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그리소 1차 투여해보니…“폐암인 줄 아무도 모를 것”

타그리소 1차 투여해보니…“폐암인 줄 아무도 모를 것”

기사승인 2019-03-09 04:40:00

“술과 담배와는 거리가 멀었는데 폐암 말기 판정을 받았습니다. 호흡이 가쁘지도 않았고, 폐에 통증도 없었으니 당황했죠. 옛날에 폐암 4기라고 진단받으면 그냥 죽을 날을 기다려야 했어요. 현재의 나는 내가 암환자인지 아닌지 모를 만큼 실생활에 불편함이 없습니다. 타그리소가 정말 특이한 약인지, 나한테 잘 맞는 건지 모르겠지만, 효과가 좋아요”

강원도 양양에서 표고버섯을 재배하는 52년생 A씨는 가톨릭대 서울성모병원에서 1차 치료제로서의 오시머티닙(제품명 타그리소) 임상시험에 참여하고 있다. 그가 폐암 말기 판정을 받는 것은 지난해 7월이다. 처음에는 말이 어눌해지는 등의 증상이 나타나 치매인 줄 알고 병원을 찾았다가 우연히 암을 발견했다. 뇌에 전이가 돼 치매와 비슷한 증상이 나타났던 것이다.

 

그는 진단 결과를 받고 이틀 만에 뇌수술을 받았다. 이어 방사선 치료를 하기 위한 준비를 마쳤지만, 원발암이 폐암이기 때문에 종양내과 강진형 교수를 만나게 됐다. 때마침 오시머티닙 1차 치료 임상시험이 진행 중이었고, 이 치료제가 뇌전이암에 효과적이라는 설명을 듣게 됐다. 그래서 8월부터 오시머티닙 복용을 시작했다. A씨는 “암환자가 제일 걱정하는 게 약 부작용이다. 그런데 이 약을 먹고 난 이후 운동을 많이 하는데도 체력적으로 부담이 없다”며 “친구들이 ‘죽다 살아나더니 뭘 먹고 왔냐’고 물어볼 정도로 혈색도 좋고, 뇌수술을 받기 전보다 오히려 운동도 더 잘 된다. 혼자서 정말 특이하다고 생각할 정도로 좋다”고 전했다.

오시머티닙은 3세대 표적항암제로, 비소세포폐암 환자 중 EGFR이라는 유전자 변이가 있는 환자들에서 사용하는 치료제다. 모든 치료제가 그렇듯 치료 기간이 길어지면 ‘내성’이 생길 수밖에 없는데, 특히 EGFR 유전자 변이가 있는 환자에서 내성이 발생하면 T790M이라는 또 다른 변이가 주로 많이 나타난다. 오시머티닙은 T790M 변이에 작용하는 치료제이다. 내약성이 좋다는 것은 오시머티닙의 장점이다. 기존의 표적항암제들이 갖는 피부 발진, 여드름, 구내염, 설사, 각막 염증 등의 부작용이 적다는 특징도 있다.

이에 국내에서 오시머티닙은 기존 표적치료제의 내성이 생긴 이후 ‘T790M’ 변이가 나타났을 때 사용하는 2차 치료제로 급여가 적용됐다. 이어 EGFR 변이가 있고 기존 약제로의 치료경험이 없는 환자를 대상으로 한 연구에서도 치료효과가 확인되면서 2018년 12월 1차 치료제로도 승인됐다.

가톨릭대 종양내과 강진형 교수는 “나이가 많아 부작용을 견디기 힘든 분들, 또 종양의 크기가 커서 빨리 효과를 봐야 하는 경우 오시머티닙 처방이 우선 고려된다”며 “특히 뇌에는 노폐물이 들어갈 수 없도록 하는 뇌혈류 장벽이 있는데, 이 장벽이 기존 약물치료에는 큰 장애물이었다. 오시머티닙은 이러한 장벽도 잘 넘고 뇌에 치료제가 잘 도달해 뇌전이가 있는 환자에게서도 효과적이다”라고 설명했다.

그에 따르면 EGFR 변이가 확인되고 치료경험이 없는 환자에게 오시머티닙을 1차 투여한 임상시험 결과, 18.9개월의 치료 반응 지속 기간이 나타났다. 기존의 표적항암제들이 8~14개월 정도의 기간을 보였던 것에 비하면 훨씬 연장하는 결과이다. 또 부작용 발생 빈도가 기존 치료 대비 2~30% 이상 줄었다. 

 

강 교수는 “심각한 부작용은 훨씬 더 많이 줄었다. 즉 부작용이 나타나더라도 일상생활에 지장이 없는 부작용만 나타난다”면서 “환자들의 부담을 줄이고 일상생활 적응을 잘할 수 있도록 돕는다고 볼 수 있다. 그래서 1차 허가가 환자들에게는 참 기쁜 소식일 것”이라고 전했다.

다만 강 교수는 보험이 적용되지 않아 치료를 포기하는 경우가 발생하는 것이 안타깝다는 입장이다. 그는 “오시머티닙도 표적치료제이기 때문에 결국 치료 차수가 늘수록 내성이 생길 수밖에 없다. 대신 내성이 생길 때까지의 기간을 연장시켜 1년 이상을 환자가 더 치료를 받으면서 가족들과 편안한 시간을 보낼 수 있다”며 “의료진 입장에서는 환자들이 빨리 치료를 받을 수 있게 되기를 바라는 마음이 있다”고 말했다.

이에 환자 A씨는 임상시험 참여 전 마음을 비울 수밖에 없었던 암환자의 고뇌를 털어놨다.

그는 “오시머티닙의 한 달 약값이 꽤 비싼 것으로 알고 있다. 사실 젊었을 때 20~30 차례 암 보험을 들었지만 암 진단을 받을 당시에는 암 보험이 없었다. 왜냐하면 담배도 술과 담배를 하지 않고. 운동도 열심히 하고, 공기 좋은 시골에 살면서 건강한 음식도 잘 먹으며 살았기 때문이다”라며 “암은 나에게 굉장히 먼 이야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진단 당시 4기라고 하니 많이 당황했다”고 회상했다.

이어 “70년 가까이 살았으니 이만하면 많이 살았다고 생각해서 사실 마음을 비웠었다. 매달 큰 비용을 내야 한다면 치료를 포기했을 것 같다. 다행히 내게 맞는 임상시험이 있어 부담이 줄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게다가 이 약은 부작용이 없다. 친구 한 명이 폐암인데, 약에 맞는 유전자 변이가 없어 다른 주사를 맞는다. 정말 죽으려고 한다. 밥도 못 먹고, 일상생활을 하는 것을 힘들어한다. 암환자에게는 이런 게 굉장히 두렵다”며 “내가 지금 환자인지 아닌지 자각하지 못할 정도로 설사 같은 부작용조차 거의 없다. 이런 약을 환자들이 빨리 쓸 수 있게 해주면 좋을 것 같다”고 덧붙였다.

유수인 기자 suin92710@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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