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사메, 베사메 무초~” 쿠바에서 온 89세 디바 오마라 포르투온도가 앙코르곡으로 ‘베사메 무초’(Besame Mucho)를 부르기 시작하자 관객들은 일제히 휴대전화 플래시를 켰다. 어둠이 짙게 내려앉은 잔디마당에서 관객들이 쏘아 올린 빛은 수백 개의 별이 됐다. ‘서울재즈페스티벌 2019’가 열린 지난 25일 서울 올림픽로 올림픽공원. 88잔디마당에 마련된 메이 포레스트 무대에 오른 오마라 포르투온도는 오직 목소리로 세대와 국경을 뛰어넘어 관객들과 소통했다.
황혼의 문턱을 훌쩍 넘은 나이이지만, 오마라 포르투온도의 목소리는 청년의 그것같이 단단했다. 술과 담배를 멀리하며 목소리를 관리해온 덕이다. 그의 얼굴엔 노인의 사려 깊음과 소녀의 천진함이 공존하는 듯했다. 피아노 연주자는 포르투온도를 두고 “가장 아름답고 놀라우며 유일한, 또한 섹시하고 뜨거운 보컬리스트”라고 설명했다. 농담이 절반쯤 섞인 소개였지만 ‘디 원 앤 온리’(The One and Only)라는 표현만큼은 적확했다.
오마라 포르투온도는 쿠바 음악의 ‘살아있는 전설’로 불린다. 1930년생인 그는 10대 때부터 노래를 불러왔다. 누군가의 일생만큼 긴 시간 노래한 셈이다. 이날 ‘드루메 네그리타’(Drume Negrita)로 공연을 연 포르투온도는 ‘아디오스 펠리시다드’(Adios Felicidad), ‘세이 쿠바나’(Say Cubana), ‘아바쿠아’(Abakua), ‘시티에라’(Sitiera) 등을 불렀다. 국내에 많이 알려지지 않은 음악인 데다 가사 대부분이 스페인어로 쓰여 얼른 따라부르기가 쉽지 않았지만, 관객들은 포르투온도의 주도 아래 간단한 코러스를 합창하며 열기를 더했다.
쿠바의 음악엔 고유의 에너지가 있다. 극적인 요소 없이도 쉬지 않고 몸을 흔들게 만드는 힘이 있고, 긴 시간 식민 지배를 받아온 아픈 역사가 만든 애잔함도 있다. 지구 반대편에 있는 나라지만, 흥과 한(恨)으로 설명되는 우리 민족의 성정과 교집합을 가진다. 2~30대 젊은이들이 주를 이룬 이날 관객들이 아무런 거리낌 없이 포르투온도의 음악을 느낄 수 있었던 이유도 거기에 있지 않을까. 연주자들의 호흡도 귀를 즐겁게 했다. “오마라에게 잠깐의 휴식이 필요하다”며 키보드스트와 베이시스트, 드러머끼리만 연주한 곡은 ‘즉흥성’이라는 재즈의 참맛을 보여주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젊은 가수들의 활약도 대단했다. DJ 겸 프로듀서 아비치의 ‘웨이크 미 업’(Wake Me Up)에 피처링해 국내에도 잘 알려진 알로에 블라크는 리듬앤블루스 풍의 음악으로 일찍부터 흥을 돋웠다. 인디신의 유망주로 꼽히다가 SBS ‘더 팬’ 출연으로 인지도를 높인 국내 싱어송라이터 카더가든의 공연도 대성황이었다. 그의 공연이 열린 수변 무대 앞에는 입장을 기다리는 관객들의 줄이 길게 늘어섰다. 이달 소집해제한 그룹 슈퍼주니어의 멤버 규현도 이날 SK핸드볼경기장에서 팬들을 만났다.
‘서울 재즈 페스티벌 2019’ 둘째날인 26일엔 핑크 마티니, 윈튼 마샬리스, 루디멘탈, 리온 브릿지스 등이 공연했다. 최근 국내에서도 팬층을 넓혀가고 있는 미국 싱어송라이터 라우브는 다소 이른 시간인 오후 2시30분 무대에 올랐는데도 많은 관객들을 불러모았다. 그룹 워너원 출신 가수 하성운과 Mnet ‘프로듀스101 시즌2’ 출신인 가수 정세운도 이날 팬들의 뜨거운 환호 속에서 공연을 마쳤다.
이은호 기자 wild37@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