돼지 장기를 이식해 당뇨병을 치료할 수 있는 시대가 도래했다. 그러나 국내에서는 이종이식 임상시험 관련 관리 제도가 마련돼 있지 않아 임상시험 진행에 차질이 빚어지고 있다.
바이오이종장기개발사업단은 29일 서울대 의과대학 융합관에서 ‘당뇨병 치료를 위한 돼지 췌도 이식 임상시험 공청회’를 열고 이같은 문제를 제기했다.
이종이식은 무균 미니돼지의 조직이나 장기를 환자에게 이식하는 것이다. 무균 미니돼지로부터 건강한 조직이나 장기를 무제한 공급할 수 있어 말기 장기부전으로 고통받는 환자를 완치시킬 수 있다.
돼지 장기를 이용하는 이유는 돼지의 장기 크기가 인간과 유사하기 때문이다. 원숭이와 같은 영장류는 크기가 작을 뿐만 아니라 멸종 위기에 처해 있으며, 한 배에 1~2마리 정도만 출산하고 성장 속도가 느리다는 특징이 있다. 특히 진화상 사람과 가까워서 인수 공통 질병이 발생할 가능성이 높다. 반면 돼지는 오랜 시간 사람과 함께 생활한 동물이어서 치명적인 감염원을 보유할 가능성이 낮고, 임신 기간도 114일로 짧은 편이며 한 배에 5~12마리를 출산해 공여 동물로 이용하기 유리하다. 게다가 무균 사육이 가능하고, 형질전환을 통해 면역 거부 반응을 줄일 수 있는 장점이 있다.
많은 이식원을 마련할 수 있다 측면은 췌도 이식 성공률을 높일 수 있는 부분이다. 윤건호 가톨릭대 서울성모병원 교수는 “2000년 에드먼턴 프로토콜이 소개되면서 제1형 당뇨병 환자의 췌도 이식술 성적이 크게 향상됐다. 혈당이 조절될 때까지 다수의 공여자로부터 췌도를 반복이식한 것이다”라며 “거꾸로 말하면 충분한 수의 췌도만 있으면 당뇨병을 치료할 수 있다는 얘기가 된다. 그러나 이식 환자 수는 답보상태고, 이식에 가능한 이식원을 무한정 개발하는 것이 해결이다”라고 말했다.
윤 교수는 “아동 및 청소년에서 발생하는 제1형 당뇨병 환자는 세계적으로 300~500만명이다. '인슐린 맞으면 되는 것 아니냐'고 말하는 것은 환자 삶의 질이나 고통을 방관하는 것이다”라며 “암은 치료 시기와 생명이 지결돼 있어서 혁신적인 기술들이 바로 적용되는데, 만성질환은 신의료기술을 도입하기에 사회적 합의를 이끌기 어렵다. 췌도 이식이 당뇨병의 완치 방법으로 가시권에 도달했는가라고 묻는다면, 사회적 합의만 이뤄진다면 가볼 수 있는 길이라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현재 국내에서는 돼지 췌도 이식 영장류 전임상시험에서 세계 최장 혈당 조절 성과를 달성했고, 세계 최초로 이종이식 임상시험 국제 가이드라인에서 제시하는 기준을 만족시키는 전임상시험에 성공한 상태다. 돼지 각막 이식 영장류 전임상시험에서도 세계 최초로 전층각막 이식에 성공했고, 임상시험을 위한 기관의학연구윤리심의위원회 승인을 받았다.
문제는 우리나라의 경우 이종이식 임상시험 관련 관리 제도가 마련돼 있지 않고, 관리 감독할 정부 부처가 정해지지 않아 이종이식 임상시험 진행에 차질이 빚어지고 있다는 점이다. 식품의약품안전처는 이번 공청회에 불참하기도 했다. 미국, 일본, 유럽 등 선진국의 경우 이종이식 법규가 마련돼 있어 이종이식 임상시험을 적절한 법제도하에서 시행 가능하고, 중국의 경우 정부에서 이종이식의 기술 개발을 위해 적극적으로 후원 중이다.
박정규 바이오이종장기개발사업단장(서울대 의과대학)은 “WHO와 국제 학계는 국가의 규제 하에 안전한 이종이식 임상시험을 실시할 것을 권고하고 있다. 사업 기간인 내년 5월까지 임상시험을 진행하지 못하면 사업단 자체가 와해돼 국가적 손실이 불가피하다”며 “우리나라에서도 조속한 시일 내에 이종이식 관련 법규 및 제도가 마련될 수 있도록 국회와 정부, 여론의 깊은 관심이 필요하다”고 희망했다.
김국일 보건복지부 보건의료기술개발과장은 “이종이식 연구개발을 위해 500억원이 지원됐다. 그만큼 이번 사업이 중요하고, 사회적 관심이 높다는 것이다”라며 “다만 임상시험은 사람에게 적용시키려고 하는 부분이기 때문에 안전성과 유효성, 사후관리와 관련해 설득력 있는 자료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이어 “이종장기 이식에 대한 우려도 있다. 사업단의 성과들을 국민들에게 홍보할 수 있는 부분도 마련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유수인 기자 suin92710@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