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온 날을 아름답게 정리한다는 의미의 ‘웰다잉(Well-Dying)’ 문화가 확산되고 있다.
평안한 임종을 맞기 위해 ‘호스피스 서비스’를 이용한 환자들이 꾸준히 늘고 있고, 무의미한 연명의료는 원하지 않는다고 의향을 밝힌 국민도 11만명에 이른다.
‘언제, 어떻게 죽을 것인가’에 대해 고민함으로써 인간의 존엄성을 유지하고, 남아있는 가족들의 부담을 줄이겠다는 경향이 늘고 있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이러한 사회 현상에 따라 정부도 연명치료를 중단할 수 있는 기준을 완화한다는 방침이다. 일각에서는 제도 완화로 인해 생명가치를 경시하는 풍조로 이어질 수 있다고 우려한다. 경제적 부담 등의 요인이 환자의 ‘자기결정권’을 침해할 수 있다는 지적이다.
◇호스피스 이용 및 연명의료 거부 사례 증가, 만족도 높아
호스피스란 임종기에 있는 환자와 그 가족의 신체적, 심리사회적, 영적 영역을 치료하는 것을 말한다. 보건복지부와 국립암센터 중앙호스피스센터가 최근 발표한 ‘2017년 호스피스·완화의료 현황’조사 결과, 2017년 암으로 사망한 환자 7만8863명 중 약 22%(1만7317명)가 호스피스·완화의료 서비스를 이용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전년보다 4.5%p 증가한 수치다.
호스피스를 통해 부모·형제를 떠나보낸 사별 가족의 만족도도 높았다. 이들 97%가 서비스에 대해 ‘만족한다’고 답했으며, 일반 의료기관에 대한 만족도(67%)보다 높은 것으로 조사됐다.
세부적으로 살펴보면, 환자를 존중하는 태도(90점), 환자 호소에 대한 경청(88점), 가족에 대한 도움(87.3점), 향후 계획에 대한 면담과 증상에 대한 신속한 대처(86.7점) 등에 대한 만족도가 전반적으로 높게 나타났다.
지난해 2월 4일 ‘존엄사법’으로 불리는 연명의료결정법 시행 후 사전연명의료의향서 작성건수도 크게 늘었다. 사전연명의료의향서는 나중에 아파서 회복 불가능한 상태에 빠졌을 때 치료 효과 없이 생명만 연장하는 ‘연명의료’를 받지 않겠다는 의사를 미리 밝혀두는 서류다. 월별 작성 추계를 살펴보면 제도 4개월 차인 지난해 6월 2만 6417건, 8월 4만 3110건, 8개월 5만 8845건, 12월 8만 6691건, 지난 2월 3일 11만 5259건으로 꾸준히 늘었다.
연명의료를 유보하거나 중단한 환자는 3만 6000명이 넘는 것으로 조사됐다.
◇ 연명의료결정법 개선…“의료비 부담 등 경제적 이유로 삶 포기할 수도”
복지부는 환자 본인의 의사가 존중받는 문화가 조성될 수 있도록 연명의료결정법 관련 제도 개선을 추진한다. 우선 연명의료계획서 작성이 가능한 말기환자의 질병범위를 4개 질환으로 한정했던 것을 삭제해 치료효과 없이 임종과정의 기간만 연장하는 다른 시술들도 포함될 수 있도록 해 수혈이나 승압제 투여 등의 사용도 멈출 수 있다.
또 연명의료결정에 대한 환자의 의사를 확인할 수 없는 경우, 배우자와 1촌 이내 직계 존비속의 합의만으로 연명의료 중단을 결정할 수 있도록 했다. 기존에는 환자 가족 ‘전원’의 합의가 필요했다.
그러나 이러한 제도 개선으로 인해 ‘어쩔 수 없이’ 죽음을 택하는 경우가 발생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연명의료 중단 결정이 현실적으로 의료비 부담능력에 의해 좌우될 수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연명의료 유보‧중단 사례의 67%는 가족들의 결정으로 이뤄지고 있다. 복지부 조사 결과를 보면, 환자 자신이 ‘사전연명의료의향서’를 작성해 등록해뒀다가 회복 불가능 상황에 부닥치자 연명의료를 중단한 환자는 0.8%에 불과했다. 즉, 연명의료 결정에 대해 환자의 의사가 제대로 반영되지 않은 것이다.
서이종 웰다잉시민운동 정책위원장(서울대 교수)은 “연명의료 중단 결정은 품위 있는 죽음을 위한 자기결정에 근거한다. 그러나 우리나라 의료현장에서 의료불평등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라며 “죽음의 불평등 또한 마찬가지다. 2011년~2015년 소득계층별 사망 전 1년간 입원일수 및 입원비를 보면 상층의 종합병원 이상 규모의 의료기관 이용 비율이 하층에 비해 높다”고 말했다.
서 위원장은 “이러한 여건에서 연명의료 중단 결정이 현실적으로 경제적 능력에 의해 좌우될 수 있다는 사실은 연명의료결정법이 시행될 때 예견됐다. 경제적 여건은 환자 자신의 연명의료 중단 의사뿐만 아니라 가족들의 중단 의사에도 반영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그에 따르면 지난해 2~3월 진행된 65세 이상 노인인식조사 결과, 자식이 회복 불가능한 암환자로 판정받았을 경우 항암치료를 거부하겠다고 답한 비율은 저소득층일수록 높았다. 그 이유로는 ‘가족에게 부담을 주기 싫어서’가 25.7%, ‘치료비용이 막대하기 때문’이 25.5%를 차지했다.
그는 “취약계층에 대한 배려가 없다면 임종기에서 연명의료 중단 결정이 ‘품위 있는 자기결정’이 아닌 가족들과 공모한 ‘삶을 포기하는 결정’이 될 수 있다”며 “사회경제적 취약계층에 대한 배려가 제도적으로 뒷받침돼야 하는 이유”라고 강조했다.
유수인 기자 suin92710@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