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는 27일은 비정규직 노동자 고(故) 김용균씨가 숨진 지 49일째가 되는 날이다. 그러나 유가족은 아직도 장례식을 치르지 못했다. ‘위험의 외주화’를 막을 근본적 대책이 나오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급기야 경찰은 비정규직 문제 해결을 요구하는 시위를 벌인 노동자에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유가족과 시민대책위는 분향소를 서울로 옮기고 단식투쟁에 돌입하는 등 대응 수위를 더 높일 계획이다.
21일 오후 2시 김수억 금속노조 기아차 비정규직지회장의 구속 전 피의자심문이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렸다. 김 지회장은 "비정규직 없는 세상을 요구하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대화 요구에 문재인 대통령과 정부가 응하면 좋겠다"며 "고 김씨와 같은 죽음이 다시는 일어나지 않도록 비정규직을 없애야 한다"고 강조했다.
경찰은 지난 20일 청와대(대통령 관저) 앞은 옥외 집회와 시위가 금지된다는 이유로 김 지회장에 구속영장을 신청했다고 밝혔다. 비정규직 100인 대표단에 속한 김 지회장 등 6명은 지난 18일 오후 청와대 신무문 앞에서 태안화력발전소에서 숨진 고 김씨 사고의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 비정규직 노동자 정규직 전환, 대통령 면담 등을 요구하며 시위를 벌였다. 경찰은 이들을 현행범 체포했다.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과 위험의 외주화를 막아야 한다는 시민들의 목소리는 점점 더 커지고 있다. 19일 광화문에서는 비정규직 철폐와 위험의 외주화 금지, 김용균씨 사망사고 진상규명을 촉구하는 대규모 집회가 열렸다. 벌써 5차를 맞은 이날 집회에는 1만명(주최 측 추산)이 참가했다. 지난해 12월22일 1차 추모대회에 3000명이 참석한 것을 시작으로, 참석자들이 점점 늘어나는 모양새다.
민주노총은 김용균씨 사고와 관련해 △발전소 비정규직의 발전 5개사 직접고용 등 민간과 공공영역 상시고용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전환해 위험의 외주화를 금지 △사고 재발 방지를 위한 구조적 대책을 마련 △정부·유족·시민대책위 진상규명 △책임자 처벌이 이뤄져야 한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또 같은날 시민단체는 정부 대응 수위를 높이겠다고 언급했다. 김용균 시민대책위원회는 결의문을 통해 “명절인 설 전에 (김용균씨) 장례를 치를 수 있도록 강도 높은 투쟁에 나설 것”이라며 “분향소를 서울로 옮기며 단식농성에 돌입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지난 18일 산업통상자원부와 고용노동부는 태안화력발전소에 대한 특별근로감독 결과를 발표했다. 노동부는 태안화력발전소에서 산업안전 관련 위반사항 1029건을 적발했다며 “태안화력소 책임자인 본부장 등에게 안전조치 이행 여부를 철저히 확인하고 사법처리 할 것”이라는 방침을 밝혔다. 또 석탄발전소 중대재해 사고원인 분석 등을 위해 ‘특별산업안전조사위원회’를 국무총리 주도로 구성하겠다는 내용과 발전소 연료, 환경설비 운전, 경상정비 업무에 종사하는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 여부를 논의하겠다는 내용도 발표했다.
그러나 김용균 시민대책위원회는 고용노동부의 특별감독 결과 내용을 비판했다. “중대재해 발생 때마다 되풀이한 수순”이라는 지적이다. 또 고용노동부가 사법처리 대상으로 한국서부발전 김병숙 사장이 아닌 태안발전소 본부장을 지목한 것에 대해 “진짜 책임자 김 사장에게 면죄부를 준 것”이라고 반발했다.
앞서 시민대책위는 지난 11일 문재인 정부에 ‘故 김용균 청년 비정규직 노동자 관련 대정부 요구안’을 제시하고 19일까지 답을 줄 것을 요청했다. 요구안에는 △정부, 유족, 시민대책위 공동 진상규명위원회 구성 △발전소 비정규직 정규직 전환 △안전인력 확충 △합의 이행을 위한 후속 조치 등이 담겼다.
지난해 12월28일 문재인 대통령은 김의겸 청와대 대변인을 통해 김용균씨 유족을 만날 뜻을 전했다. 그러나 김용균씨 유족은 진상규명과 비정규직의 정규직화가 확정되지 않는 한 문 대통령을 만나지 않겠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정진용 기자 jjy4791@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