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행비서 김지은 씨에 대한 안희정 전 충남지사의 성폭력 혐의 1심 재판에서 무죄를 판결한 재판부는 안 전 지사가 실제 위력을 행사하지 않았고 김 씨는 적극적으로 저항하지 않았다고 판단한 것으로 확인됐다.
김 씨가 안 전 지사에 의해 성적으로 길드는, 이른바 ‘그루밍(grooming)’ 상태에 놓였을 수 있다는 전문가들의 의견도 재판부는 인정하지 않았다.
연합뉴스에 따르면 19일 서울서부지법의 안 전 지사 무죄 판결문 전문에서 재판부는 안 전 지사에 대해 김 씨의 자유의사를 제압할 위력이 있다고 인정하면서도, 그가 고압적이고 권위적인 태도로 김 씨를 비롯한 공무원을 하대하는 등 위력의 존재감이나 그 지위를 남용했다고 보기는 어렵다고 판단했다.
특히 재판부는 안 전 지사가 김 씨와 텔레그램에서 주고받은 대화 내용을 근거로 안 전 지사를 ‘권위적이라거나 관료적이었던 것으로 보이지 않는다’고 평가했다.
재판부는 “텔레그램 대화 내용을 보면 업무상 대화가 대부분인 가운데 수행비서인 김 씨의 의견을 묻거나 배려와 응원을 보내기도 하고, 자신의 정치적 포부를 공유하기 위한 감상을 전하기도 하는 등의 대화도 상당수 있어 안 전 지사가 김 씨에게 기본적으로 고압적 태도를 취한 것으로 보기 어렵다”고 했다.
재판부는 또 “안 전 지사가 평소 김 씨에게 ‘담배’, ‘맥주’와 같이 단어로만 짧게 적은 문자메시지를 보내기도 했지만, 그때그때 상황이나 기분에 따라 ‘고생했어요’, ‘감사합니다’, ‘∼가요’, ‘∼줘요’ 처럼 나이와 직급이 낮은 피해자를 존중하는 표현도 종종 사용했다”고 설명했다.
김 씨에 대해서는 얼마나 저항을 했는지를 중점적으로 살펴봤다.
지난해 7월 30일 러시아 출장 당시 발생한 상황에 대해 재판부는 “당시 김 씨가 음주 등으로 인해 정상적인 사고를 할 수 없는 상태였거나 업무 때문에 심리적으로 심각히 위축된 상태는 아니었다”며 “더 나아가 당시 김 씨가 방을 나가거나 안 전 지사의 접근을 막는 손짓을 하는 등의 행동을 하지 못하게 할 정도로 안 전 지사가 위력적 분위기를 만들었거나 물리력을 행사한 사정도 보이지 않는다”고 했다.
그러면서 “안 전 지사가 ‘외로우니 나를 위로해 달라’, ‘나를 안아라’는 취지로 강요했다고 하더라도 이런 행위가 정치적, 사회적 지위 내지 권력을 남용한 정도에 이른 것으로 단언하기 어렵다”며 “안 전 지사가 이를 위력의 행사로 인식했을지도 의문”이라고 덧붙였다.
재판부는 또 “당시 김 씨가 한 최대한의 거절 의사 표현 행위는 고개를 떨구고 ‘아니요’라는 말을 중얼거린 것으로, 평소 지시를 즉각적으로 따르던 자신의 태도에 비쳐 볼 때 굉장히 두려워하고 거절하려는 모습이라는 것을 안 전 지사는 알았을 것이라고 김 씨는 증언하고 있다”며 “그러나 남녀가 단둘이 호텔 방에서 성적 접촉을 하기에 이르렀을 때의 태도를 평소 업무 태도와 비교해 안 전 지사가 김 씨의 거절 의사를 인식했을 것으로 추정하긴 어렵다”고 부연했다.
재판부는 가해자에 의해 성적으로 길드는 현상을 뜻하는 ‘그루밍(grooming)’의 가능성 역시 받아들이지 않았다.
전문심리위원들은 안 전 지사가 김 씨에게 능력을 넘어서는 보직을 준 점, 가벼운 신체 접촉부터 점차 강도 높은 성폭력으로 이행된 점, 보상을 제공한 점, 피해자를 특별히 대접한 점 등을 근거로 김 씨가 그루밍의 심리상태에 빠졌을 가능성이 있다고 봤지만, 재판부는 이를 인정하지 않았다.
재판부는 “안 전 지사는 성실성 등에 대한 호평과 추천에 따라 김 씨를 수행 비서로 발탁했고, 첫 간음행위 이전에 안 전 지사가 김 씨에게 특별한 관심, 칭찬, 선물 등을 보내거나 대접을 한 정황도 없었다”고 설명했다.
또 “그루밍은 주로 아동, 청소년 혹은 성적 주체성이 미숙한 대상이 그루밍의 대상이기 때문에 전문직으로 활동하는 성인 여성이 그것도 약 한 달 사이에 그루밍에 이를 수 있다고 보기도 어렵다”고 덧붙였다.
재판부는 지난해 9월 3일 안 전 지사의 담배 심부름으로부터 시작된 간음에 대해서는 사전에 상황을 모면할 수 있었을 것으로 봤다.
재판부는 “김 씨는 업무 초기에도 안 전 지사의 객실 방문 앞에 물건을 두고 오는 경우가 있었다”며 “담배를 안 전 지사 방문 앞에 두고 문자를 보내기만 했어도 담배를 가져다주는 업무는 그대로 수행하되, 간음에는 이르지 않을 수 있었을 것으로 보이는데도 그리하지 않았다”고 판단했다.
유수인 기자 suin92710@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