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원의사들 "경향심사 도입, 의료기관 감시 악랄해질 것"…의료계에 투쟁 제안

병원의사들 "경향심사 도입, 의료기관 감시 악랄해질 것"…의료계에 투쟁 제안

기사승인 2018-09-27 11:26:37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이하 심평원)이 ‘경향심사’ 도입을 골자로 한 심사평가체계 개편안을 공개하자 의사단체가 반발에 나섰다.

경향심사는 기존의 진료청구 건 별로 건강보험급여에 대해 심사하는 방식이 아니다. 기관별, 질환별, 항목별, 환자별 등 다양한 주제로 나누어 각각의 모니터링 지표를 설정하고, 이 지표의 경향을 분석해 경향에서 벗어나는 경우 전문심사를 해서 삭감 및 실사 여부까지 결정하는 방식이다.

앞서 지난 19일 심평원이 발표한 심사평가체계 개편안의 핵심은 ▲2019년부터 단계적으로 현재 건별심사에서 주제별 ‘경향심사’로 전환 ▲경향심사 결과 전문심사 대상으로 선정된 의료기관에 대한 ‘동료의사평가제’의 도입 등이다.

이와 관련 대한병원의사협의회(이하 병의협)는 27일 성명을 통해 심평원이 제시한 경향심사를 거부하고, 의료계에 투쟁을 제안했다.

병의협은 우선 경향심사를 ‘의료비 통제를 용이하게 하기 위한 수단’으로 봤다. 이들은 “경향심사로 심사 방식을 전환하는 주 목적은 진료행위량 조절을 통한 의료비 통제”라며 “이러한 사실은 최근 발표 되었던 보도자료나 연구보고서 등을 통해서 심평원 스스로 밝히고 있는 부분”이라고 지적했다.

병의협에 따르면, 올해 3월 심평원이 발표한 ‘기준 비급여 급여화에 따른 진료비 심사 관리방안 연구’ 보고서는 머리말에서 ‘이 연구의 목적은 보장성 강화에 따라 기준 비급여 항목을 급여화했을 때 발생할 수 있는 불필요한 의료제공(혹은 과다이용)의 비용 관리 기전을 개발하는 것’이라고 밝히고 있다.

문제는 과잉진료 의료기관을 걸러내는 경향심사 과정에서 선량한 피해자가 다수 발생할 수 있다는 것이다. 과소 진료와 진료의 획일화를 초래할 우려도 나온다. 병의협은 “기준에 따라 전문심사 대상 의료기관이 대폭 증가할 수도 있다”며 이같이 주장했다.

병의협은 ”결국 정부와 심평원이 말하는 의학적 자율성은 오히려 경향심사로 인해서 훼손될 가능성이 더욱 높아질 것“이라며 ”현재의 저수가 체계에서 삭감이나 실사를 통한 환수는 의료기관에 치명적인 경영적 손실을 입힐 수 있기에 의료기관들은 이를 피하기 위한 방향으로 움직일 수밖에 없다. 이러한 기전을 통해서 경향심사의 도입은 의료비 통제의 목적을 달성할 수 있게 된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뿐만 아니라 심평원은 기관단위 경향심사 지표를 모니터링한 결과의 첫 번째 활용은 전문심사를 적용하는 것이지만, 기준점을 벗어나지 않은 의료기관을 3~5개 그룹으로 구분하여 표본 심사(의무기록 기반 전문심사)를 시행한다고 한다”며 “결국 현재 건별 심사방식보다도 더욱 악랄하게 의료기관의 진료행태를 심사하고자 하는 속내를 제대로 드러낸 것”이라고 분석했다. 

병의협은 또 경향심사 개편이 문재인 케어의 발판이라고도 짚었다. 이들은 “정부와 심평원은 문재인 케어를 설계하고 발표할 당시부터 문재인 케어의 정착을 위해서 경향심사가 필요함을 알고 그 근거와 명분 마련을 위해 경향심사 관련 연구들을 진행해 왔다”며 “의료계와 논의를 시작한 심사개편 협의체는 경향심사 및 관련 사항들을 안정적으로 통과시키기 위한 도구에 불과했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정부의 방향은 경향심사에서 끝나지 않는다. 경향심사 등을 목적으로 개발되는 다양한 모니터링 지표들은 삭감의 도구도 될 수 있지만 인센티브나 디스인센티브(또는 페널티)의 도구도 될 수 있다”며 “결국 경향심사를 막지 못하면 문재인 케어 완성의 흐름을 막을 수 없게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국민건강에 위협이 될 것이라고도 했다. 병의협은 “경향심사의 도입과 가치기반 지불제(Value Based Payment, VBP)로의 지불제도 전환은 의료의 왜곡 현상을 더욱 심화시킬 수 있다”며 “의료원가에 한참 못 미치는 저수가 체계인 우리나라에서 이 제도를 도입하게 되면 과소진료와 의료의 획일화 현상은 걷잡을 수 없게 되고, 이를 극복하기 위해 또 다른 편법이 양산되는 부작용이 속출하게 될 우려가 높다”고 주장했다.

이어 “지금까지 의료기관들은 저수가에 의한 손실을 행위량을 늘리는 방식으로 일부 보전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경향심사를 도입하고 VBP로 전환하면 이 방식으로는 손실을 보전할 수 없게 된다”며 “국민들의 입장에서도 정작 필요한 의료서비스를 받아야 할 환자가 서비스를 제 때 받지 못하는 현상이 발생하게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들은 경향심사 도입과 관련해 의사협회의 대처를 지적하고 그동안 정부와 협상한 논의과정을 공개할 것을 요구했다. 병의협은 “의협을 비롯한 의료계는 문재인 케어라는 큰 이슈에 대해 면밀히 분석하고 치밀한 대응 전략을 수립하지 못했다”며 “경향심사를 전제로 한 협상을 즉각 파기하고, 그간 논의 과정과 그 내용들을 회원들에게 명백하게 밝히라”며 의협에 요구했다. 

아울러 병의협은 “이번 경향심사로의 심사체계 전환은 문재인 케어에 의해 불가피하게 증가하는 행위량을 억제하고, 더불어 정부 자신들은 책임을 피하려는 얄팍한 수에 지나지 않는다”며 “본 회는 문재인 케어 저지라는 시대적 소명을 충실히 이행하기 위해 모든 노력을 다할 것이며, 앞으로도 의료계가 맞이할 모든 불합리하고 부당한 문제들에 강하게 맞서 싸우겠다”고 밝혔다.

전미옥 기자 romeok@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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