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변을 돌아보면 보증을 서주었다 피해를 본 이들의 사연을 접할 수 있습니다. 딱한 사정에, 외면할 수 없어서 선의를 베푼 이들이 연대보증 때문에 빚더미에 오르는 안타까운 사연 말이죠. 드라마 속 주인공이라면, 온갖 고난이 찾아와도 이를 이겨내고 성공하는 해피엔딩을 맞겠지만, 현실에서 ‘해피엔딩’이란 흔치 않습니다. 다만, ‘성공’의 의미를 가족의 사랑과 행복으로 바꿔 놓고 본다면, 오늘 전할 강민석씨의 사연도 ‘해피엔딩’에 가깝다고 할 수 있습니다.
가난과 빚이란 멍에로 한평생 고단한 삶을 살았던 강씨 가족. 그들은 그림자처럼 달라붙어 도통 놓아주지 않는 빚의 굴레를 이제 막 벗어났습니다. 강씨 가족이 달랐던 건, 그래서 ‘성공’할 수 있었던 건 어두운 터널 한 가운데 있을 때라도 서로 아끼고 의지하던 ‘가족’이었기 때문이 아니었을까요?
◇ 가난과 빚은 그림자처럼 따라다녔다
‘법 없이도 살 사람.’
그게 바로 강민석씨(가명)였다. 사람 좋기로 유명한 그는 남에게 싫은 소리 한 번 하지 않고, 속 깊은 배려를 베풀곤 했다. 그를 잘 아는 지인들은 법 없이도 사는 사람이라고 농담 반 진담 반 말하곤 했다.
그러나 세상이 그리 호락호락하던가. 시쳇말로 ‘모질지 못하면 모지리’라는 말처럼 비정한 현실에서 때때로 강씨는 어수룩해 보이기 일쑤였다. 작정하고 ‘뒤통수’를 치려드는 사나운 이들에게 강씨는 손쉬운 ‘먹잇감’일 수 있었다. 건설현장에서 목수로 일하던 강씨는 그렇게 자주 월급을 떼이고 사기를 당했다. 한없이 다정하고 착한 남편이었지만, 아내는 남편이 조금은 더 모질었으면 싶기도 했다.
강씨는 번번이 임금을 받지 못해도, 자신이 데리고 있던 목수들의 임금은 사비를 털어 챙겨줬다. 빚이 늘어났다. 그래도 괜찮았다. 땀 흘려 성실히 일하면 언젠가 보상받을 수 있을 거라고 그와 그의 가족은 믿었다.
불행은 예고 없이 찾아온다고 했던가. 급하다고 해서 사정사정한 지인의 부탁을 강씨는 차마 내치지 못했다. 한 번, 두 번 돈이 급한 사람에게는 보증을 서 주기도 하고, 본인 명의로 사채를 얻어 빌려주기도 했다.
넉넉히 자라지 못한 그는 남의 딱한 처지를 그냥 못본체 하질 못했다. 그의 착한 마음은, 그러나 화살이 되어 돌아왔다. 사채까지 얻어 적지 않은 돈을 빌려주었건만, 지인은 그의 배려를 배신하고 말았다. 그렇게 지인은 잠적해버리고, 그 뒷감당은 고스란히 강씨의 몫이 됐다. 은혜는 비수로 날아와 꽂혔다.
넉넉지 않은 형편이기에 변제 능력이 있을 리 만무했다. 평생을 모아 마련한 자그마한 집도 넘어가고, 강씨 부부와 어린 두 자식들은 하루아침에 길바닥으로 내몰렸다.
도저히 헤어 나올 수 없을 것만 같아 강씨는 극단적인 생각을 하기도 했다. ‘이놈의 세상, 그래 죽자, 죽어.’ 자포자기의 심정었던 강씨는 문득 그의 손에 닿은 따뜻한 무엇인가를 느꼈다. 그건 바로 아이의 고사리 손이었다. 손을 꼭 잡은 채 아비를 바라보는 어린 아이들을 얼굴을 강씨는 멍하니 내려다보았을 것이다.
눈물이 흘렀다. 아이들을 위해 그는 다시 이를 악물었다. 제대로 다시 한 번 일어서자고 그는 마음을 굳게 먹었다. 도통 사방이 칠흑처럼 깜깜해 도무지 어찌할 바를 모르던 시절이었다. 당장 먹고 잘 곳조차 없던 강씨 식구들에게 선택지란 정해져 있었다. 강씨는 지방을 전전하며 공사판에서 흙먼지를 뒤집어썼다. 아내는 식당에서 온종일 설거지를 하며 돈을 벌었다.
아이들은 돌볼 여력이 없어 친척집에 맡겼다. 강씨 부부는 그렇게 생존의 절벽 끝에 매달려 있었다. 고된 노동보다 참기 힘든 건 매순간 떠오르는 그리움, 아이들의 얼굴이었다.
강씨도 공사판에서 잠시 짬이 날 때마다 땀에 절은 지갑을 꺼내들곤 했다. 지갑 속에서 아이들의 사진을 바라보고 있자면 어느새 눈가가 촉촉해지는 것이었다. ‘다시 네 식구가 한 곳에서 살 수만 있다면!’ 강씨와 그의 아내는 어떤 고통도 참아낼 수 있다고 생각했다.
1년 후, 단칸방을 얻어 네 식구는 다시 함께 살게 되었다. 비쩍 마른 아이들을 볼 때마다 부부는 마음이 아팠다. 엄마와 누나를 지켜주겠다는 든든한 아들과 그 흔한 학원 한번 보내주지 못했지만 공부를 열심히 하던 장녀는 이들 부부의 기쁨이자 행복이었다.
IMF 외환위기를 거치며 몇 번의 고비가 더 있었다. 기력이 쇠하고 건강마저 나빠진 강씨는 더 이상 건설현장에서 일을 할 수 없었다. 가난은 이들을 쉽사리 놓아주지 않았다. 아내가 식당에서 번 돈과 아들이 막노동으로 벌어온 돈으로 이들 가족은 어렵게 생계를 이어갔다. 찢어질 듯 가난했지만, 강씨 가족은 그래도 행복했다. 그리고 포기하지 않았다. 그 과정에서 정부의 소시민을 위한 대출 제도 등을 활용해 재기의 종잣돈을 마련할 수도 있었다.
가족들은 그렇게 조금씩, 조금씩 희망을 향해 나아갔다.
김양균 기자 angel@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