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아이들이 꿈꾸고 살 수 있는 환경." 부산에서 식당을 운영하고 있는 김영혜씨(42) 의 소박한 바람이다. 김씨는 슬하에 두 딸을 두고 있다. 각각 고등학교와 중학교에 다닌다. 막내딸은 수포성 표피박리증을 앓고 있다. 이 병은 피부가 가벼운 마찰과 충격에도 손상을 입는 희귀성 난치질환으로 현재까지 알려진 치료법은 없다.
모든 부모가 그렇듯 김씨에게 두 딸은 더없이 소중한 존재다. 우등생에 재주도 많아 곧잘 상장을 받아오는 두 딸은 김씨 내외의 자랑거리다. 그렇지만 김씨의 눈에는 유독 막내딸이 자꾸 밟힌다.
공부도 잘하고 학교에서 인기도 많은 막둥이를 보며 김씨는 “심장이라도 팔아 딸을 치료할 수 있다면 그렇게 할 것이다. 조금이나마 고통을 줄여주고 싶지만, 아무것도 해줄 게 없다”고 말했다.
막둥이에게 일상은 ‘흉기’처럼 작용한다. 물을 마시다가도 식도가 벗겨질 정도다. 김씨는 건강을 이유로 딸이 좌절할 때 마음이 아프다. 김씨는 “‘몸이 아프니까 아무것도 하지 마라. 몸이 우선이다’고 하면 아이는 좌절하고 실망한다. 그럴 때마다 가슴이 미어진다. 환부를 소독하고 치료하는 건 일상이라 이젠 익숙해져버렸지만, 아이가 커갈수록 많은 것을 포기시키는 게 정말 힘들다”고 울먹였다.
‘공부 안 해도 돼, 달리기 안 해도 돼’라고 말하는 김씨의 속상한 마음을, 그러나 막둥이도 잘 알고 있다. 청소년기에 사망률이 높기 때문에 막둥이는 부모가 자신의 건강을 얼마나 염려하는지 안다. 김씨는 속 깊은 막둥이가 대견하면서도 한편으로 속이 상해 남몰래 눈물을 흘린다.
세상은 막둥이에게 냉혹하다. 당장 내년 고등학교 진학부터가 난관이다. 장애 인정을 받지 못한 막둥이는 ‘뺑뺑이’로 고등학교를 무작위 배정받게 된다. 집에서 멀리 떨어진 학교로 배정되면 혹시 모를 비상사태에 대비하기가 어렵다.
일단, 통학을 하다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모른다. 막둥이의 몸은 스치기만 해도 피부가 벗겨져 피가 뚝뚝 떨어지기 때문이다. “수포성 표피박리증 환자에게 차를 타고 30~40분씩 이동하란 건 학교를 가지 말란 의미나 마찬가지다. 아이들의 교육 권리를 조금은 배려해줬으면 좋으련만” 김씨가 말을 흐렸다.
김씨의 가족은 사진을 찍지 않는다. 불안한 내일보다 ‘오늘’을 행복하게 살기 위해서다. “막내가 아기였을 때부터 만약의 사태는 일어나지 않을 거라고 부정해왔다. 우린 괜찮을 거라고 믿고 싶었다. 청소년기를 넘긴 사례가 드물기 때문에 서서히 현실을 받아들이며 살고 있다. 오늘이 마지막인 것처럼 그런 마음으로 산다.”
보건당국에 전할 말이 있느냐는 기자의 물음에 김씨는 잠시 침묵을 지키다 입을 열었다. “
아이들은 하루를 일년처럼 산다. 노력하는 아이들에게 보건정책은 장애인이 아니란 이유로 모든 날개를 꺾고 있다. 적어도 정부가 아이들의 작은 꿈을 응원해주었으면 좋겠다.”
정부는 아이들의 꿈을 지켜줄 수 있을까, 아니면 ‘논의 중’과 ‘협의 중’이란 말만 내놓을까? 그러는 사이 전국의 막둥이와 같은 수포성 표피박리증 환자들은 오늘도 전쟁 같은 하루를 보낸다. 김양균 기자 angel@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