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일 오후 9시, 서울 세종대로 세종문화회관 M씨어터. 한 시간여 동안 자리에 앉아 노래하던 가수 정태춘이 우뚝 일어섰다. ‘5·18’을 부르기 위해서였다. 무대 뒤엔 걸린 흰 천이 조명으로 붉게 물들었다. 시종 시인처럼 낮은 음성으로 노래하던 그는 이번엔 투사가 됐다. “무엇을 보았니, 아들아. 나는 태극기 아래 시신들을 보았소. 무엇을 들었니, 딸들아. 나는 절규하는 통곡 소릴 들었소.” 정태춘의 목소리가 천둥처럼 울렸다.
‘5·18’의 원래 제목은 ‘잊지 않기 위하여’였다. 정태춘은 1996년 광주 망월동 5.18 구묘역에서 열린 안티 비엔날레에서 이 노래를 처음 불렀다. 1년 앞서 개최된 광주 비엔날레에 대항해 만들어진 자리였다. 정태춘은 ‘5·18’에서 “어디에도 붉은 꽃을 심지 마라”며 1980녀 5월의 광주를 잊지 말 것을 거듭 당부한다. 이날 공연에선 여성 소리꾼이 ‘5·18’의 마지막 소절을 불렀다. 노래는 진혼곡이 돼 세상을 떠난 영혼들을 어루만졌다.
이번 공연은 정태춘·박은옥 부부의 데뷔 40주년을 기념한 대규모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기획됐다. ‘날자, 오리배’라는 제목으로 전국 10개 도시에서 열린다. 지난달 13~14일 제주 공연을 마쳤으며, 서울 공연은 지난달 30일 막을 올려 오는 7일까지 이어진다. 공연 제목은 2012년 발매한 11집 마지막 트랙 ‘날자, 오리배…’에서 따왔다. 비자도 국적도 없이 바이칼호수, 에게해, 탕가니카, 티티카카 호수로 가는 오리배를 타고 대자연과 하나 되고자 하는 두 사람의 바람을 담은 제목이다.
정태춘·박은옥 부부는 1978년 발매된 자신들의 1집 수록곡부터 신곡 ‘연남, 봄 날’까지 지난 40년을 아우르는 세트리스트로 공연을 꾸렸다. ‘서해에서’로 시작해 ‘회상’, ‘촛불’, ‘북한강에서’, ‘빈 산’, ‘시인의 마을’, ‘이 어두운 터널을 박차고’ 등을 지나 ‘수진리의 강’과 앙코르곡 ‘사랑하는 이에게’로 막을 내렸다. 쓸쓸하고 멜랑콜리한 정태춘의 노래와 곱고 서정적인 박은옥의 음성이 저릿하게 향수를 불러냈다.
포크 가수로 두각을 먼저 드러냈지만 정태춘은 다양한 장르를 주물렀다. 원래 동요로 만들었다던 ‘윙윙윙’, 재수생 시절 누이를 보며 만들었다던 트로트 풍의 ‘양단 몇 마름’, 장장 8분여의 러닝타임을 자랑하는 ‘정동진3’ 등 다채로운 분위기로 공연을 채웠다. 정태춘과 박은옥이 각각 “비극적인 서정의 백미”로 꼽은 ‘빈 산’과 ‘바다로 가는 시내버스’가 흐를 땐 비애감도 함께 흘러넘쳤고, 바리톤 박정섭과 정태춘이 같이 부른 ‘92년 장마, 종로에서’는 희망으로 꿈틀댔다. 정태춘은 때론 시인이 됐고, 때론 투쟁가가, 또 때론 철학자가 됐다.
정태춘은 ‘붓글’도 쓴다. 이날 공연장 로비엔 그의 작품들이 여러 점 전시됐다. 작년 10월에 쓴 “바람이 분다. 일어나라”, “나는 평생 나의 이야기를 해왔다. 그것이 또 누군가의 이야기일 거라고 생각하며” 같은 붓글이 관객들을 반겼다. “박은옥 정태춘 40”이란 글도 있었다. 정태춘은 그 밑에 ‘힘든 길, 먼 도정. 여기까지 함께 와주셨네요. 말로 감사하기 부족하니 허리 꺾을 밖에’라고 부연했다. 평생 자신의 이름 뒤를 따랐던, 아내이자 음악적 동지인 박은옥을 위한 헌사였다.
공연을 마치며 정태춘은 “인터뷰를 하며 ‘40주년 소회가 뭐냐’는 질문을 가장 많이 받는다”면서 “요동치는 시기, 지리멸렬한 시기도 있었다. 하지만 그런 시대에 많은 사람들과 연대하고, 마음을 나누고, 함께 새로운 세상을 상상해왔다는 것에 뿌듯한 마음”이라고 말했다. 박은옥은 “지난 40년간의 환대에 너무나 감사했다. 여러분의 가수로서 노래 부를 수 있어서 영광이었다”고 했다.
이은호 기자 wild37@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