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년간 YG엔터테인먼트(YG)를 이끌어온 양현석이 회사를 떠난다. 그룹 빅뱅의 전 멤버 승리 등 소속 연예인들이 잇따라 구설에 오른 데 이어, 양현석마저 탈세 및 증거인멸 의혹, 성 접대 의혹, 경찰 수사 개입 의혹을 받게 되자 내린 결정이다.
양현석은 14일 오후 YG 공식 블로그에 글을 올려 “오늘부로 YG의 모든 직책과 모든 업무를 내려놓으려 한다”고 밝혔다. 또한 “하루빨리 YG가 안정화될 수 있는 것이 제가 진심으로 바라는 희망사항”이라면서 “현재의 언론보도와 구설의 사실관계는 향후 조사 과정을 통해 모든 진실이 반드시 밝혀질 것이라고 믿는다”고 덧붙였다.
그룹 아이콘 전 멤버 비아이의 2016년 마약 구매·투약 의혹과 관련, 양현석이 경찰 수사에 개입했다는 증언이 나온 것이 이번 결정에 중대한 영향을 준 것으로 보인다. 과거 비아이에게 마약 대리 구매를 요청받은 A씨는 최근 언론을 통해 “경찰 조사 당시 양현석 대표가 ‘진술을 번복하라’고 강요했다”는 취지의 주장을 했다. 지난 4일에는 국민권익위원회(권익위)에 “YG와 경찰의 유착 고리를 살펴 달라”며 비실명 공익신고서를 제출하기도 했다.
올해 YG는 창사 이래 최대 위기를 겪어왔다. YG 간판스타 중 한 명이던 승리는 성범죄와 마약의 온상이 된 ‘버닝썬 사태’에 연루돼 성 접대, 성매매, 횡령, 식품위생법위반 등의 혐의로 경찰 수사를 받고 있다. 비아이는 과거 A씨와의 카카오톡 대화에서 마약류 환각제인 LSD 대리 구매를 요청하고, 자신의 대마 흡연 사실을 인정하는 취지의 발언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룹 위너의 멤버 이승훈이 양현석 등 YG 관계자들을 대신해 A씨와 접촉하면서 이 사건 은폐에 가담했다는 의혹도 나온다.
양현석 본인을 둘러싼 의혹도 끊이지 않았다. 그가 실소유한 것으로 알려진 서울의 여러 클럽들의 탈세 의혹 및 양현석과 클럽 간의 불법 거래 의혹이 본지 단독 보도로 알려졌다. MBC ‘스트레이트’ 측은 양현석이 2014년 7월 외국인 재력가 두 명을 만나 성 접대를 했다는 증업을 입수해 보도하기도 했다. 비아이 사건에서도 양현석의 이름은 여러 번 등장했다. 거듭된 논란에 YG 주가는 곤두박질쳤다. 온·오프라인에서는 ‘YG가 만든 콘텐츠를 소비하지 않겠다’는 움직임이 일었다.
그러나 양현석은 사퇴를 발표하면서도 자신을 둘러싼 의혹에 대해서는 “입에 담기도 수치스럽고 치욕적인 말들이 무분별하게 사실처럼 이야기”라며 선을 그었다. 이런 의혹이 기정사실화 되는 것에 “인내심을 갖고 참아왔다”고도 했다. 그는 조사를 통해 사실 관계를 밝히겠다는 입장이다. 경찰 역시 양현석에 관한 조사 가능성을 열어 놓고 있다. 경기남부지방경찰청은 경기남부청 마약수사대장을 필두로 16명 규모의 전담팀을 꾸려 비아이의 마약 의혹과 양현석의 외압, 경찰과의 유착 여부 등을 조사할 방침이다.
대중의 반응은 여전히 싸늘하다. 일부 누리꾼들은 양현석이 여전히 YG 최대 주주로 있는 점, 그의 동생이 YG의 대표직을 맡고 있는 점 등을 이유로 들며 ‘양현석의 사퇴는 무의미한 것’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YG의 마지막 손절’이라는 비아냥도 나온다. 논란이 된 개인과 거리를 둠으로써, 조직의 문제를 개인의 문제로 축소하고 회사는 관련 사건에서 발을 빼려 한다는 비판이다. 앞서 YG가 승리, 비와이와 전속계약을 해지했을 당시에도 ‘꼬리 자르기’란 지적이 일었다.
정덕현 대중문화평론가는 “(양현석의 사퇴는) 당연한 결정”이라고 봤다. 그간 YG에서 벌어진 사태에 대해 양현석이 “책임을 져야 하는 역할”을 안고 있어서다. 정 평론가는 “양현석이 좀 더 일찍 책임지는 모습을 보였더라면, 지금 대중이 YG 전체에 갖고 있는 불신을 조금이나마 잠재울 수 있었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정 평론가는 또 “사후 조치가 가장 중요할 것으로 보인다”면서 “경영진들이 YG를 어떤 방향으로 이끌고, 어떻게 새로운 문화를 뿌리내릴 것인지 청사진을 제시해야 할 것”이라고 진단했다. 아울러 “경찰 조사 등 일련의 과정들을 정상적으로 거쳐서 모두가 납득할 만한 결과가 나와야 한다. 임시방편으로 상황을 무마하려는 방식은 통하기 어렵다”면서 “지금이 YG 정상화의 첫 단추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은호 기자 wild37@kukinews.com