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대 직장인 최모씨는 다가오는 어린이날을 두고 진행된 장난감 할인전에서 평소 눈여겨보던 완구를 구입했다. 그는 “어릴 적 형제끼리 모여 장난감을 가지고 놀던 추억이 그립다”면서 “가지고 있으면 당시 생각도 나고 행복에 젖는다”라고 말했다. 이어 “부끄러운 일이 아니라 생각한다”라며 “나는 키덜트”라고 강조했다.
키덜트(Kidult·어린이와 어른의 합성어) 열풍이 유통가에서 거세지고 있다. 이들의 대다수는 경제적 능력을 갖춘 데다, 자신의 취미에 돈을 아끼지 않는 ‘매니아’들이다. 유통업계의 ‘큰 손’으로 자리 잡은 지 오래다.
23일 롯데백화점에 따르면, 지난해 키덜트 상품군의 매출은 전년 대비 94% 증가했고, 올해 1~2월 매출은 전년 동기 대비 151.5% 성장한 것으로 조사됐다. 관련 시장 규모도 급증세다. 한국콘텐츠진흥원에 따르면 국내 키덜트 시장 규모는 2014년 5000억원대에서 매년 20% 증가해 지난 2016년에는 1조원을 돌파한 것으로 추산된다.
최근 롯데백화점은 영플라자 본점에 젊은 남성을 타깃으로 한 키덜트 전문매장 '건담베이스'를 열었다. 매장에는 건담의 모형으로 불리는 프라모델, 피규어, 액세서리, 서적, 기획상품 등 건담과 애니메이션 캐릭터 상품을 취급하고 있다.
‘건담베이스’에서 선보이는 건담 모델은 총 700개 품목으로, 가격대는 8만원에서 15만원대를 형성하고 있다. 50만원 이상의 고가 제품과 건담 HG(High Grade), RG(Real Grade) 등 한정판도 갖추고 있다. 롯데백화점 관계자는 "키덜트 상품이 취미에 돈을 아끼지 않는 '어른이'에게 인기를 끌자, 전문매장을 선보이게 됐다"라고 말했다.
롯데마트는 아예 어린이날을 두고 타겟층을 아이와 어른으로 잡았다. 지난 17일까지 진행한 어린이날 상품 사전 예약 행사에 여러 연령대별 인기 상품들을 선보였다.
특히 3040의 ‘덕심(오타쿠+마음(心)’을 자극하는 키덜트를 위한 상품들이 눈길을 끌었다. 유명 일본 애니메이션 ‘드래곤볼’의 주요 캐릭터들(손오공, 베지터, 트랭크스)의 피규어를 800세트 한정으로 준비했다. 또한, 다시 부활한 게임 캐릭터 ‘슈퍼 마리오’가 활약하는 ‘마리오 파티’ 게임과 ‘닌텐도 스위치’ 게임기를 500세트 한정으로 내놨다.
키덜트 타깃의 편집숍 일렉트로마트 역시 ‘키덜트의 성지’로 불리며 순항을 이어가고 있는 중이다. 각종 전자제품, 장난감 등을 갖추고 있다. 매장에서 100만원대 마블 피규어가 월 평균 3~5개씩 팔려나가 화제가 일기도 했다. 일렉트로마트에 따르면, 피규어 매출은 2018년 75.8%, 2019년 1~3월 32.1%로 지속적으로 신장하고 있다.
‘키덜트’가 큰손으로 떠오르면서 패션업계도 영향을 받고 있다. ‘키덜트’의 동심을 자극하는 엣 애니메이션 캐릭터를 내세워 의류를 출시하는 식이다.
이랜드 스파오가 지난달 선보인 ‘카드캡터 체리’ 기획 상품은 출시 3일 만에 전 품목 초도 물량이 품절됐다. 지난해 내놓은 해리포터 협업 상품도 출시 2시간 만에 25만장이 완판 됐다. 이랜드 관계자는 "카드캡터 체리 컬래버래이션 상품은 품절이 돼 2차 생산해서 전국적으로 수급하는 중"이라고 말했다.
키덜트 현상은 비단 국내의 일만이 아니다. 업계와 국가를 불문하고 기업들이 키덜트 잡기에 나서는 이유는 ‘키덜트’만큼은 불황을 타지 않는다고 보기 때문이다. 이들이 구입한 완구와 상품들은 자기 자신을 위해 선뜻 지갑을 연 것이다.
롯데백화점 관계자는 "키덜트 분야는 구매력을 갖춘 성인뿐 아니라 어린이까지 동시에 집객할 수 있는 분야로, 앞으로도 키덜트 존을 확대해 나갈 것"이라며 “워라벨(일과 생활의 균형), 소확행(일상의 소소한 행복) 등 남성 고객의 증가가 두드러지면서 업계는 이들의 움직임을 눈여겨보고 있다"라고 설명했다.
한전진 기자 ist1076@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