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내는 무명 가수였다. 그는 주로 작은 클럽이나 펍에서 노래했다. 관객은 거의 없었다. 두어명의 사람들 앞에서 노래하는 일도 부지기수였다. 그즈음 소년은 곡을 하나 썼다. ‘디 에이 팀’(The A Team)이라는 제목의, 마약에 찌든 노숙자 여인에 관한 노래다. 이 노래를 부르는 사내의 목소리엔 쓸쓸한 기운이 맴돌았다.
지금은 세계적인 스타가 된 영국의 싱어송라이터 에드 시런의 이야기다. 에드 시런은 지난 21일 오후 인천 송도 달빛축제공원에서 연 월드투어 한국공연 ‘÷(Divide·디바이드)’에서 “10년동안 많은 일이 있었다”며 이 같은 일화를 소개했다. 에드 시런이 18세에 써 2011년 발매한 ‘디 에이 팀’은 당시 영국 오피셜 차트의 싱글차트 3위에까지 오르는 등 인기를 얻었다. 2014년 낸 ‘X’와 2017년작 ‘÷’도 국내를 비롯한 세계 곳곳에서 사랑받았다.
이날 혼자서 무대에 오른 에드 시런은 하지만 웬만한 밴드 뺨치는 파괴력으로 관객들을 들었다 놨다. 소리를 녹음해 반복해서 들려주는 루프 스테이션(Loop Station)의 공이 톡톡했다. 에드 시런은 기타 몸통을 때려 리듬을 만들고 줄을 뜯어 멜로디를 입힌 다음, 후렴을 흥얼대 코러스를 쌓았다. 에드 시런의 노래와 연주는 라이브의 묘미가 무엇인지 다시 한번 느끼게 했다. 거침없고 생생했다. ‘캐슬 온 더 힐’(Castle on the Hill)로 공연을 시작한 에드 시런은 ‘골웨이 걸’(Galway Girl), ‘씽킹 아웃 라우드’(Thinking Out Loud), ‘퍼펙트’(Perfect), ‘쉐이프 오브 유’(Shape of You) 등의 노래로 2만5000 관객을 춤추게 했다.
에드 시런은 ‘쥬크 박스’ 같았다. 어떤 장르든 능수능란하게 소화해내서다. 랩처럽 빠르게 마디가 쏟아지는 ‘이레이저’(Eraser)와 컨트리 풍의 ‘낸시 멀리건’(Nancy Muligan)을 자유자재로 오갔다. 발라드곡 ‘다이브’(Dive)와 ‘퍼펙트’는 금세 공연장을 낭만으로 물들였고, ‘싱’(Sing)에선 쉴 새 없이 ‘떼창’이 터져 나왔다. 에드 시런은 장르뿐만 아니라 언어의 장벽도 금세 허물었다. “내가 음을 맞추고 여러분이 소리를 질러주면 된다”거나 “내일 목소리를 잃을 것처럼 소리쳐 달라”며 관객들의 호응을 끌어냈다. 2년 전 팔 부상으로 무산된 내한 공연을 언급하면서 “죄송하다. 기다려주셔서 감사하다”는 인사를 덧붙이기도 했다.
분위기가 최고조에 달한 건 마지막곡 ‘유 니드 미, 아이 돈트 니드 유’(You Need Me, I Don’t Need You)에서였다. 에드 시런은 이 곡의 후반부로 접어들수록 더욱 맹렬한 연주를 들려줬다. 전자 악기 없이도 이런 폭발력을 뿜어내다니! 에드 시런은 과거 자신의 머리 색깔과 음악 색깔을 바꾸려던 한 레코드 회사와의 일을 바탕으로 ‘유 니드 미, 아이 돈트 니드 유’를 쓴 것으로 알려졌다. 노래가 주는 쾌감이 남달랐던 건 이런 배경 때문이다. 어린 시절 말을 더듬어 따돌림을 당하던 소년은, 2~3명의 관객 앞에서 노래하던 무명 가수는, 이날 수 만명의 관객과 행복했다. 한국 공연을 마친 그는 일본으로 넘어가 투어를 이어간다.
이은호 기자 wild37@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