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 2~3번꼴 폭력 위험...'진료실이 위협받고 있다'

하루 2~3번꼴 폭력 위험...'진료실이 위협받고 있다'

한 해 900여건 달하는 의료인 대상 폭력...'의사가 맞으면 눈감는 현실'에 울분

기사승인 2019-01-05 03:00:00

최근 임세원 교수 사망사건으로 의료진을 향한 폭언·폭행 문제가 수면 위로 올랐다. 의료현장의 폭력을 뿌리 뽑자는 목소리도 높아지고 있다. 

실제 의료인이 폭언·폭행에 시달리는 일은 비일비재하다. 지난해 보건의료노조가 실시한 ‘보건의료노동자 실태조사’에 따르면 응답자 2만9620명 중 폭행 경험자는 3248명으로 전체의 11%에 달했다. 폭행 가해자는 환자가 71%, 보호자가 18.4%를 차지했다

또 2017년 의료기관에서 의료종사자 폭행 등으로 신고·고소가 이뤄진 사례만 893건, 2018년 상반기에만 365건이나 발생했다. 하루 2~3번꼴로 폭행 위협에 시달리고 있는 것이다.

정신과 진료현장에서는 폭언·폭행 피해가 더 흔하다. 정신과 환자의 질환특성상 폭력 문제가 발생하는 경우가 많다. ‘국립병원 정신간호사의 폭력경험과 인권의식이 소진에 미치는 영향’ 논문에서는 의료기관에 종사하는 정신과 간호사의 98.9%가 환자에 의한 폭력경험이 있으며, 국립병원 정신 간호사 대상 연구에서 폭력경험이 정신적·신체적 소진과 관련이 깊다고 밝힌 바 있다.

문제는 의료진을 보호할 제도적 장치가 부실하다는 점이다. 많은 정신과 의료진들이 정신질환자를 대하는 직업의 특성상 폭력이나 폭언을 감수해야한다는 암묵적 동의와 사회적 시선, 미흡한 관리체계로 인해 폭력 사각지대에 노출된 상태로 보호받지 못하고 있다. 한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는 “정신과 의료진에게 폭언은 일상이고 폭행을 당해도 그저 참는 수밖에 없다. 환자가 폭행당하는 일이 발생하면 이슈가 되지만 의료진이 환자에게 맞으면 다들 눈감고 말더라”며 현실적 어려움을 토로했다.

의료계에서는 임 교수 사망사건을 ‘예견된 사고’라고 지적하고 있다. 그간 의료진이 환자로부터 폭력을 당하는 일이 흔히 발생했음에도 우리 사회는 의료진을 위한 안전장치 마련에 미흡했다는 것이다.

지난해 국회에서는 응급실 내 의료종사자 폭행 시 처벌을 강화하는 ‘응급의료법 개정안’이 본회의를 통과한 바 있지만, 일반 진료현장의 폭행 방지를 위한 의료법 개정안은 아직 계류 중이다. 또 정신의료계는 정신질환자의 입원을 어렵게 한 정신건강복지법 개정안이 정신질환자의 진료권 제한, 무분별한 탈원화로 인한 사회적 혼란을 야기한다며 우려해왔지만 여전히 같은 문제가 반복되고 있다.

의료계뿐만 아니라 시민사회도 ‘진료실 안전’을 보장해달라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임 교수 사망사건 당일인 지난달 31일에는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는 ‘강북삼성병원 의료진 사망사건에 관련한 의료 안정성을 위한 청원’이 올라왔다. 청원자는 “환자의 치료에 성심을 다하려는 의사를 폭행하고 위협하고, 살인하는 것은 안타까운 한 의사의 목숨뿐만이 아니라 치료를 기다리고 있는 수많은 환자들의 목숨을 위협에 빠뜨리는 것”이라며 “병원에서의 폭력과 폭행 행위 및 범죄 행위에 대해서 강력히 처벌하고 다시는 이런 일이 재발하지 않도록 안전장치를 구비해 달라”고 촉구했다. 이 청원에는 국민 5만5000여명이 참여한 상태다. 

이와 관련 정부와 의료계는 의료인의 안전한 진료환경을 위한 제도적 장치 마련에 나설 계획이다. 지난 2일 복지부는 “정신과 진료현장의 안전실태 파악을 추진하고 학회와 함께 진료환경 안전 가이드라인을 마련하고 제도적·재정적 지원방안을 협의하겠다”고 밝혔다. 진료실 내 후문 마련, 비상벨 설치, 보안요원 배치, 폐쇄병동 적정 간호사 인력 유지 등도 검토한다.

의료계는 의료인 폭력 예방을 위한 일명 ‘임세원법’을 추진한다. 이동우 대한신경정신의학회 정책연구소장(상계백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은 “의료인 대상 폭력은 진료과를 막론하고 일어난다. 의료환경에서 폭력문제는 다른 환자들도 위협하는 중대한 문제이나 실질적 처벌수위는 미미했다”며 “반의사불벌죄를 없애고, 의료인 폭행에 대한 가중처벌 등 처벌 확대가 필요하다. 또 의료기관 보안요원을 보다 밀도있게 배치하는 등 폭행문제 예방을 위한 폭넓은 논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어 이 소장은 “다만 정신질환 환자가 폭력을 행사하는 경우와 의사결정이 가능한 일반 환자의 폭력에는 책임의 무게를 달리 적용해야 한다. 이번 사건으로 심신미약 경감을 없애자는 이야기도 나오지만 이는 굉장히 심사숙고할 사안”이라고 덧붙였다.

전미옥 기자 romeok@kukinews.com

전미옥 기자
romeok@kukinews.com
전미옥 기자
이 기사 어떻게 생각하세요
  • 추천해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추천기사
많이 본 기사
오피니언
실시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