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돌아오겠습니다.(We will be back)”
한국 가수 최초로 그래미 시상식 무대를 밟은 그룹 방탄소년단의 다짐이다. 지난 10일(현지시각) 미국 로스앤젤레스 스테이플스센터에서 열린 제61회 그래미 시상식에서 베스트 R&B 앨범 시상자로 참석한 이들은 “한국에서 자라면서 우리는 언제나 그래미 무대에 서는 걸 꿈꿨다. 우리의 꿈을 현실로 만들어준 팬들에게 감사드린다”며 이렇게 덧붙였다. 이날은 시상자로 무대에 올랐지만, 훗날 공연과 수상을 위해 다시 그래미를 찾겠다는 포부가 읽힌다.
방탄소년단의 그래미 입성은 국내외 음악계의 큰 이슈였다. 보수적인 성격으로 유명한 그래미가 비(非) 영어권 아이돌 음악에게 문을 열어줬다는 점에서다. 그래미 측이 방탄소년단의 영향력을 상당히 의식하고 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중론이다. 수상에는 실패했지만, 방탄소년단의 정규 3집을 디자인한 허스키폭스 이두희 대표는 ‘베스트 레코딩 패키지’(Best Recording Package) 부문 후보에 올랐다. 미국 시애틀에서 활동하고 있는 김영대 대중음악평론가는 앞서 자신의 유튜브 방송에서 “앨범 디자인도 그 안에 들어있는 음악의 질과 완전히 무관할 수 없다”며 “뭔가를 인정하고 거론한다는 것은 최소한 그 작품에 관한 존중이 담겨 있다”고 분석하기도 했다.
방탄소년단을 향한 그래미의 대우는 특별했다. 마일리 사이러스, 돌리 파튼, 카멜라 카베요 등과 함께 공연장 중앙에 방탄소년단의 자리를 마련했다. 카메라 또한 이들의 모습을 자주 비췄다. 엠넷에서 시상식 중계를 맡은 임진모 음악평론가는 “(그래미가) 방탄소년단의 존재감을 뚜렷이 확인하고 있는 것”이라고 봤다. 지난해 역대 최악의 시청률을 기록한 그래미가 팝 소비 핵심 연령대를 차지하는 아미(방탄소년단의 팬덤)를 TV 앞으로 불러들이겠다는 의도도 읽힌다.
1958년 시작된 그래미 시상식은 전미 레코드 예술 과학 아카데미(NAPAS)에서 주최하는 미국 최고 권위의 시상식이다. 그동안 흑인을 비롯한 유색인종과 이들의 음악, 혹은 정치적인 메시지를 전하는 뮤지션들을 홀대했다는 비판에 시달려왔으나 올해는 달랐다. 지난해 ‘디스 이즈 아메리카’(This is America)로 전 세계를 흔든 차일디시 감비노가 올해의 레코드, 올해의 노래 등 주요 부문을 석권했다.
다만 이것을 그래미의 ‘변화’라고 볼 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의견이 갈린다. 김영대 평론가는 “차일디시 감비노의 수상은 현재 아프리칸 아메리칸들의 목소리가 갈수록 높아지는 등의 미국의 사회적 분위기 안에서 그래미가 ‘우리가 (이런 움직임을) 의식하고 있다’라는 것을 보여주는 절충적인 선택이라고 느꼈다”고 지적했다. “몇 년 전, 동성애를 주제로 한 매클모어 앤 루이스의 ‘세임 러브’(Same Love)가 올해의 노래를 탄 것과 같은, PC(정치적 올바름)한 뉘앙스의 선택”이라는 설명이다.
이런 가운데 방탄소년단의 향후 그래미 어워즈 수상 가능성에 대해서도 관심이 쏠린다. 방탄소년단의 시상이 그래미 어워즈의 변화를 상징하는 장면 중 하나로 꼽히기 때문이다. 임진모 평론가는 이날 중계에서 “방탄소년단이 (그래미 어워즈에서) 아직 무대를 보여주지 않았다. 할 게 남아있다는 뜻”이라며 “(앞으로는) 공연 무대에도 오르고 상도 받을 것”이라고 낙관했다.
김영대 평론가는 “방탄소년단이 그래미에서 수상을 할 수 있느냐 없느냐 하는 것은 내겐 크게 의미 있는 예상 같진 않다”면서도 “다만 지난해 그래미 뮤지엄에도 방탄소년단을 초청해 음악에 대한 관심을 보였고, 이번에는 수상자로 초청을 했다는 점에서 레코딩 아카데미의 눈도장을 받은 것만은 분명하다. 외국 가수이고 외국어 음악이라는 게 근본적인 한계와 불리함이지만, 꾸준한 음악적 발전과 함께 미국 내에서 지속적으로 화제를 만든다면 그래미의 부름을 다시 받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고 전했다.
이은호 기자 wild37@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