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긴 서로를 판단하지 않는 곳(Judgment-free zone)이에요. 전 여러분이 자신의 삶을 살고 즐기며, 저와 함께 춤을 추기를 바라요. 여러분. 저를 위해 그렇게 해주실 수 있나요?”
호주에서 온 싱어송라이터 트로이 시반의 말에 객석이 요동쳤다. 27일 오후 시반의 단독 콘서트가 열린 서울 올림픽로 올림픽공원 체조경기장에 모인 1만5000명의 영혼은 자유와 해방의 즐거움을 만끽했다. 트로이 시반이라는 이름의 23세 젊은 청년이 부린 마법이었다.
트로이 시반은 붉고 뜨거웠다. 거침없고 솔직한 청춘의 어느 단면을 대변하는 것 같았다. 자신이 17세 겪은 이야기를 바탕으로 만든 ‘세븐틴’(Seventeen)이나, 섹스에 대한 노골적인 비유를 담은 ‘블룸’(Bloom), 식어버린 사랑을 물러터진 자두에 빗댄 ‘플럼’(Plum) 등 생생한 젊음의 숨결을 공연장으로 뿜어냈다. 발랄한 멜로디의 ‘럭키 스트라이크’(Lucky Strike)로 열기를 고조시켰다가 발라드곡 ‘포스트 카드’(Postcard)로 관객을 숨죽이게 하고, 드림팝 풍의 ‘더 굿 사이드’(The Good Side)로 공기를 몽환적으로 만드는 등 분위기를 주무르는 능력도 탁월했다.
‘헤븐’(Heaven)은 그중에서도 특별했다. 트로이 시반이 자신의 성 정체성을 받아들이는 과정을 다룬 노래이기 때문이다. 트로이 시반은 2013년 유튜브에 영상을 올려 자신의 성적 지향을 드러냈다. 노래에서 ‘내 일부분을 잃어버리지 않고도 천국에 갈 수 있을까’라고 고뇌하던 시반은 이날 “여러분이 이 노랠 듣고 행복해하는 모습을 보고 싶다”고 말했다. 객석은 무지갯빛으로 물들었다. 성소수자를 지지한다는 의미로 관객들이 마련한 이벤트였다.
트로이 시반은 관객들과 적극적으로 소통했다. “한국어로 ‘아이 러브 유’라고 말하고 싶은데 어떻게 하느냐”더니, 관객들에게 배운 대로 “싸랑해요”라고 외쳤다. “무대 뒤에서 엄청난 선물을 받았다”면서 자신의 모습을 본 따 만든 인형을 들고나와 자랑하기도 했다. “오늘은 내 인생 최고의 날”, “오늘 밤을 잊지 못할 것”, “내가 태어나면서부터 꿈꾸던 순간”이라고 연신 강조하며 감격스러워했다.
80여분간 이어진 공연은 앙코르곡 ‘유스’(Youth)와 ‘마이 마이 마이!’(My My My!)로 막을 내렸다. 2층 관객들도 대부분 자리에서 일어나 마지막 두 곡을 즐겼다. “넌 나의 청춘이야”(‘유스’) “사랑으로부터 도망치지 말자”(‘마이 마이 마이!’)와 같은 낭만적인 고백에 관객들은 열렬히 호응했다. 트로이 시반은 “내 인생 최고의 순간”이라면서 “다시 한국에 오면, 지금 계신 모든 분을 또 보고 싶다”고 말했다.
이은호 기자 wild37@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