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 검찰의 인권침해 및 권한 남용에 대한 진상규명을 위해 출범한 검찰 과거사위원회(이하 과거사위)가 18개월간의 활동을 종료했다. 검찰총장이 피해자에게 사과하고 검찰이 과오를 처음으로 인정하는 성과를 냈다. 그러나 조사기간 동안 검찰 외압 주장이 나오는 등 잡음이 끊이지 않았다. 또 줄소송에 휘말리게 돼 당분간 논란이 계속될 전망이다.
과거사위는 지난해 2월 ‘별장 성접대’ 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 사건 등 17건을 조사 대상으로 선정하고 활동에 돌입했다. △형제복지원 사건(1986년) △강기훈 유서대필 사건(1991년) △삼례 나라슈퍼 사건 (1999년) △약촌오거리 사건(2000년) △PD수첩 사건(2008년) △장자연 리스트 사건(2009년) △용산 참사 사건(2009년) △남산 3억원 제공 의혹 등 신한금융 관련 사건(2008, 2010, 2015년) △유우성 증거조작 사건(2012년) 등이 포함됐다. 과거사위 활동 기간은 당초 6개월이었으나 4차례 연장됐다. 과거사위는 지난달 31일 용산 참사 사건 조사 및 심의 결과 발표 끝으로 활동을 마무리했다.
활동에 대해서는 평가가 엇갈린다. 과거사위가 전면 재수사를 이끌어 낸 사건도 있다. 김 전 차관이 건설업자 윤중천씨로부터 1억7000만원의 금품과 성접대 등 뇌물을 받았다는 의혹에 대해 과거사위는 수사를 권고했다. 그 결과 검찰 수사단이 출범, 김 전 차관은 성접대를 포함해 뇌물 수수 혐의로 윤씨는 강간치상 혐의로 각각 구속기소됐다.
또 검찰 수장으로서는 최초로 문무일 검찰총장이 피해자에게 사과했다. 이 역시 과거사위 권고에 따른 것이었다. 문 총장은 고(故) 박종철 열사 아버지, 형제복지원 생존 피해자들을 만나 사과했다. 문 총장은 형제복지원 사건 생존 피해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검찰이 당시 진상을 명확히 규명했다면 형제복지원 인권침해가 밝혀지고 적절한 후속조치도 이뤄졌을 것”이라고 말했다.
제도를 개선하는 성과도 있다. 삼례 나라슈퍼 사건에 대한 과거사위 권고로 법무부는 국선변호인을 피의자 단계에까지 확장하는 형사공공변호인제도 도입을 추진 중이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은 지난 3일 “과거사위 활동은 스스로 과오를 평가한 적 없는 검찰이 처음으로 자신의 잘못을 돌아보는 작업을 시작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면서 “일부 사건 등에 대해 검찰 총장이 공식적으로 검찰 잘못을 인정하고 피해자에게 진심으로 사과한 것은 늦었지만 의미있는 성과”라고 평가했다.
그러나 과거사위에는 ‘용두사미’라는 꼬리표가 따라다닌다. 수사 권한이 없는 등 태생적 한계 때문에 사실상 예견된 결과였다는 자조적 목소리도 나온다. 진상조사단은 강제수사권이 없어 출석을 거부하는 사건 관계자들을 소환해 조사하지 못했다. 또 압수수색을 통한 증거 확보도 할 수 없었다.
진상조사에 필요한 자료를 요청했으나 거부당하기도 했다. 지난 3월 진상조사단은 용산 참사 사건과 관련해 경찰청 인권침해사건 진상조사위원회에 조사기록을 요청했으나 자료를 받지 못했다고 밝혔다. 정현중 과거사위 위원장 대행은 활동을 마무리하는 소회를 밝히면서 “조사대상 사건이 오래된 경우가 많았고 강제수사권이 없어 충분한 자료수집에 한계가 있었다”고 인정했다.
재조사를 방해하는 검찰 측 움직임이 있다는 폭로로 외압 논란이 일기도 했다. 진상조사단은 지난해 12월 기자회견을 열고 재조사 중인 사건과 관련된 당시 수사 검사 일부가 조사 활동에 외압을 행사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또 “법무부 과거사위원회 중 일부 위원은 조사 대상 사건에서 검사 책임을 지적하고자 하는 조사 결과를 수정할 것을 요구하거나 보고서 내용 중 검사의 잘못 기술한 부분을 삭제할 것을 하는 등 위원회 존재 의의를 의심하게 하는 언행을 해오고 있다”고 주장했다.
‘장자연 리스트 사건’에 이르러서는 조사단 내분이 표출됐다. 소수 의견에 불과한 검사들의 의견을 과거사위가 결론으로 채택했다는 불만이 진상조사단 내부에서 제기되면서다. 진상조사단은 외부 위원 4명과 내부 단원인 검사 2명으로 이뤄져 있다. 진상조사단원인 조기영 전북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지난달 21일 CBS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 출연해 “증인 윤지오씨 말고도 유족들 진술에 비춰보면 이른바 ‘장자연 리스트’가 존재할 것으로 보이는 증거들이 있었고 리스트에 대해 수사해야 하지 않겠냐는 게 진상조사단 다수 의견이었다”면서 “과거사위가 이를 묵살했다”고 말했다.
과거사위 활동은 종료됐지만 당분간 논란은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과거사위가 김 전 차관 사건에서 윤씨와 연루됐다고 지목한 한상대 전 검찰총장과 윤갑근 전 대구 고검장은 과거사위와 진상조사단을 명예훼손 혐의로 형사고소했다. 같은 사건에서 수사 외압 의혹을 받은 곽상도 자유한국당 의원은 과거사위를 무고 및 명예훼손으로 고발했다. 박상기 법무부 장관과 문 총장은 과거사위 활동에 대한 입장을 이번 주 내로 표명할 예정이다.
정진용 기자 jjy4791@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