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경찰이 산부인과의원을 대상으로 무리한 낙태죄 수사를 벌여 논란을 빚은 가운데 낙태 문제 해결을 위해 ‘모자보건법’ 개정부터 시작하자는 목소리가 나왔다.
경남 남해 경찰서는 최근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서 압수한 자료를 바탕으로 지역 산부인과에 방문한 여성 환자들에게 일일이 연락해 낙태 여부를 취조한 것이 알려지며 입방아에 올랐다.
앞서 지난 9월 보건복지부는 낙태 의사에 대한 행정처분은 헌법소원 이후로 유예하겠다고 밝힌 바 있지만, 낙태죄를 색출하려는 경찰의 수사는 계속되고 있는 것이다. 또 헌법재판소의 판결도 늦춰지고 있어 의료인과 여성들의 불안은 심화된 상황이다.
이와 관련 24일 김동석 대한산부인과의사회장은 “현행 모자보건법이 문제가 있다는 점은 모든 국민이 다 알고 있다”며 “현실과 맞지 않는 모자보건법으로 혼란이 큰 상황에서 복지부는 헌법소원 결과만 기다릴 것이 아니라 서둘러 개정 논의에 착수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현행 모자보건법 14조(1973년 제정) 1항은 본인이나 배우자가 우생학적 또는 유전학적 정신장애나 신체질환 또는 전염성 질환이 있는 경우, 강간 또는 준강간에 의해 임신된 경우 등에 한해서만 24주 이내에 인공 임신중절 수술을 허용한다.
그러나 무뇌아 등 출산 이후 생존이 불가능한 태아의 인공 임신중절은 허용하지 않고, 대부분 강간죄가 24주 내 입증이 어려운 점 등 현실과 맞지 않는 모순을 안고있어 개정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김 회장은 “현실과 다른 법 때문에 불법적인 임신중절이 행해지고 온라인에서는 불법 낙태약이 판매되는 등 문제가 심각하다”며 “큰 사고가 나기 전에 빨리 조치를 취해야 한다. 모자보건법 개정을 시작하고, 아일랜드의 국민투표 등을 전향적으로 고려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특히 낙태죄를 둘러싼 문제 해결 요구는 지난해 말부터 올해 말까지 거세게 나타났다. 지난해 11월 '낙태죄 폐지' 청와대 국민청원에 국민 23만 명이 참여한 데 이어 비웨이브, 모두를위한낙태죄공동행동 등 여성단체는 서울 도심에서 꾸준히 시위를 열고 낙태죄 폐지를 촉구했다. 그러나 정부는 별다른 노력을 보이지 않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지난해 청와대는 낙태죄 폐지 청원에 대해 “사회적 논의가 필요한 단계"라며 임신중절실태조사를 진행해 국민 의견을 수렴하겠다고 답변한 바 있다. 당초 복지부는 올해 10월~11월쯤 결과 발표 및 공청회를 열 계획이었다. 그러나 올해가 지나가도록 임신중절실태조사 결과조차 나오지 않은 상황이다.
이에 여성단체 등에서는 비판의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한국여성민우회는 “국가는 언제까지 여성들의 사회적 고통에 대한 책임을 방기할 것이냐”며 “법이, 경찰이, 국가가 여성들의 삶을 지지하기는커녕 오히려 이미 사각자대에 놓인 여성들을 더 궁지로 몰고 그나마 유지되던 일상마저 해치고 있는 작금의 현실에 깊이 분노한다”고 비판했다.
또 올해만 13번째 낙태죄 폐지 시위를 진행한 비웨이브는 “낙태죄를 통해 여성의 건강권과 가능성을 차단하고, 여성의 신체를 마음대로 통제하려는 국가의 의도가 숨겨져 있는 것 아니냐”며 “대통령 권한이 큰 한국에서 헌법재판소의 결정만 기다리는 미온적인 태도에 실망스럽다. 정부가 여성의 요구에 관심을 기울이고 낙태죄 폐지에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전미옥 기자 romeok@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