성 진통제를 놔줄 수 없다고 했다. 그렇게 제가 사경을 헤매는 동안 119에서 병원을 수소문해 서울대학교병원으로 절 이송시켰습니다.”
- 생계는 어떻게 해결하고 있습니까?
“처음에는 사우나나 요양병원을 전전했습니다. 지금은 남동생 집에 얹혀서 지내고 있어요. 지금은 동생이 절 보살펴주고 있습니다. 보험회사에서 기본 제공을 받고 있긴 하지만, 모자란 약값은 동생들이 빚을 내서 겨우 충당하고 있습니다. 소송에서 신체감정서를 제출해야 했는데, 검사 비용이 10배가량 비싸더라고요. 수소문해보니 법원에서 신체감정 비용을 대출해주는 제도가 있었지만, 법원은 대출을 거부했습니다. 대출 기각 사유는 법원이 대출을 시행한 적이 없기 때문이라는 황당한 이유였죠.”
◇ 비정한 세상
이씨는 우리 법이 정한 ‘장애인’이 아니다. 따라서 정부로부터 어떤 지원도 받고 있지 못하는 상태다. 이씨는 금융감독원에 전활 걸어 최저생계보장을 위한 방법을 문의했지만 “본인이 알아서 해결하라”는 대답을 들었다고 했다.
“세금조차도 보험사에 구걸해서 겨우 내는 상황이라고 호소했지만, 본인이 알아서 하라고 하라는 답변만 들었습니다.”
그는 현재도 보험회사에 생계비 보장을 위한 소송을 중이다. 보험사에서 생계비 보장 근거가 없다고 하고, 국가는 이씨에게 해결하라고 답한다.
“너무 아프니까 견디질 못해서 마포대교와 서강대교에 여러 번 올라갔어요. 한번은 정말로 몸을 던졌는데 누가 잡아채서 끌어 올려 살았습니다. 지금도 그때 갔으면 편했을 거라고 생각해요.”
이씨는 안락사를 희망한다고 말하며 눈물을 보였다. 누가 이씨의 눈물을 닦아줄 수 있을까. 보건당국은 침묵하고 있다.
김양균 기자 angel@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