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옐로카드] 체육계 일은 나 몰라라… 무책임한 이기흥 회장

[옐로카드] 체육계 일은 나 몰라라… 무책임한 이기흥 회장

[옐로카드] 체육계 일은 나 몰라라… 무책임한 이기흥 회장

기사승인 2019-01-17 06:00:00

쇼트트랙 금메달리스트 심석희의 폭로가 이어진 뒤 체육계 곳곳에서 폭행 및 성폭력 피해자들의 호소가 빗발치고 있다. 체육계 내부의 대대적인 수술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오는데도 대한체육회는 책임을 전가할 궁리만 해 반발이 크다.

지난 8일 심석희가 조재범 전 국가대표 코치를 성폭행 혐의로 고소한 사실이 알려진 뒤 잠잠했던 체육계에도 ‘미투’ 물결이 일었다. 전 여자 유도 선수 신유용이 실명과 얼굴까지 공개하며 코치로부터 성폭행을 당했다고 14일 호소했고, 16일엔 일반인 이 씨가 전 태권도협회 이사 A씨에게 원생 시절 상습적인 성폭행을 당했다고 주장했다.

폭행과 파벌 등으로 잡음이 빈번했던 체육계에 ‘성폭력 이슈’까지 불거지자 자연스레 비판의 화살은 아마추어·엘리트 체육을 총괄하는 대한체육회로 향했다. 특히 체육회의 수장인 이기흥 회장의 책임론에 무게가 실렸다. 최근엔 그의 사퇴를 촉구하는 시위까지 벌어졌다.

이 회장은 심석희의 폭로가 이어진 지 일주일 만에야 공식석상에 모습을 드러냈다. 대통령이 직접 나서 문제 해결을 지시하자 마지못해 입을 열었다.

그는 15일 오전 제22차 대한체육회 이사회를 열고 회원 종목 단체의 폭력·성폭력 근절 실행대책을 발표했다. 이 회장은 “감내하기 어려운 고통 속에서도 용기를 내어 준 피해 선수들에게 감사와 위로의 말씀을 드린다. 한국 체육에 성원을 보낸 국민과 정부, 기업인에게 진심으로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고 고개를 숙였다.

이어 '성폭력 가해자 영구제명 및 국내·외 취업 원천 차단'. '성폭력 예방 및 피해자 보호를 위한 구조적 개선 방안 확충 ', '성폭력 조사 및 교육을 외부 전문기관에 위탁 실시' '선수 육성 시스템의 근본적 개선방안 마련' 등의 대책을 발표했다. 

당장의 사태를 모면하는 데만 급급했던 기자회견이었다. 발언 어디에도 대한체육회의 책임을 언급한 내용은 없었다. 제시한 대책 대부분은 지난 9일 노태강 문화체육관광부 2차관 발표 내용과 대동소이했다. 폭행, 성폭력 근절을 위한 근본적인 대책 방안과는 거리가 멀었다. 

사퇴 요구도 거부했다. 이 회장은 “최고 책임자로서 시스템을 완벽하게 구축하고 정상화하는데 마지막이라는 각오로 철저히 쇄신토록 하겠다”며 버텼다. 

준비한 말을 전부 읊은 뒤엔 서둘러 현장을 빠져나갔다. 기자들의 질문도 받지 않았고 쏟아지는 질문도 침묵으로 일관했다. 공공기관 수장의 기자회견이라곤 믿기 힘들 정도였다.

박태환의 런던올림픽 포상금 5000만원 미지급, 임원 금품수수 비리로 인해 수영연맹 회장직을 내려놨던 이 회장은 대한체육회 수장이 된 이후엔 책임과는 거리가 먼 행보를 보였다.

재임 2년간 파벌, 폭행, 성폭력 등의 이슈가 끊이질 않았지만 그 때마다 여론이 잠잠해지는 틈을 타 감투를 보존했다. 부정선거 논란, 올림픽 자원봉사자 갑질 논란, IOC(국제올림픽위원회) 위원 후보 ‘셀프 추천’, ‘호화 접대 골프’ 등 부정적인 이슈에 직접 연루됐음에도 큰 피해는 없었다. 

대한체육회는 매년 4000억 원의 정부 예산을 종목별 가맹단체에 배분하는 막강한 권한을 갖고 있다. 따라서 가맹단체에 대한 관리‧감독 권한은 온전히 대한체육회에 있다. 

하지만 체육회는 그간 폭행, 성폭력 등에 연루된 가해자 처벌과 관리에 미온적 태도를 보였다. 체육회의 허술한 관리‧감독을 틈타 가해자들이 체육계에 다시 발을 들여놓는 기이한 상황들이 발생했다. 체육계 특유의 분위기인 ‘내 식구 감싸기’도 여기에 기름을 부었다.

실제로 동계올림픽 쇼트트랙 계주 금메달리스트인 김소희 전 대표팀 코치는 2004년 선수들을 상습 폭행한 혐의로 코치직에서 물러났다. 하지만 2017년 3월 여성체육회 위원으로 위촉돼 복귀했다.

이밖에도 빙상팀 코치 시절 제자를 임신시켜 대한체육회로부터 영구제명 징계를 받은 코치는 태릉선수촌 근처에서 유소년 선수를 지도 중이고, 성추행 혐의를 받은 한 코치 역시 목동빙상장에서 개인 코치 강습 대관을 승인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신고를 해도 큰 처벌이 없으니 오히려 피해자가 체육계를 떠나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일부 선수들이 보복이 두려워 신고를 주저하는 이유도 이해가 된다. 

가해자가 다시 지도자로, 체육계 관계자로 복귀하는 비정상적인 행태를 용인하고 방치한 대한체육회의 행보는 엄연한 직무 유기다. 수장인 이 회장의 책임은 두 말 할 것도 없다. 

국민청원까지 등장할 정도로 책임론이 거세지만, 이 회장 본인이 자진 사퇴 의지를 내비치지 않는다면 대한체육회의 수장을 교체할 방법은 없다. 

오영우 문체부 체육국장은 16일 “대한체육회는 IOC 지위와 기타 공공기관이라는 지위를 함께 갖고 있다”면서 “회장과 관련된 임무 등은 규정과 절차에 따라 이뤄진 부분이라 (이기흥 회장의 거취를 결정하는데) 한계가 있다는 점을 인정한다”고 말했다.

대한체육회가 정부 예산을 쓰는 공공기관이지만 IOC가 국가올림픽위원회에 정부의 영향력이 행사되는 것을 금지하고 있다는 점에서 현실적으로 어려움이 있다는 것이다. 

문대찬 기자 mdc0504@kukinews.com

문대찬 기자
mdc0504@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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