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한미군의 주둔 비용 일부를 한국 정부가 부담하는 ‘한미방위비 분담금’이 계약기간 1년에 1조300억대로 가닥이 잡혔다. 시민단체들 사이에서는 재협상을 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8일 외교가에 따르면 미국 측이 제시한 유효기간 1년을 한국이 받아들이는 대신, 금액은 미국이 제시한 ‘마지노선’ 10억 달러(1조1305억원) 보다 낮은 수준인 1조 300억원대에서 합의하는 방향으로 양측 의견이 수렴됐다. 이에 따라 오는 10일 가서명을 한 뒤 오는 오는 4월 국회 비준절차가 진행될 예정이다.
우리측으로선 ‘심리적 상한선’ 1조원과 다년 계약 방식 모두 지키지 못한 셈이다. 그간 우리 정부는 미국과 협상에서 1조원을 넘길 경우 국회 비준을 받기 어렵다는 입장을 고수해왔다. 합의 금액은 양측의 절충안이 채택됐으나 결국 1조원을 넘겼다. 또 분담금 계약 기간이 기존 5년에서 1년으로 줄어들었다. 즉 양측은 올해 협정안에 서명한 뒤 바로 내년 방위비 협상을 준비해야 한다는 뜻이다.
증가폭도 기존보다 크다. 1조300억원은 전년도 보다 약 700억원이 늘어난 비용이다. 지난 2014년부터 2018년까지 5년간의 방위비 분담금 연간 증가액은 100억원 안팎이었다. 지난 5년 동안 방위비 분담금은 지난 2014년 9200억원, 2015년 9320억원, 2016년 9441억원, 2017년 9507억원, 지난해 9602억원이다.
이번 방위비 협상에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강경한 입장이 반영됐다는 해석이다. 한미 양측은 지난해 10차례에 걸친 협상 끝에 절충점을 찾았으나, 미국이 돌연 ‘최상부 방침’을 이유로 협상 전력을 바꿨다. ‘최상부’가 트럼프 대통령의 의중이 아니냐는 관측이 제기됐다. 또 트럼프 대통령은 공공연하게 미국과 방위조약을 체결하고 있는 국가들을 상대로 방위비 분담금 인상을 압박해왔다.
민감한 주한미군 주둔 문제가 걸려있다는 점도 우리 측이 강한 목소리를 내지 못한 이유다. 미국 CNN 방송은 트럼프 대통령이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의 2차 정상회담에서 주한미군 철수 카드를 협상 카드로 제시할 가능성을 미국 관료들이 우려했다고 보도했다. 또 자유한국당에서는 방위비 분담 협상이 난항을 겪자 “한미동맹이 삐걱 거리고 신뢰 관계가 무너지는 모습을 보인다”며 “2차 북미회담 전에 방위비 협상이 타결돼 회담 테이블에 주한미군이 절대 의제가 되지 않게 해야 한다”고
문제는 매년 남아서 쓰지 못하고 이월되는 방위비 액수가 상당하다는 것이다. 평화통일연구소에 따르면 지난 2017년 기준 미집행액(배정된 예산을 당기 또는 당해 연도에 완전히 집행하지 못하고 다음 기 또는 익년도로 이월하거나 불용액으로 처리하여 반납하는 금액)은 1조원을 넘는다. 그런데도 미국 측이 방위비 증액을 요구하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다는 지적이다.
시민단체에서는 이번 협상 타결을 비판하는 목소리가 높다. 평화와 통일을 여는 사람들, 소파개정연대 등 시민단체들은 지난 7일 오전 청와대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협상 내용이 한반도 평화체제로 향하는 정세에 역행한다고 지적했다. 또 “한국에 일방적으로 많은 부담을 지우는 불균형적인 주한미군 방위비 부담은 한미관계의 일방성과 굴욕성을 드러낸다”고 꼬집었다. 북한은 7일 노동당 기관지인 노동신문을 통해 “조선반도(한반도) 정세가 긴장완화와 평화로 나아가는 오늘 방위비 분담금 증액은 곧 ‘전쟁비’ 증액”이라며 “절대로 용납될 수 없다”고 비판했다.
방위비 용처를 명확히 해야 한다는 의견도 나왔다. 정욱식 평화네트워크 대표는 8일 KBS ‘김경래의 최강시사’에 출연해 “방위비 분담금 액수를 늘리고 줄이는 문제 못지않게 우리 정부가 방위비 분담금 협상을 하며 용처를 분명히 하는 등 투명성을 제고시키는 노력이 수반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진용 기자 jjy4791@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