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경원 자유한국당(한국당) 원내대표가 국회에 폭탄을 투하했습니다. 간신히 정상화한 국회는 또다시 위기에 직면했습니다.
나 원내대표는 12일 오전 국회 본회의 교섭단체 대표연설에서 문재인 정부 외교안보라인 전면 교체를 요구했습니다. 나 원내대표는 “김연철 통일부 장관 후보자 지명도 철회해 달라”고 강조하면서 “더 이상 대한민국 대통령이 김정은 수석대변인이라는 낯뜨거운 이야기를 듣지 않도록 해달라”고 발언했습니다.
국회는 그야말로 발칵 뒤집어졌습니다. 여당 의원들은 고성과 야유, 삿대질까지 하며 들고 일어났습니다. 홍영표 더불어민주당(민주당) 원내대표는 단상까지 올라가 항의하면서 연설은 30분 이상 지연됐습니다. 여야 의원들 간 몸싸움도 벌어졌습니다. 문희상 국회의장이 “모든 국민이 지켜보고 있다. 조금만 냉정해지자. 이건 상생의 정치가 아니라 공멸의 정치”라고 목소리 높였지만 소용없었습니다.
말폭탄의 여파는 장기간 지속될 것으로 보입니다. 민주당은 일단 나 원내대표를 국회 윤리특별위원회에 제소했습니다. 민주당은 징계 사유로 “국회의원의 자질을 의심케 하는 망언으로 대한민국 국회 품격을 심각하게 훼손한 동시에 촛불 혁명을 통해 선출된 대한민국 대통령을 모독하고 대한민국 주권자인 국민 명예를 심각하게 훼손한 것”을 들었습니다. 여당 소속 128명 의원 전원이 서명했습니다. 한국당도 가만히 있지 않았습니다. 한선교 한국당 사무총장은 “제1야당 원내대표 연설을 방해한 홍영표 민주당 원내대표를 윤리위에 제소해야 한다”고 주장했죠.
나 원내대표가 ‘김정은 수석대변인’ 발언이 몰고 올 파장을 몰랐을까요. 일각에서는 이번 나 원내대표의 발언을 ‘의도된 도발’로 봅니다. 극우 성향 ‘태극기 부대’를 향한 러브콜, 그리고 지지층 결집을 노린 철저히 계산된 행보라는 겁니다. 정호진 정의당 대변인은 “과격하고 극렬한 언사로 친박 태극기 부대 아이돌로 낙점되겠다는 의도가 너무 뻔히 보였다”면서 “아무리 뻔뻔한 게 한국당 ‘종특’이라지만 이번 연설은 도를 넘어도 한참 넘었다”고 비난했죠.
나 원내대표와 한국당은 이번 교섭단체 대표연설을 통해 일단 화제 끌기에는 성공했습니다. 당 지지율 상승까지 기대할 만합니다. 그런데 ‘왜 하필 이 시점에’라는 아쉬움이 드는 것도 사실입니다. 국회는 거의 두 달 동안 개점휴업 상태였습니다. 어렵사리 문을 연 지 고작 10일 만에 또다시 여야가 충돌한 겁니다. 선거제 개혁과 민생법안이 산적해 있는데 국회가 또다시 경색되는 게 아니냐는 우려가 나옵니다. 결국 가장 큰 손해는 국민이 입는 셈이죠. ‘일 안 하는 국회’에 분노한 국민의 화살이 한국당을 향할지도 모릅니다. 나 의원의 계산에 여기까지는 없었던 걸까요. ‘소탐대실’은 바로 이번 사태를 두고 하는 말인가 봅니다.
정진용 기자 jjy4791@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