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역시 예견된 참사였습니다. 초등학생과 고등학생 등 5명의 평범한 시민이 하루아침에 허망하게 목숨을 잃었습니다. 피해자들은 이전에도 수차례 경찰에 도움을 요청했지만 응답받지 못했습니다. 허술한 경찰 대처에 비판이 쏟아지고 있습니다.
17일 오전 4시29분 안모(42)씨가 경남 진주시 가좌동 본인이 사는 아파트 4층에 불을 질렀습니다. 그는 계단으로 대피하던 이웃을 상대로 흉기를 무차별적으로 휘둘렀습니다. 초등학교 6학년 학생 금모(12)양을 비롯해 고등학교 3학년 학생 최모(19)양, 50대·60대 여성, 70대 남성이 과다출혈로 숨졌습니다. 부상자는 무려 13명에 이릅니다.
경찰 조사 결과, 안씨는 지난 2010년 조현병 진단을 받고 보호관찰 처분을 받은 사실이 드러났습니다. 또 안씨는 10여년 넘게 극심한 피해망상에 시달려 온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문제는 사전에 참사를 막을 수 있었던 기회가 적어도 7차례는 있었다는 점입니다. 진주경찰서는 지난 1월부터 지난달 13일까지 안씨와 관련해 아파트 주민 신고 5건 등 모두 7건의 소동 신고가 112에 접수됐다고 밝혔습니다. 안씨는 지난 1월 자활센터에서 직원 2명을 폭행했고, 지난달에는 호프집에서 손님 3명을 폭행해 불구속 입건되는 등 수차례 폭행 이력이 있었습니다.
특히 안씨는 자신의 집 바로 위층에 살던 최양을 상습적으로 위협했습니다. 최양은 시각장애 1급으로 숙모 강모(53)씨와 함께 살고 있었습니다. 안씨는 최양을 뒤따라가고 집에 오물을 투척하는 등 시비를 걸었습니다. 또 출근하는 강씨에게 이유 없이 날계란을 던지기도 했습니다.
번번이 경찰에 도움을 요청했지만 돌아온 것은 “경미한 사안”이라는 대답뿐이었습니다. 유가족은 경찰이 출동한 뒤에도 명확한 증거가 없다며 한번 둘러보고 가는 것이 전부였다고 울분을 토합니다. 신변 보호와 격리조치 등을 요구했지만 경찰은 거절했습니다. 이웃에게는 공포스러운 존재인 안씨를 두고서도 경찰은 “말이 안 통한다”며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태도를 보였습니다. 또 경찰은 안씨에게 정신병력이 있는지 한 번도 확인하지 않았습니다.
최양과 강씨는 자구책으로 직접 CCTV를 설치했지만 무용지물이었습니다. ‘누구 하나가 죽어 나가야 제대로 조사를 할 거냐’는 피해자들의 비명. 결국 현실이 됐습니다. 안씨가 휘두른 흉기에 최양은 숨졌고 숙모는 중상을 입었습니다.
참사 뒤에도 변명에 급급한 경찰의 태도는 국민 분노를 키웠습니다. 경찰은 사건 직후 “출동 당시 미미한 신고라서 매뉴얼에 따라 맞는 대처를 했다”고 밝혔습니다. 그러나 질타가 쏟아지자 “신고처리가 적절했는지 진상 조사를 할 것”이라고 입장을 선회했습니다.
정신질환자의 우발적 범죄는 증가 추세입니다. 이번 참사로 법무부, 보건소, 경찰 사이 정신질환 우범자 관리 체계의 허점이 고스란히 드러났습니다. 타인을 해칠 위험이 있는 정신질환자가 의료기관에서 퇴원할 경우, 환자나 보호자 동의 없이도 정신건강복지센터나 관할 보건소에 통보하고 치료·재활을 돕도록 한 ‘임세원법’이 국회에서 통과됐지만 이마저도 내년 4월에나 시행될 예정입니다.
공백 기간 동안 참극이 되풀이되지 않기 위해 경찰의 역할이 가장 큽니다. 초동대처를 담당하는 경찰의 정확한 상황 판단과 적극적 개입. 국민 불안을 불식시키기 위해 그 어느때보다 필요한 때입니다.
정진용 기자 jjy4791@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