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승의 날이 돌아왔습니다. 쿡기자는 이맘때면 생각나는 은사님이 있습니다. 집안 형편이 어려워 점심을 먹지 못하는 제자를 위해 흔쾌히 급식비를 지원해 준 선생님인데요. 지인은 감사한 마음을 잊지 못해 매년 스승을 찾아뵙는다고 합니다. 이처럼 선생이라는 직업은 단순히 지식을 전달하는데 그치지 않습니다. 이들의 격려, 관심, 말 한마디가 아이들의 인격 형성에 지대한 영향을 끼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스승이라는 명예로운 이름에 먹칠하는 일이 최근 발생했습니다.
13일 서울시교육청은 서울교육대 남학생들의 성희롱과 관련, 연루된 현직 교사를 확인해 조치할 예정이라고 밝혔습니다. 교육청은 서울교대 측에 ‘성희롱 채팅’에 연루된 현직 초등학교 교사 명단을 요구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앞서 서울교대에서는 ‘관습’이라는 이름으로 남학생들이 여학생의 외모를 품평하는 책자를 만들고 단체 채팅방에서 성희롱 발언을 했다는 폭로가 나왔습니다. 또 재학생과 졸업생이 성희롱 의혹이 제기된 온라인 커뮤니티를 ‘사회 부적응자 커뮤니티’라고 부르고 ’페미니스트라고 글을 올리자’, ‘대면식 때 성인지 교육을 하는 사진을 올리자’는 등 대책을 논의한 대화도 공개됐습니다.
문제의 단톡방에는 현직 초등학교 교사인 졸업생도 있었습니다. 현직 교사가 “겉모습이 중3인 초등학교 5학년 여자애가 욕을 하는데 예뻐서 말을 잘 못 하겠다”, “예쁜 애는 따로 챙겨 먹는다”는 등 학생을 성희롱하는 듯한 대화를 했다는 충격적 주장이 나왔습니다.
서울교대는 사과 성명을 발표했습니다. 그러나 대처 수준을 보면 사태를 어떻게 인식하고 있는지 엿보입니다. 서울교대는 여학생 외모 품평 책자를 만들고 채팅방에서 성희롱 발언을 한 국어교육과 학생 11명에 대해 유기정학(2~3주) 처분과 상담교육 이수명령(12~20시간) 부과 결정을 내렸습니다. 외모 품평에 동참한 초등교육과(2명)와 과학교육과(8명) 학생에게도 경징계인 경고 처분에 그쳤습니다. 교원시민단체는 “서울교대 측 대처가 지나치게 안이하고 미온적”이라며 “국민 눈높이에 맞춰 재심의 해야 한다”고 지적했습니다.
이번 사태가 더 참담한 이유는 따로 있습니다. 더이상 교내 성희롱, 성폭력 문제에 침묵하지 말자며 우리 사회는 변하고 있는데 교육계는 여전히 과거 인식에 머물러 있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입니다. 지난해부터 학교 내 성폭력, 성희롱을 폭로하는 ‘스쿨미투(#me too)’ 운동이 시작됐습니다. 그동안 감추기 급급했던 치부가 드디어 드러난 겁니다. 학교 성폭력 근절 운동을 벌이는 ‘청소년 페미니즘 모임’은 지난달 24일부터 ‘우리는 감사하지 않습니다’ 편지쓰기 캠페인을 통해 “폭력을 행사하거나 성희롱을 일삼는 스승을 더는 존경할 수 없다”고 목소리 높였습니다. 김해영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에 따르면 지난해 스쿨미투가 발생한 학교는 전국 65곳에 달합니다.
성희롱에 연루된 예비교사, 현직교사를 강력히 처벌해야 하는 이유는 단순히 인과응보 때문만이 아닙니다. 사교육에 밀려난 공교육, 학부모들의 무리한 민원, 심지어는 제자가 스승을 폭행하는 일까지. 교권 추락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죠. 그러나 그 속에서도 묵묵히 아이들에 대한 사랑으로 교단을 지키는 ‘참된’ 스승들이 있습니다. 몇몇 일부 교사들의 잘못된 행동이 예비·현직 교사들의 자긍심을 짓밟게 둬서는 안 되지 않을까요. 이들을 위해서라도 교육당국과 서울교대 측은 사태를 엄중하게 인식하고 국민 눈높이에 맞는 처분을 내려야 합니다.
정진용 기자 jjy4791@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